한미1군단에서 미군들과 함께 근무하면서 익힌 영어와 육군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한 경력은 내가 미국 지휘참모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미국지휘참모대학은 미국의 육군대학이다. 여기를 졸업하면 군 생활을 하는데 유리한 고지에 설수 있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했다. 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합격한 나는 1977년 6월 27일 생전 처음으로 미국을 가게 되었다. 김포공항에서 아내와 수진이 그리고 장모의 환송을 받으면서 미국행 유학길에 올랐다. 나와 함께 간 장교들은 육사 동기생인 강승길 소령, 노동준 소령, 육사 24기인 김만택 소령 그리고 해병대 신중철 중령이었다.
미국 캔사스(Kansas)주 Fort Leavenworth에 있는 육군 지휘참모대학(U.S. Army Command and General Staff College)은 미국 육군과 함께 오랜 전통과 역사를 가진 명성 있는 학교로 이름이 나 있다. 이 학교는 미국에서도 선발된 장교들만이 입교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교육에 선발된 미군장교들은 “The Best Year of my life”라고 한다.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이 학교를 거쳐 나왔다. 우리나라도 군 주요지휘관들은 이 학교를 졸업하였기 때문에 직업군인이라면 누구나 한번 다녀보고 싶은 학교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들어간 1977년도에는 세계 각국에서 선발된 100여 명의 외국장교들과 1,000명이 넘는 미군장교들이 함께 공부를 했다. 1개 반(Section)에 56명으로 편성되어 모두 22개 반 1,232명의 장교들이 수업을 받았다. 나는 14반(Section)이었는데, Emanuel Sakal 이스라엘 대령, Alberto Moreno 니카라과 중령, Bjarne Hesselberg 덴마크 소령, Jaouadi Abdelaziz 튜니시아 소령 등이 미군장교들 속에 함께 편성이 되었다.
외국장교들에게는 미군장교들과 민간인으로 구성된 스폰서가 배당되었다. 나의 스폰서는 R.C Ragland라는 미군 항공중령과 캔사스 시티에 살고 있는 기업가이었다. Ragland 중령의 부인은 한국 사람이었으며, 딸만 6명을 둔 금실 좋은 부부였다. 여러 해에 걸쳐 한국장교들을 스폰서하고 있었던 그는 나를 자기 집에 데리고 가서 가족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한국부인 사이에 태어난 6명의 딸들은 모두 한국에 관심이 많았으며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스폰서의 도움을 받아 제일먼저 차량을 구입했다. 미국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차가 없으면 꼼짝도 할 수 없다. 학교 안에서도 차량으로 움직여야 하는 넓은 교정이었기 때문에 학과출장을 할 때에도 차를 타고 가야 했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새 차를 사지 못하고 독일제 중고 폭스바겐을 구입했다. 강승길 소령도 나와 함께 차를 사용하자고 제안하여 우리들은 딱정벌레 모양을 한 노랑색의 폭스바겐을 사서 교육이 끝날 때까지 잘 이용했다.
학교 내에는 18홀 규모의 정규 골프장이 있었다. 오랜 전통을 가진 학교이기 때문에 큰 나무들로 둘러싸인 골프코스는 필드만 바라보아도 가슴이 확 트였다. 여기서 Ragland 부인은 나에게 골프를 가르쳐 주었다. 한국에서 육군대학을 이미 졸업하고 갔기 때문에 비슷한 과목으로 짜여 있는 미국지휘참모대학에서의 공부는 나에게 부담이 되지 않았다. 공부를 하면서도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중고 골프채를 구입해서 학과가 끝나면 골프장에 나가 처음으로 골프를 배웠다. 친절한 스폰서 부인 덕분에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골프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프로한테 정식으로 레슨을 받지 못하고 필드에서 운동을 하면서 교정을 받았기 때문에 현지임관 격인 골프 폼을 다시 바로 잡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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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스바겐 옆에서 포즈를 취한 필자와 강승길 소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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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한국이 너무나 가난하여 외국에 유학을 보내면 돌아오지 않고 그 나라에 눌러앉아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국방부에서 가족을 인질로 잡아놓고 외국에는 혼자 가도록 했다. 미 지휘참모대학에서 모든 외국장교들이 가족을 데리고 오는데 우리들만 고국에 가족을 떼어 놓고 오게 되어 아쉬움이 많았다.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식사문제였다. BOQ생활을 하게 되니 식사는 항상 아래층에 있는 장교식당에서 양식으로 했다. 한식이 먹고 싶어 슈퍼에 가서 쌀, 고기, 야채 등을 구입해서 BOQ에서 밥을 해먹었다. 옆방의 중국 장교 수아이(Hua Ming Shuai) 중령이 요리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중국에는 남성들이 요리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중국 장교의 요리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미국사람들이 잘 먹지 않아 비교적 가격이 싼 소뼈를 구입해서 사골국물을 만든 후 야채와 고기를 넣어 만드는 요리였다. 나도 최고의 요리사가 된 기분이었다.
요리를 해먹는데 김치생각이 많이 났다. 한국에 있는 아내에게 편지를 해서 김치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편지에 적힌 설명대로 배추를 소금에 절여두고 학과출장을 했다. 수업이 끝나고 돌아와서 절여져 있는 배추에 양념을 넣고 김치를 만들었는데 결과는 배추가 삶은 것 같이 되어 짜고 써서 먹을 수가 없었다. 너무 오랫동안 배추를 소금에 절여 배추가 녹아버렸던 것이다. 요리 중에 김치 담그는 것이 가장 어렵구나 생각하고 먹고 싶었던 김치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