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육군지휘참모대학을 졸업한 후에 받은 보직은 의정부에 위치하고 있었던 한미야전사령부이었다. 원래 외국지휘참모대학을 졸업하면 새로운 교리를 전파하기 위하여 육군대학 교관으로 보직이 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한미야전사령부에서 영어를 할 수 있는 연합작전요원이 필요하다는 강력한 요청에 의하여 한미야전사령부로 가게 된 것이었다.
한미야전사령부는 월남전이 끝나고 한국군이 철수하면서 제3야전군사령부가 창설되면서 탄생된 부대이었다. 한미1군단을 모체로 하여 한국군 제1․5․6군단과 미2사단 등을 작전통제하기 위하여 창설되었다. 사령부는 한국군과 미군으로 구성된 연합부대로서 시설관리는 미군이 맡고 있었다.
식사는 미군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양식을 했고 국방부에서 한국군 장교들이 먹은 식사대를 결산해 주었다. 양식을 먹게 되니까 김치생각이 많이 났다. 어떤 사람은 식사를 한 후에는 바로 BOQ로 달려가 냉장고에 따로 보관하고 있는 김치를 한입 먹고 나오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미군이 사령관을 하고 있었지만 밑에 있는 참모들은 한국군이 더 많이 구성되었다. 한미야전사령부에서는 First Battle이라는 워게임 모델을 가지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있었다. First Battle은 미국 육군지휘참모대학에서 개발한 모델이었다. 미국 지휘참모대학을 졸업한 나를 워게임 실장으로 임명하여 한국군에게 워게임을 보급하도록 했던 것이다.
전군에 있는 주요 지휘관 및 참모들을 모아놓고 실전과 같은 워게임 시범을 보이면서 한국군 전 부대에 신교리를 보급했다. 한국의 주방어지역은 서부전선에 몰려있다. 개성문산축선과 철원축선은 6․25 한국전쟁 시에도 북한군의 주력부대가 공격을 했기 때문에 이 축선이 가장 위협적인 공격루트로 예상되었다. 한미야전사령부에서는 이 축선에 대한 대비를 워게임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수립했다.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할 시기가 되었다. 진급대상자들은 모두 긴장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경력이 좋다 하더라도 부대 진급추천서열이 좋아야 하기 때문에 치열한 진급경쟁에서 누가 부대서열을 잘 받느냐가 주요 관심사였다. 부대 내에서는 경력으로 보나 업무능력으로 보나 내가 1번을 받아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한국군 지휘관이었던 부사령관은 곧 전역이 임박한 고참소령인 그의 비서실장을 1번으로 주었다.
너무나 비합리적인 조치였기 때문에 인사참모가 항의를 하면서 문제를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문제가 여러 사람들에게까지 알려지게 되니 당시 제1사단장을 하고 있던 전두환 소장과 인사운영감을 하고 있던 박준병 준장이 해결책을 내어놓았다. 한국군의 교리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리고 워게임으로 한국방어계획을 실전성 있게 작성하게 한 차기문 소령을 진급에서 누락시켜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참모총장을 비롯하여 전 장군들이 알고 있는 바였기 때문에 특별케이스로 진급심사위원들에게 가산점을 부여하도록 하여 진급자 명단에 오르게 했던 것이다. 결국 한미야전사령부 비서실장과 나를 모두 진급시킨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나중에 간접적으로 전해 들으면서 우리 육군의 진급제도가 살아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소신과 믿음에 따라 일을 하면 결과는 하나님이 내려주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 후 김재명 장군이 새로운 한미야전사령부 한국군지휘관으로 부임해 왔다. 김 장군과는 한미연합기획참모단에서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와 나는 코드가 잘 맞는 관계였다. 그는 국가관이 투철하고 한국방위는 한국군이 주도적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작전계획 5027를 작성하는 주무장교인 나는 소령계급이었지만 미군 고급장교들과 토론하면서 한국 측의 의도가 모든 작전계획에 반영되도록 총대를 메었다. 이러한 소문은 한국군 전체에까지 퍼지게 되어 많은 사람들의 지원을 받으면서 한국군이 의도하는 데로 한강이북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는 전방방어개념을 관철시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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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명 장군 (한미 연합야전군사령부 부사령관 역임) 사진출처 : 강진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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