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대 문을 두드리며 (16화)
  제3장 불멸의 화랑혼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을 직접 몸으로 겪은 나의 부모는 내가 사관학교에 가겠다고 하니 처음에는 반대를 했다. 군대에 가면 다 죽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아버지와 어머니라 사관학교 가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관학교가 어떠한 곳이라는 것을 부모에게 이해를 시키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당시에는 육사의 인기가 대단하여 사관학교입시를 위한 사설학원까지 개설될 정도였다. 아무리 경쟁이 치열해도 대륜에서 6년간 수석을 한 나로서는 자신이 있었다. 어느 사관학교가 좋은지를 몰랐던 나는 일단 육․해․공군사관학교에 모두 응시해 보기로 했다.

입학요강을 살펴보니 육사와 공사는 동일한 날짜에 시험을 보고 해사만이 다른 날로 되어있었다. 그래서 일단 육사와 해사 두 곳에 원서를 내고 시험을 보았다. 사관학교 시험은 특차이었기 때문에 다른 대학보다 먼저 응시를 할 수 있었다. 육사는 시험절차가 복잡했다. 1차 시험에 합격이 되어도 2차 면접과 체력검증이 까다로웠다. 1차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을 한 나에게 2차 면접시험에서 시험관이 질문을 했다.

"왜 육군사관학교에 지원을 했나?"
"순간의 안일한 길보다 영원한 정의의 길을 가기 위하여 지원을 했습니다."
"군인의 길이란 돈보다 명예를 중시해야 하고, 개인의 부귀영화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기를 희생해야 하는 험난한 직업인데 그래도 직업군인이 되고 싶은가?"
"예! 개인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군인의 길이 저의 인생관과 적성에 부합된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소신에 찬 대답에 면접관의 표정이 긍정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강인한 체력이 강조되었다. 체력검정은 이틀간에 걸쳐 실시되었다. 아무리 성적이 우수해도 체력이 허약하면 합격할 수가 없었다. 체력검정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수류탄 던지기 30m 이상, 2,000m 달리기 9분 30초 이내, 100m 달리기 16초 이내, 턱걸이 4회 이상, 35Kg 무게들기 2회 이상 되어야 했다.

태릉근처에서 민박을 하면서 체력검정을 받았는데, 매년 수험생을 돌보는 민박집 아주머니는 나에게 식사관리를 특별하게 해 주었다. 가벼우면서도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면서 시험을 잘 보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 민박집에는 나 이외에 지방에서 올라온 많은 학생들이 있었다. 같은 방을 사용한 사람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부산 해동고등학교 출신인 노동준이었다. 나중에 그도 나와 함께 합격을 하여 준장까지 진급을 했고 군생활이 끝날 때까지 친한 사이가 되었다.

결과는 육군사관학교와 해군사관학교에 모두 합격을 했다는 통지가 왔다. 육사는 244명 합격에 27등이었고, 해사는 102명 합격에 9등을 했다. 최종합격자 발표는 해사가 먼저 했다. 그리고 입교날짜도 육사가 합격자 발표를 하기 전에 해사는 가입교를 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육사와 해사에 2중으로 합격한 사람들이 육사로 가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육사도 이에 질세라 내가 해사에 입교하기 위하여 기차를 타고 진해로 내려가는 도중에 라디오 방송을 통하여 합격자 명단을 발표하고 있었다.

진해로 내려가다가 다시 대구로 올라와 선생님과 선배들을 찾아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고 상의를 했다. 어느 곳을 선택해야 하는가 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최유련 선생이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낸다!” 라는 속담을 이야기 하면서 서울에 있는 육사로 가기를 권고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아직까지 우리군은 육군위주로 되어있으니 규모가 큰 육군에 갈 것을 권했다. 이러한 선생님과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육사에 들어가기로 했다.

전체 합격자 244명을 지역별로 구분하여 보면 서울:105명, 경남:51명, 경북:25명, 전남:37명, 전북:7명, 충남:10명, 충북:4명, 강원:1명, 제주:4명이었다. 당시에 육군사관학교에 합격할 수준이면 서울대학을 포함하여 어느 대학이든지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선생님들은 학교의 명예와 대학입학률을 올리기 위하여 서울대학 공과대학 화공과에도 응시를 하도록 권유했다. 그러나 육군사관학교에 입교 통지가 일찍 오는 바람에 수능시험만 응시해 놓고 육군사관학교가 위치한 태릉으로 가야만 했다.

육군사관학교 제23기로 입학한 육사동기들 가운데는 일반대학에 다니다가 온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심지어는 공사와 해사를 다니다가 온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이 2~3년 재수를 하면서 들어왔기 때문에 육사 23기는 다른 기수에 비하여 평균 나이가 많았다. 육군사관학교는 입학성적 순으로 교번을 정했는데 내가 27등이었기 때문에 2,694번이라는 교번을 받았다. 육사 창설이래 2,694번째 합격자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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