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용광로에서 (19화)
  제3장 불멸의 화랑혼

1963년 3월 4일!

청운의 꿈을 품고 기초군사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친 우리는 심신단련의 전당인 화랑대 연병장에서 정식 입학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이한 목숨 초개같이 바치겠다는 선서를 했다. 사관생도의 선서식을 더욱 빛내기 위한 서울 예술여자고등학생들의 찬조출연이 신입생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사관생도복장을 입고 공식적인 입학식을 가짐으로써 정식 사관생도 생활이 시작되었다. 기초군사훈련기간 동안에는 가입교 상태이기 때문에 전투복 차림이었지만 이날부터 단정한 사관생도복장을 입은 생도로서의 자격이 부여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생도대의 생활도 역시 고달픈 시간의 연속이었다. “06:00시 정각!” 정적을 깨뜨리는 기상나팔소리가 새벽 공기를 가로지르면 암흑에 잠겼던 태릉골 호랑이들은 포효를 하기 시작했다. 하늘엔 별이 총총하고 동녘에는 여명이 깃들기도 전에 포근한 침대를 박차고 연병장으로 뛰어나갔다. 졸리는 눈, 하품 나오는 입들을 억제하면서 애국가, 군인의 길, 사관생도의 신조, 조국선열에 대한 묵념이 이어지면서 화랑대 25시가 시작되었다.

화랑대 생활은 사관생도로 하여금 장차 군의 정예장교로서 지적 능력, 고결한 품성, 강인한 정신력, 확고한 국가관을 함양시키는 데 있다. 이러한 교육환경 속에서 생도들은 협동, 봉사, 희생정신 등을 함양하고 합리적 사고와 자기 통제능력을 키우게 된다. 우수한 훈육요원과 훌륭한 교수들의 지도하에 일반학 및 군사학을 연구하고, 지휘 통솔력 배양을 위한 자치근무 실습을 한다.

고매한 품격형성을 위한 명예제도와 동기생들 간의 절차탁마를 위한 동기회 활동, 정서함양 및 취미생활을 위한 과외활동과 축제 등을 가졌다. 대부분의 일상생활은 생도대에서 보내게 되는데 여기에서 호랑이 같은 훈육관들이 우리를 지도했다.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은 학년별로 생활목표를 정해 놓고 있는데 1학년은 규정준수 습성화 및 내면화를 위한 단체정신, 2학년은 희생, 봉사정신 및 주인의식 배양을 구현하기 위한 준법정신을 생활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3학년은 장교로서 사명감 및 투철한 직업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솔선수범, 4학년은 합리적 리더십을 배양하기 위한 지휘 통솔능력 배양을 생활목표로 하고 있다.
 
▲ 나의 사관생도 시절

생도생활의 하루를 보면 기상나팔과 함께 일조 점호로 시작되어 교수부에서 대학교육과 체육 및 무도교육 등의 심신단련이 계속되며, 석식 이후에는 자율적으로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개인활용시간이 주어진다. 운동시간에는 승마, 골프, 수영, 태권도, 유도, 검도, 축구, 야구 등 자기가 원하는 종목을 선택해서 할 수 있다. 나는 유도부에 속해 있었다. 4년간 유도를 한 결과 졸업할 때에는 국가 공인 2단을 획득했다. 유도부에서 상당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전국대회가 있을 시에는 사관학교 대표선수로 나갔다. 1966년 12월 4일에 있었던 서울시내 대학 친선유도대회에서는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생도 1학년 생활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첫 편지를 받았다. 대구에 있는 조카 성숙이와 성영이가 보내준 편지였다. 반가운 편지를 펼쳐볼 시간이 없어 화장실에 가서야 편지를 읽을 수 있었다. 평일에는 편지를 쓸 엄두도 못 내고 주말이 되어야 겨우 답장을 쓸 수 있었다.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지켜야 법도중의 하나가 명예제도이다. 명예를 생명으로 여기는 사관생도들에게 이 명예제도는 스스로 자긍심을 가질 수 있게 한다. 명예제도의 최저기준은 허위, 부정행위, 부당이득을 취하지 않은 것이다. 모든 사관생도는 이러한 최저기준에 따라 명예심을 함양하는 것을 생활화해야 한다. 명예를 위반하였을 때에는 양심보고를 하고, 양심규제를 통해 반성하는 계기를 갖도록 하고 있다. 사관생도는 자신의 명예위반에 가책을 받았을 때는 자발적으로 명예위원생도에게 직접보고 하거나 중대 양심 보고함을 이용하여 신속하게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이 되면 하기식이 있고 이어서 20Km 구보가 있다. 구보를 할 때면 완전군장을 하기 때문에 낙오하는 생도들도 있었다. 낙오를 하는 사람은 항상 정해져 있었다. 구보는 체력보다는 인내심이다. 인내심을 키우는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구보인 것이다. 여름에는 방학을 이용하여 군사훈련을 학년별로 받게 되는데, 1, 2학년 때는 화랑대 근처에서 각종 화기학과 기초적인 전술학을 습득했다.

"엎드려 쏴!"
"목표는 전방에 보이는 표적"
"사격 개시"!
"탕! 탕! 탕!"
"명중! 또 명중!"

폭염이 내려 쬐는 숨막히는 삼복더위에 지열을 밟고 서서 약동하는 젊음을 조준했다. 그 후 국가대표 선수촌으로 변했지만 당시에는 사관생도들의 사격장이었던 태릉벌은 전투복에 젖은 새콤한 땀냄새로 얼룩져 있었다. 태릉골프장으로 변한 야산에는 각개전투, 분대전투를 하느라고 해가 떠서 질 때까지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더운 날씨에 화염방사기 교육과 화생방 가스실습 훈련은 더욱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 유도2단 승단을 하고 나서(뒷줄 왼쪽에서 첫 번째가 필자)

"훈련 때 흘린 땀 한 방울은 실전에서 피 한 방울을 절약한다."

교관의 고함소리와 함께 7월의 염천하늘 아래에서 훈련 또 훈련이 계속되었다. 3학년이 되면 각 병과학교를 순회하면서 교육을 받았다. 보병, 포병, 기갑은 광주에서, 통신은 대전에서, 공병은 김해에서 훈련을 받았다. 가장 고달픈 코스가 광주 보병학교에서 받는 유격훈련과 전술종합훈련이었다. 1, 2학년 때 태릉에서 배운 전술교육을 종합해서 받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내무생활도 까다로워 벌점이 나오면 외출이 금지되었다. 주말이 되면 조교가 서류뭉치를 가져왔다.

"편지라도 들어있으면 좋으련만……"
"벌점 33점에 야간보행 60분이라고?"
"맙소사!"

기다리던 편지대신에 벌점통보가 나와서 생도들의 어깨는 축 늘어졌다. 가장 기다려지는 외출을 할 때면 광주시내로 나가 영화도 보고 황금동을 거닐면서 사관생도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마음껏 가졌다. 광주가 고향인 생도들은 동기생들을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집이 강진인 김용구 생도가 우리들을 자기 집으로 초대를 했는데 그의 가족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사관생도들은 친형제와 같은 동지애가 있기 때문에 부모들도 다른 생도들을 친자식같이 여기고 있다.

이러한 정이 있기 때문에 육군사관학교 동기생들은 일생을 두고 한 가족과 같이 지내고 있다. 끈끈한 우정과 사랑은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하는 또 하나의 재산이 되는 것이다. 3학년에 올라가면서 중대편성이 한번 바뀌었다. 다른 중대 생도들과도 가깝게 지낼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4학년 때는 전방부대에 배치되어 소대장 실습을 했다. 견습소대장으로 임무를 받아 실 병력을 지휘하면서 임관 후 소대장으로서의 자질을 함양했다. 매복과 수색정찰, 분대전투와 소대전투, 내무생활과 부대관리 등 실무부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실습했다. 앞으로 개선해야 할 문제점까지 발취해서 노트에 깨알 같은 글씨로 적었다. 소대장으로 부임한 후 참고할 주요자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인간 개조기 기초군사훈련_2 (18화)
  해․공군 사관생도와 형제결의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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