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설레던 화랑축제 (22화)
  제3장 불멸의 화랑혼

사관생도생활은 공부도 열심히 시키지만 주말에는 외출, 외박이 있고 여름과 겨울에는 방학도 있다. 토요일이 되면 내무검열을 하고 생도 퍼레이드를 한 후 외출을 나갔다. 내무검열 시에는 상급 근무생도가 흰 장갑을 낀 손으로 창틀을 그어서 만약 먼지가 묻어 나오면 계속해서 재 검열을 받아야 했다. M1총구도 반짝반짝 빛이 날 때까지 손질을 해서 합격이 되어야만 외출을 나갈 수 있었다. 외출이라는 미끼가 있기 때문에 불합격이 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해서 검열준비를 했다.

내무검열에 합격이 되면 사관생도 예복을 입고 연병장으로 집합했다. 1주일에 한 번씩 실시되는 정규 퍼레이드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이때에는 외부에서 관광객이 오고 애인과 가족들이 와서 퍼레이드를 관람한 후 면회와 외출이 시행되었다.

나는 면회 올 사람도 없었고 서울에 외출 나갈 집도 없었다. 나의 모교인 대륜고등학교는 남녀공학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성을 사귈 기회도 없었다. 또 공부에만 열중하다 보니 곁눈을 팔 여유도 없었던 것이다. 주말에는 항상 생도대에서 책을 보든가 운동을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간혹 서울시내로 외출을 나갈 때면 같은 생활관에 있는 친구들과 영화관이나 미술관을 찾아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외출을 하였다가 돌아올 때는 청량리에서 버스를 타야 하는데 일요일 저녁 귀대시간이면 청량리에서는 시간을 맞추느라고 허둥대는 생도들이 많았다.

사관생도는 3금 생활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3금이란 술, 담배, 여자이다. 술을 마실 수 없고, 담배를 피울 수 없으며, 결혼을 할 수가 없다. 3학년 여름휴가 때 3금 제도를 어기고 술을 처음으로 마셔보았다.
 
휴가를 이용하여 김문기 생도와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여의도 비행장에서 공군 C‐130 수송기를 타고 제주도에 갔다. 당시에는 여의도가 군용비행장이었다. 돈이 없는 생도들이라 공군수송기를 이용하기로 했던 것이다. 제주도 비행장에 내려 5․16도로를 따라 서귀포를 비롯하여 한라산과 제주도 전체를 난생 처음으로 구경했다. 한라산 등산을 한 후 내려올 때 길을 잃어 헤매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제주도라는 낯선 지역에 가니까 마음이 약간은 풀려서 처음으로 3금제도를 어기고 생맥주 집에 들려 맥주도 한잔 마셔보았던 것이다.
 
▲ 육사 시절(1967.)

4학년 졸업을 앞두고 ‘화랑제’라는 축제가 열렸다. 화랑제에는 여자파트너와 함께 참가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때 여자친구가 없는 생도는 고민에 빠졌다. 나도 여자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고민에 빠진 생도 중의 한 사람이었다. 여자친구와 애인이 면회를 오고 함께 외출을 하는 생도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화랑제가 점점 가까워 오면서 누구라도 데리고 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마침 그때 육사21기 차기준 선배의 여동생이 수도여자사범대학(현재의 세종대학)를 다니고 있었는데 그 누나에게 부탁을 했다. 차기준 선배는 울산에 살고 있었는데 가까운 친척은 아니었지만 방학이 되면 울산까지 가서 놀고 오기도 했다. 큰 정미소를 하는 선배의 부모는 나를 아들같이 대해주어서 편한 마음으로 지내는 사이였다.

그 누나의 소개로 윤숙영이라는 수도여자사범대학생을 화랑제 파트너로 구하게 되었다. 그녀는 대전에 있는 모 은행장의 외동딸로서 아담한 면모에 한복이 잘 어울리는 동양적인 여성이었다. 가냘픈 몸매와 계란형 얼굴은 어머니를 연상하게 하는 모습이었다. 말이 별로 없으면서 농담을 할 때면 입을 가리고 웃어주는 모습이 모든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스타일이었다. 누구라도 처음 보는 사람이면 한번 사귀고 싶은 다소곳한 한국형 여성이었다. 한복차림을 하고 화랑제에 참석했을 때에는 우리 동기생들에게 인기를 독차지 할 정도로 눈에 띄는 모습이었다.

화랑대 축제가 있은 후부터는 외출을 할 때면 함께 시간을 보낼 사람이 생겨 기다려지는 주말이 되었다. 대전이 집이었던 그녀는 수도사범대학 부근인 화양동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었던 인성경 생도와 함께 그녀의 자취방에 가서 손수 만든 점심대접을 받기도 했다. 졸업을 얼마 아니 남기고 여자친구가 생겼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전방으로 떠나버린 후로는 서로 간에 연락이 두절되었다. 전방 소대장으로 부임을 하고 바로 1․21 청와대 습격사태가 나면서 바쁜 생활의 연속이었다. 또 울진․삼척 무장공비침투사태가 발생하면서 나의 소대장 생활은 주로 설악산 깊은 산골에서 보내야만 했다. 이어서 월남으로 파병이 되어 2년 후에 돌아오니 그녀는 이미 대전에서 중학교 선생을 하면서 결혼을 한 상태였다.

화랑제는 사관생도들에게 낭만과 추억을 남겨주는 평생 잊을 수 없는 행사이다. 3금 생활에서 구속되어 있던 생도들이 애인과 여자친구를 초청해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새로운 인연을 맺게도 한다. 사관생도들에게 가슴 설레게 하는 화랑대의 대축제인 것이다.

 
  일일시험제도 (21화)
  화랑대의 별 (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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