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대의 별 (23화)
  제3장 불멸의 화랑혼

화랑제 축제가 끝나고 졸업이 가까워 오면서 4학년 생도들은 청와대로 초청되었다.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직접 나와 청와대 녹지원에서 졸업축하파티를 주관해 주었다. 삼군사관생도들이 함께 초청되어 오래간만에 반가운 만남이 되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내외는 우리들에게 직접 악수를 나누고 테이블로 찾아다니면서 정겨운 대화를 나누었다. 사관학교 출신에다가 군인경력이 있는 대통령이기 때문에 사관생도들에게 각별한 애정과 관심이 있었던 것이었다.

1967년 2월 23일 많은 국민들의 관심과 축복 속에 화랑연병장에서 졸업식이 거행되었다.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참석한 가운데 이학사 수여와 소위 임관식이 동시에 실시되었다. 2월이라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도 옥외 연병장에서 하나의 흐트러짐 없이 생도들은 부동자세로 졸업식 행사에 임했다. 기초군사훈련 복장으로 제19기 졸업식 때 참석하면서 햇병아리생도들이 쓰러져 들것에 실려 나가든 기억이 생생한데 벌써 4개성상이 흘러 우리가 졸업을 하게 된 것이었다.

졸업식에 이어 거행되는 화랑대의 별 행사는 또 하나의 축제분위기였다. 후배들이 선배를 떠나보내면서 별 모양의 대형을 갖추어서 선배를 환송하는 것이었다. 선배들은 후배들의 환송노래를 들으면서 4년간 쓰고 있었던 손때 묻은 사관생도 모자를 하늘로 높이 던지면서 새로운 장교모자로 바꿔 쓰는 행사였다.

화랑대의 별 행사는 강재구 동상을 참배하는 것으로 절정을 이루었다. 강재구 소령은 파월교육 시 부하들을 대신해 몸으로 수류탄을 막고 장렬히 산화한 우리 생도들 마음속에 살아있는 영웅이었다. 육사 16기로 졸업한 그는 1965년 10월 4일 맹호부대인 수도사단 제1연대 10중대장으로써 파월을 앞두고 수류탄 투척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훈련도중 박해천 이등병이 던진 수류탄이 높이 치솟아 중대원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병력 대부분이 유효반경 내에 위치해 큰 인명살상이 예상되었다. 지형이 평탄치 않아 손으로 받지도 발로 찰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 순간 자신의 몸으로 수류탄을 덮친 강재구는 폭음과 함께 무참한 주검으로 산화했던 것이다.
 
▲ 나의 육사졸업식에 참석한 부모와 친지들

그가 생전에 육사에 와서 후배들인 우리들에게 “군인은 굵고 짧게 살아야 한다”라고 강의를 하던 생각이 생생하였다. 모범장교였던 그가 중대장을 하면서 화랑대에 와서 우리들에게 정신교육을 시켰던 것이다.

육사 졸업식 때는 아버지, 어머니, 정숙이 그리고 정숙이친구들이 참석해서 축하해 주었다. 나의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고향에서 며칠 전에 서울로 올라온 것이었다. 여관에 묵으면서 서울구경도 할 겸 처음으로 육사에 온 것이었다.

졸업식이 끝난 후 육사 교수부 사학과 교수인 김연근 소령 부부가 우리를 자기 집으로 초대를 했다. 김연근 소령은 대륜학교 선배로서 육사11기로 졸업을 하고 서울대학교 사학과를 나와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육사에서 우리들에게 역사를 가르치고 있었다. 사관학교 2학년 때 내가 대륜 후배라는 것을 알고 나를 불러 격려해준 것이 인연이 되었다.

이후 사모님이 서울에 연고가 없는 나를 위해서 따뜻한 밥을 해주면서 정과 사랑을 베풀어 주었다. 이러한 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한다고 하면서 어머니는 고향에서 싸온 곶감을 가지고 김연근 선배에게 갔다. 이후에도 어머니는 그때 극진한 대접을 받은 은혜를 잊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항상 안부를 물어보았다.

육군사관학교는 들어가기도 어려웠지만 졸업하기는 더 힘들었다. 명예제도와 3금제도를 위반하여 퇴교를 당하고, 성적을 따라가지 못하여 퇴교를 당했다. 처음 육사에 입교한 인원은 244명이었지만 졸업은 177명만이 했다.

 
  가슴 설레던 화랑축제 (22화)
  보병학교 초등군사반 (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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