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연대로 간 3총사_1 (25화)
  제4장 조국의 간성

우리 신임 소위들이 제2사단에 배치를 받고 양구에 있는 사단사령부에 도착했을 때 모든 것이 낯설어 지나가는 장병들을 바라보면서 어리둥절하게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연대로 가기 위하여 기다리는데 다른 부대로 갈 장교들은 모두 떠나고 제17연대로 갈 우리 3총사만 남아 있었다. 조금 있으니 지프차를 타고 온 소령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우리를 차에 오르라고 했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그 소령은 아무 말이 없이 뒷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 3총사의 태도만 살피고 있었다. 우리도 처음 만난 상관이라 무어라 말을 걸 수도 없어 긴장된 침묵만 흐르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소령은 제17연대 인사과장이었다.
 
사단에서 인제 방향으로 약 1시간 정도 가더니 저녁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인사과장은 인제 시내에 우리 3명을 내려놓고 내일 아침에 연대로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생소한 인제 땅에 떨어진 우리는 아는 곳이 없었다. 우선 잠잘 곳을 찾아서 여인숙에 숙소를 정한 다음 시내를 정찰했다. 임관 후 첫 부임지로 인연을 맺게 되는 인제가 어떻게 생겼나 하고 관찰하고 싶었던 것이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다.”라는 말이 유행할 때였다. 인제와 그 옆에 위치한 원통이라는 곳은 위도상으로 38도선 이북에 위치한 곳으로 병사들은 한번 가면 전역할 때까지 나오기가 어렵다고 하여 모두들 근무하기를 기피하는 최전방지역이었다.

인제 시내를 한 바퀴 돌고 난 후 사관생도시절에 3금 제도에 묶여 출입을 해보지 못했던 술집에 들어갔다. 시골 냄새가 물씬 풍기는 허름한 집이었다. 진한 분칠을 한 아가씨들이 “어서 오세요” 하면서 반갑게 맞이했다. 3총사는 첫 부임지에서 신고를 잘 해야 한다고 하면서 아가씨들이 부르는 뽕짝장단에 맞춰 젓가락으로 술상을 두드리면서 막걸리를 취하도록 마셨다. “아무리 취하여도 군화끈은 바로 매어야 한다”라는 가르침대로 이튿날 아침에는 예정된 시간에 맞추어 제17연대 본부로 들어갔다.

연대 인사과장은 우리들을 연대장 정헌국 대령(육사10기)에게 신고를 시켰다. 연대장은 훈시를 통해 “우리 보병 제17연대는 6․25 한국전쟁 시에 인천 상륙작전에 참가하고, 서울을 제일 먼저 탈환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부대”라고 하면서 자긍심을 가지고 근무에 임하라고 당부했다. 큰형님 같은 자상한 인상을 우리들 초임장교들에게 심어준 정헌국 연대장에게 신고를 마친 후 우리는 각 대대로 배치되었다. 김문소 소위가 제1대대 1중대, 내가 제2대대 7중대, 김명세 소위가 제3대대 9중대였다.

내가 배치된 7중대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호야불로 생활관을 밝히고 있었다. 밤에 잠을 자고 나면 호야불 그을음에 콧구멍이 새카맣게 변했다. 소대장실이 별도로 없었기 때문에 생활관 한쪽을 판자로 칸막이를 해서 쓰고 있었다. 페치카에 석탄가루를 넣어 불을 지펴서 난방을 했다. 불을 붙이기 위한 불쏘시개를 마련하기 위하여 훈련이 끝나면 모든 병사들이 나무를 한아름씩 짊어지고 부대로 복귀했다.

삼총사가 연대에 보직이 되고 나니 부대에 활기가 돌았다. 각 대대에 배치된 신임 육사소대장들이 원칙적인 부대관리를 해 나가니 다른 소대장들도 따라오게 되고 이것이 연대분위기를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식당에 나오는 쌀과 부식이 외부로 누출되지 않으니까 병사들에게 정량급식이 되어 모두들 좋아했다. 우리가 부임하기 전까지 만해도 주․부식을 간부들이 가져갔기 때문에 병사들에게는 쇠고기국이 나와도 “소 무사도강 탕”이 되어 고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항상 쌀이 모자라 병사들은 배가 고프다고 했지만 삼총사가 연대에 부임하고 당직 장교를 하면서 철저하게 식당감독을 했기 때문에 밖으로 쌀과 부식이 누출되는 일이 없는 부대가 되었다.
 
     
▲ 17대 2대대장을 지냈던 최연식 장군      
우리 2대대장은 육사11기 최연식 중령이었다. 최 중령은 나를 잘 보아서 대대장 숙소에 있는 방 하나를 나에게 쓰라고 하면서 친동생같이 돌보아 주었다. 대대장 부인도 당번병으로 하여금 나의 방에 따뜻하게 불을 지피도록 함과 동시에 비단이불까지 가져다주면서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우리 7중대가 관대리에 위치하고 있는 제3군단사령부 경비를 하도록 명령이 떨어졌다. 당시에는 무장간첩이 많이 나타나는 시기라 사령부 경계를 예하부대가 교대로 맡고 있었다. 군단사령부 옆에는 미 군사고문단(KMAG: Korean Military Advisory Group)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우리 소대가 미군사고문단 경비도 함께 맡았다. 미 군사고문단장은 소대장인 나를 부르더니 자기 부대에 경계를 해주어 감사하다고 하면서 미군 장교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자고 했다. 그때부터 양식을 하면서 미군들의 생활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한번은 군단사령부 위병소가 난로 과열로 완전히 불타버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난로 분무기가 고장이 나서 기름이 한꺼번에 새어나왔고, 새로 전입 온 신병이 당황한 나머지 사후 처리를 잘못하여 큰 화재로 번졌던 것이다.

이 화재사고로 소대장인 나는 지휘책임을 지고 군단 범죄수사대(CID: Criminal Investigation Department)에 불려가서 사고조사를 받은 후 바로 형무소로 가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제는 나의 군 생활이 끝나는구나 하고 체념을 하고 있는데 군단 범죄수사대장이 나를 찾는다고 했다. 군단 범죄수사대장실로 들어가니 근엄하게 앉아있는 한 소령이 나를 위아래로 쳐다보면서 몇 가지를 질문했다.

“자네가 육사 23기로 임관한 차기문 소위인가?”
“예! 그렇습니다.”
“왜 위병소를 태워 먹었는가?”
“고장 난 난로 분무기에서 기름이 새어 나온 것을 신병이 처리를 잘못하여 사고가 났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소대장인 저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죄송합니다.”

나의 개인 신상을 자세하게 물어본 그는 수사 조서를 난롯불에 집어넣고는 돌아가서 근무를 잘 하라고 했다. 주말에 자기 숙소로 와서 저녁을 함께 하자는 말까지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범죄수사대장은 육사12기로 임관한 안종하 소령이었다. 바로 형무소로 가게 되고 군 생활이 끝나는가 했더니 안 소령이 모든 것을 없었던 것으로 해주었던 것이다. 저녁식사까지 함께 하자고 하니 얼마나 감사한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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