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선에서 (29화)

월남전은 정규전이 아니라 비정규전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전은 민사심리전이었다. 민사심리전 부대는 확성기를 이용해서 산간지역에 있는 적에게 귀순권고를 하고, 전단을 제작해서 베트콩이 은거하고 있는 지역에 살포하는 것이었다. 동굴 속에 은거하고 있는 베트콩에게 화염방사기 작전을 한 후 휴대용 확성기로 동굴 밖으로 나오도록 설득했다.

정글 속에서 귀순을 거부하고 도망가는 베트콩과 직접 전투를 할 때도 허다했다. 후방에서 발사하는 아군의 포병과 박격포 사격이 우리 머리 위에서 작열했다. 총알과 포탄이 머리 위를 지나가면서 내는 쇳소리는 심장을 멈추게 하는 듯 했다. 베트콩이 우리를 향해 발사하는 AK소총소리는 내 이마에 총알이 박히는 듯했다.

베트콩은 게릴라전을 수행하기 때문에 주민들의 도움 없이는 작전이 불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베트콩을 일반 주민들로부터 분리시키는 민사작전이 월남전에서 가장 중요했다. 마을에는 베트콩이 가정집 지하에 은거하고 있었다. 그러한 곳에 직접 뛰어들어 주민들을 선무하는 작전이야 말로 생명을 걸어놓고 하는 것이었다. 한국군의 민사심리전 작전이 성공을 거둠으로써 한국군이 주둔하고 있는 지역에는 월남사람들이 대단히 우호적이었다.

1년간의 소대장근무가 끝난 후 귀국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베트남어를 잘한다는 소식을 들은 야전군사령부 참모장 강영식 장군이 나를 전속부관으로 발탁한 것이었다. 군대는 명령이 생명이다. 고대하던 귀국을 포기하고 1년간 월남전선에서 연장근무를 할 수밖에 없었다.

▲ 베트콩 마을 사람들과

새로운 보직을 받기 전에 한국으로 2주간 휴가를 얻었다. 오래간만에 고국 땅을 밟게 되니 감개무량했다. 어머니는 전쟁터에서 무사히 살아 돌아온 아들에게 먹이려고 씨암탉을 잡는 등 반가움을 금치 못했다. 집에 와서 보니 사랑하는 여동생 정숙이가 덕곡초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고 있던 조창래 선생과 결혼을 했다. 어머니는 동생이 오빠를 두고 먼저 시집을 가기 때문에 나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가장 아끼던 정숙이가 결혼하는데 오빠가 참석하지를 못해서 아쉽기도 했지만 동생부부가 행복하게 살기를 기원해 주었다. 매부 조창래 선생도 첫인상이 좋아서 앞으로 정숙이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믿으면서 마음이 놓였다.

휴가기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어느덧 황금 같은 휴가기간이 끝나고 월남으로 다시 가야 했다. 휴가장병에게는 월남으로 가는 비행기표가 나왔다. 김포비행장으로 가서 사이공(호지민시티)행 비행기를 타는데 어머니가 비행장까지 마중을 하겠다고 하면서 따라 왔다.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가슴에 안고 월남으로 향했다.

2년차는 전속부관으로 야전군사령부에서 근무하게 되니 비교적 환경도 좋았고 많은 사람들을 아는 기회도 되었다. 민사심리전부대에 근무할 때에는 미군이 보급해 주는 C레이숀이 입맛에 맞지를 않아 고생을 했다. 그러나 야전군사령부에 근무를 하면서 K레이숀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K레이숀은 김치, 쇠고기, 장조림 등이 포함된 한국형 전투식량인데 우리 입맛에 맞았다.

나트랑에는 “바짬동”이라는 거리가 있었다. 바짬동(바:삼, 짬:백, 동:원)은 우리말로 삼백원이란 뜻이다. 월남돈 3백원(한국돈 3천원에 해당)만 주며는 우리 병사들이 월남여성들과 성욕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이었다. 전쟁터이기 때문에 젊은 병사들의 성적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필요악으로 생긴 거리였다. 주말이 되면 병사들이 “바짬동”에 줄을 서 있었다. 방안에는 모기장을 친 침대가 줄줄이 놓여있었다. 여성들은 껌을 씹으면서 천정을 쳐다보고 날라가는 모기를 두 손바닥으로 잡는 사이에 남자는 볼일을 다보고 다음 차례에게 넘겼다.

이러한 전쟁비극 속에서도 월남전은 한국에게 경제발전을 촉진시켰고, 한국군으로 하여금 전쟁경험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잿더미가 되었던 일본이 다시 일어서게 된 것은 한국전쟁 덕분이었다. 일본은 한국전쟁에 필요한 유엔군의 군수물자를 보급하면서 경제가 불꽃같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한국군의 월남파병도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발전하는데 크게 기여를 했다. 건설업체를 비롯하여 수송업체 등 많은 기업들이 월남에 진출하여 외화를 벌어들였다. 대한항공의 모체인 한진은 월남전을 통하여 수송분야에서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현대건설 등은 캄란 비행장 건설을 통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 민사심리전중대 본부요원들과 함께(오른쪽에서 첫 번째가 필자)

월남전에 파견되었던 한국군은 그 당시 한국에서 받은 자기 기본봉급 외에 미국으로부터 전투수당이라는 명목으로 수당을 받아 송금한 것이 우리의 외화획득에 큰 기여를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근대화의 견인차 역할을 한 포항제철 등을 키우는데 월남전이 큰 역할을 했다. 월남전에서 나오는 탄피를 수집하여 해군LST선박에 싣고 포항으로 실어 날랐다. 우리들은 월남에서 전투를 할 때 탄피를 모아서 한국으로 실어 보내는 일이 큰일 중의 하나였다. 장병들이 임기를 마치고 귀국 할 때는 큰 박스 3개씩을 받아 거기에 탄피를 가득 담아서 포항제철공장으로 보냈다. 이러한 결과로 월남전은 한국경제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또 한국군으로 하여금 전쟁경험을 가지게 함으로써, 한국군의 전력에도 큰 보탬이 되었다. 군인은 전쟁에서 실전 경험을 해야만 진정한 군인이 될 수 있다. 한국군의 장교와 부사관들은 월남전에 참전하여 전투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병사들은 의무연한이 끝나면 전역을 하지만 직업군인은 오랫동안 군복무를 하면서 실전경험을 전투력으로 보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부작용도 없지는 않았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우리 병사들은 고엽제 문제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베트남은 기온이 평균 섭씨34도나 되며, 강우량이 연간 1,800mm나 되는 밀림지역으로 되어 있다. 적을 관측하기 위하여 나뭇잎과 풀을 말라 죽게 하는 제초제가 필요했는데 이 제초제가 바로 고엽제이다. 고엽제를 밀림지역과 베트콩 근거지에 비행기로서 살포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 장병들도 피해를 보았고 그 후유증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타났던 것이다

미국은 고엽제를 제조한 회사가 1억 8천만 달러를 고엽제 환자 치료를 위한 기금으로 내어 놓았다. 미국 정부도 월남전에 참전한 군인들에게 고엽제 환자로 판명이 되면 무상치료를 해주며 충분한 보상을 해주었다. 한국도 고엽제 환자들 때문에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다가 내가 청와대 국방비서관을 하면서 미국처럼 고엽제 환자에 대한 보상법을 만들어 국회를 통과시켰다. 약 1만 명에 이르는 고엽제 환자가 무상치료와 보상을 국가로부터 받았다. 우리나라가 역사상 최초로 참전했던 월남전은 고엽제 등으로 인한 참전 장병들의 고통은 따랐지만 대한민국을 근대화 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