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장에서 단련된 무인정신 (15화)
  제2장 객지의 청소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고 대한민국이 조국근대화의 괘도에 오르고 있을 때 나는 학업에 전념하고 있었다.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무도에도 관심이 많았다. 대륜학교 유도부에 들어가서 여가시간을 이용하여 심신단련에 매진했다. 유도는 어느 스포츠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엄격한 규범의 제약을 요구하고 있다. 기술의 연마나 체력단련에 그치지 않고 자아의 인격을 완성하고 자타공인의 덕을 쌓는 운동이 유도인 것이다. 그래서 유도는 술이 아니라 도라고 하는 것이다.

유도를 할 때에는 속옷을 모두 벗고 도복을 입어야 했다. 겨울에는 도복을 갈아입을 때가 가장 고통스러웠다. 싸늘한 도복을 몸에 걸치면 한기부터 왔다. 매트에 낙법을 몇 번하고 나면 그때에야 몸에 땀이 나고 운동을 할 만한 상태가 되었다. 몸이 풀리면 띠를 단정히 매고 정중하게 상호 인사를 한 후 운동을 시작했다. 유도를 하면서 잊지 못할 추억으로는 제8회 경북체육제전에서 우리 대륜유도부가 우승을 한 것이었다.

이때 정열적인 패기로 유도를 지도해 주던 김판오 선생을 잊을 수가 없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대륜학교 유도선생으로 부임하여 우리들과 직접 대련을 하면서 유도를 지도해 주었다. 학과가 끝나고 유도장으로 가면 그는 벌써 도복을 입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도를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들에게 도가 무엇인지를 솔선수범해서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6․25한국전쟁 직후라 교실은 대부분 군대로 동원되었기 때문에 일부 교사만 찾아서 사용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시설이 부족했기 때문에 학교재단에서 강당 겸 체육관으로 건물을 신축해서 유도장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좋은 유도장 시설 덕분에 각종대회에 나가서 우승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판오 선생의 지도로 단련된 무도정신은 내가 사관학교로 가게 된 동기가 되기도 했다. 유도와 무인은 통하는 데가 있다. 순수한 문인도 좋지만 공부도 하면서 무도를 연마하여 문무를 겸한 진정한 리더십을 함양하는 것은 더욱 중요했다.
 
▲ 제8회 경북체육대회에서 우승한 대륜 유도부(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필자)
 
대륜학교에서 유도로 단련된 리더십은 육군사관학교에 가서 조국의 간성으로 잠재역량을 발휘하는데 큰 촉진제가 되었다. 대륜학교에서 기초가 완성된 나의 유도는 육사에서 계속 무술을 연마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유도 2단, 검도 초단이라는 무도실력을 갖추어 무인으로서 일생을 보내는데 큰 지주가 되었던 것이다.

사관학교를 지망하게 된 또 하나의 동기는 6․25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전쟁의 비극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국가의 힘이 필요하다고 인식한 것이다. 국력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지만 국방력이 제1차적인 요소가 된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구한말 우리가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으로부터 갖은 수모를 당했고 결국 36년간 일본제국주의 식민지가 된 비극도 국방력이 미약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6․25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교정의 반쪽을 군대에 이양해 주고 철조망 사이에서 교정의 반쪽에서만 공부를 해야 했던 나는 운동장 한구석에 높이 솟아있는 히말리아시다 나무 밑에 앉아 깊은 시름에 잠겼었다. 미래의 진로를 고민하던 나는 이 땅에 6․25와 같은 전쟁의 비극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조국의 간성이 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 라는 명언을 상기하면서 조국의 튼튼한 초석이 되고자 사관학교의 문을 두드렸다.

 
  격동의 세월 속에서 (14화)
  화랑대 문을 두드리며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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