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과 사랑의 화신 어머니-2 (5화)
  제1장 덕실골과 유년기

어머니의 사랑과 정은 누구보다 깊었다. 다른 사람들의 험담을 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항상 불우한 이웃을 생각하면서 자비와 사랑을 베풀었던 당신의 성품을 나는 그대로 이어받았다. 사랑과 정을 나에게 행동으로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산소에 상석을 하나 해놓는 것이 소원이었다. 이를 눈치 챈 차기환 큰형은 이종4촌들과 외삼촌에게 연락을 하여 십시일반으로 모금을 해서 상석을 설치했다. 어머니는 평소 모아놓았던 용돈을 모두 내어놓고 형님도 거액을 기부하여 어머니의 소원을 성취시켜주었다. 비록 막내딸이지만 어머니는 효심이 극진한 것을 행동으로 자식들에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간 후 큰형이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나는 군생활을 하면서 전국을 떠돌아다니다 보니 부모를 모실 기회가 없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살고 싶었던 것이 나와 아내의 바람이었다. 장군이 되어 아이들 공부 때문에 서울변두리 부천에 처음으로 집을 장만하여 정착을 하면서 어머니를 모시기로 했다. 큰형의 양해를 받아서 아내와 내가 만년의 어머니를 모셨던 것이다.

89세의 어머니는 건강해서 그동안 감기 한번 걸리지 않은 체질이었다. 내가 모시는 동안에도 마루에서 몸소 작은 일을 하면서 그것을 하루의 낙으로 삼았다. 동네 노인정에 모셔드리고 어른들에게 어머니를 부탁한다고 하면서 떡, 과일 등을 넣어주었다.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렸기 때문에 10원짜리 동전내기 화투도 하면서 동네노인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다.

수진이와 정석이도 할머니를 잘 따르고 좋아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항상 행복한 웃음이 넘치고 있었다. 어머니는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책방에 가서 어머니가 좋아하는 춘향전, 홍길동전 등 책을 골라오는 것이 아내의 일이었다. 저녁이면 사극 드라마를 즐겨 보았다. 드라마를 볼 수 없는 경우에는 녹화를 시켜서 보여드리면 대단히 좋아했다.

그러나 90세를 넘기면서 어머니는 기력이 약해지니까 거동을 하는데 불편을 느꼈다. 동네 앞 음식점에 나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드리려면 어머니를 업고 나가야 했다. 어머니는 나의 등에 업혀서 외출하는 것을 좋아했다. 등에 업힌 어머니가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으면서 서럽고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 휠체어로 나들이 하고 있는 어머니와 아내

93세가 되어서는 아는 사람들이 모두 저 세상으로 가고 없는데 당신 혼자 살고 있다고 하면서 이제 가야 되겠다고 자주 말씀을 했다. 꿈에서 누구누구를 만났는데 자꾸 손짓을 한다고 하면서 갈 준비를 해야겠다고 하였다. 나와 아내는 100세까지 어머니가 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온갖 정성을 다했다.

어머니는 마지막 임종을 고향에서 하겠다고 대구로 보내달라고 했다. 큰형 댁에는 형수도 돌아가시고 어머니를 돌볼 사람이 없기 때문에 보내드릴 수가 없었다. 며칠 후면 어머니 생신이 되니까 그때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의논을 하려고 하던 차에 2000년 12월 1일 저 세상으로 떠나버렸다.

떠나시는 전날 어머니는 목욕을 시켜달라고 아내에게 부탁했다. 1주일에 한 번씩 목욕을 시켜드리는데 목욕할 날이 아닌데도 목욕을 하겠다고 했다. 아내가 목욕을 시켜드리니까 새 옷을 갈아입고 주무셨다. 저녁식사를 잘 하고 연속극까지 보고 주무셨다.

통상 나는 아침 일찍 출근을 했다. 교통이 복잡한 서울이기 때문에 일찍 집에서 출발하는 것이 시간 절약, 연료절약, 스트레스 감소 등 여러 가지로 좋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출근을 한 후 일상 때와 마찬가지로 아내가 아침상을 들고 어머니 방에 들어가니 이날은 계속 주무시고 있었다. 밥상을 옆에 놓고 어머니를 깨우니 몸이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급하게 119를 불러서 확인하니 이미 몇 시간 전에 운명을 했다는 119와 함께 온 의사의 답변이었다.

사무실에서 아내의 전화를 받고 집으로 달려와서 어머니를 목메어 불러 봐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잠을 자듯이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내가 어머니의 임종을 겪으면서 주무시면서 돌아가시는 장면을 직접 체험하게 되었다. 평소 병원에 한번 가지 않고, 건강했던 어머니가 조용하게 잠을 자는 듯이 임종을 한 그 모습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삼성 서울병원으로 어머니를 옮기고 대구, 울산, 부산에 있는 형님 누나 동생 등 친지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서울에서 장례행사를 치르고 고향 덕실골 선산 아버지 묘소 옆으로 모셨다. 평소 덕이 많았던 어머니를 애도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양지바른 선산 명당에 모셔 두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가 계시던 빈방을 보면서 허전하고 아쉬운 마음에 하루 종일 울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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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탕 한 알도 나누어 먹던 죽마고우들 (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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