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윤4월에 태어난 나는 연안 차씨 41대손이다. 차씨부족 사회로 형성된 덕실골은 생일 같은 집안일이 있으면 한 가족같이 경사를 치른다. 나는 윤달에 태어났기 때문에 음력을 주로 사용하던 시대에는 평생에 생일을 세 번 찾아먹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나의 생일은 우리 세대에서는 보기 드물게 양력으로 쉬고 있다. 음력으로 윤4월 17일을 양력으로 계산하면 6월 7일이 된다. 그러나 당시 시골에서는 행정적인 체계가 잡히지 않았고, 아버지가 날짜를 잘못 기억하여 1944년 8월 4일로 호적에 올렸던 것이다. 호적에 실수로 올려 졌지만 8월 4일을 나의 생일로 삼았다.
예수님도 호적에 있는 생일과 실제 생일이 틀리지만 호적에 있는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쉬고 있다. 나도 어차피 일생에 세 번밖에 돌아오지 않는 음력 윤달 생일을 기다리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주민등록 생일 즉 양력 8월 4일을 나의 생일로 지내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는 원래 8남매이었다. 아들 다섯, 딸 셋이었다. 그러나 이름도 모르는 내 바로 위의 두 형이 홍역으로 유아 때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실제로는 6남매와 다름이 없다. 차정분(딸), 차정금(딸), 차기환(아들), 차기홍(아들), 차기문(아들), 차정숙(딸)이다. 얼굴도 기억할 수 없는 내 바로 위의 두 형이 없으니까 나와 사실상의 둘째 형 차기홍과 사이에는 터울이 많다.
나이 차이가 많은 차기홍 형은 나에게 공부를 가르치면서 엄하게 다루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회초리를 들고 한글과 구구단을 가르쳐주는 무서운 선생님이었다. 그 덕분에 내가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튼튼한 기초를 닦을 수 있게 되었고 나의 인생에 바른길을 잡아준 길잡이가 되었던 것이다.
둘째 형은 부모에 대한 불만이 없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유교사상이 뿌리 박혀 있기 때문에 부모는 장남에 대한 관심이 많다. 돌아가신 후에도 제사상을 장손으로부터 받게 되기 때문이다. 작은형은 큰형 위주로 모든 것을 처리하는 부모에 대하여 불평을 하고 있었다. 옷도 큰형 위주로, 신발도 큰형 위주로, 공부도 큰형을 우선적으로 시키게 되니까 상대적으로 작은형은 어려움이 많았던 것이다. 그래도 형제간의 우애는 남달리 좋아서 관혼상제나 명절이 되면 온 가족이 큰형 댁에 모여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막내 여동생 차정숙과 나는 어릴 때부터 사연이 많았다. 3살 터울인 우리는 함께 정을 쌓아가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여동생과 나는 어머니 양 옆에 누워 젖을 하나씩 나누어 만지면서 서로 자기 쪽으로 쳐다보라고 어머니를 귀찮게 했다. 어머니 옆에서 곶감을 나누어 먹고, 팔베개를 베고 자장가를 들으면서 함께 잠이 들기도 했다. 여름이면 어머니는 모깃불을 피워놓고 평상에 앉아 강냉이를 구워주면서 옛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우리는 밥솥에 감자를 넣어두었다가 익으면 서로 많이 가지려고 다투기도 했다.
덕실골은 차(車)씨가 집단촌을 이루어 살고 있는 씨족부락이다. 차씨는 신라시대에 25명의 장관을 배출한 명문거족이었다. 그러나 신라 애장왕 시대에 와서 왕의 숙부인 언승이라는 사람이 왕을 시해하고 자신이 스스로 왕위에 올라 헌덕왕이 되었다. 애장왕의 총애를 받아오던 차씨의 시조 차무일의 후손 차승색이 언승을 제거하려 했으나 사전에 폭로되어 황해도 연안 구월산으로 피신을 했다. 차승색은 헌덕왕이 된 언승에게 발각되지 않기 위해 조모의 성인 양(楊)자와 뜻이 같은 류(柳)씨로 성을 전환하여 류승색이라는 거짓 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때부터 차씨는 류씨라는 거짓 성을 사용해 오다가 고려태조 왕건에 의하여 다시 차씨로 복원이 되었다. 류승색의 6대 손 류차달이 고려 건국에 큰 공헌을 하게 되니 태조 왕건은 류차달에게 큰 벼슬을 내림과 동시에 황해도 연안에 살고 있는 그의 장남 류효전에게 차씨성을 복원시켜 차효전으로 부르게 해 주었다. 그래서 차씨의 본이 연안으로 된 것이며, 차남인 류효금에게는 그대로 류씨 성을 가지게 하고 본을 문화로 했다. 따라서 차씨와 문화 류씨가 혼인을 맺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차씨와 류씨가 원래 형제이었기 때문이다.
류씨로부터 차씨를 되찾은 차효전의 자손은 그 후 크게 번창하여 낙동강 유역에까지 내려와서 살았다. 이것이 뿌리가 되어 차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덕실골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오래 전부터 이 곳 덕실골에서 부족사회를 이루고 살았던 차씨들은 사람마다 형님, 누나, 아저씨, 아주머니 등 친척이 아니 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한 가족 같은 친근감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다. 족보를 따져보면 나의 경우 연안차씨 강열공 파(延安車氏 剛烈公 派) 제41대손이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