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비법
내 직업이 교수이다 보니 사람들로부터 공부의 비법이 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 편이다. 나 자신이나, 나의 아이들이나, 나의 학생들이나 공부비법에 대한 서적을 통해서 보면 공부의 비법은 의욕뿐이다.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숭실대학에 가서 내 성적을 열람한 적이 있다. 3학년 2학기 때 10과목을 택했는데 그 중 C가 6개, D가 2개, A와 B가 각각 1개였다. 그동안 전공에 대한 불만과 병, 전과와 편입 등으로 내 대학성적은 전체적으로 평점 4점 만점에 3점밖에 안 된다. 그러나 한 달간 입원했다 퇴원한 4학년 초부터 1년간 열심히 공부해서 연세대학교 대학원 입학시험과 농협협동조합 취직시험에 합격했다.
직장 취직시험 과목과 대학원 입학시험 과목에 차이가 있었는데도 1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두 곳에 다 합격한 원인은 내 큰 꿈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공부뿐이라는 결론 때문이었다. 요약하면 나의 공부의욕이 강했기 때문에 1년 공부해서 두 곳의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사실 8년간에 걸친 대학원 고학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농협에 몇 개월 근무하면서 받은 월급과 조교 및 가정교사를 한 덕택으로 형의 도움 없이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학비를 스스로 벌어서 고생하며 배웠지만, 정신적으로는 더없이 기쁘고 행복했다. 난생처음으로 부모ㆍ형제들의 도움 없이 학비뿐만 아니라 의식주까지 나 자신이 해결했다는 것이 신통하기도 했다.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학생이나 학부모 모두 같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특별히 열심히 하는 것 같지 않은 학생이 성적은 우수하고, 온종일 책상에 앉아 있는 학생이 성적은 제자리걸음인 경우가 많다. 부모의 반강요로 의욕 없이 온종일 책상에 앉아 봐야 성적이 올라갈 턱이 없다. 공부의욕이 강하면 특별히 열심히 하지 않아도 성적은 올라가게 되어있다.
미래를 꿈꾸고 공부를 하고 기술을 익혀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같이 성공한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필요한 단계가 있다. 바로 의욕이다. 의욕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고 시험결과나 성적만 걱정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공부든, 직장이든 아니면 사 업장이든 의욕과 열정을 가지고 하려면 빛과 소금의 삶을 추구해야 한다. 빛과 소금의 삶이란 자신의 사리사욕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삶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소중한 꿈은 대학교수
내가 유년시절이던 1950년대의 고향인 반곡은 석기시대와 농경시대가 공존하던 무렵이었다.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서울구경을 한번이라도 하는 것이 일생의 꿈이었고 또 서울과 시골은 그렇게 밤과 낮처럼 환경적인 차이가 컸다.
1954년 문경중학교를 졸업하고 숭문고등학교 2학년에 편입하기 위해 난생처음으로 서울상경을 서둘렀다. 예상은 했지만 찬란하고 호화로운 도시의 정경에 너무 겁이 나서 서울구경을 할 용기마저 없어 며칠은 하숙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봄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에 고향에 내려온 나는 시골과 서울의 차이가 너무 심하다는 것을 의식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뜨거운 눈물 을 흘리기까지 하였다. 그 당시 어린 나이에도 까닭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꼭 성공해서 금의환향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이것은 상당히 추상적인 어린 마음의 결심이기도 하지만 내가 평생을 열정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하도록 하는 놀라운 동기가 되었다.
비교적 구체적인 나의 꿈은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되었다. 내 꿈의 변천 과정을 정리해보면 대체로 ‘육군 장교-발명가-재무부공무원-은행원-대학교수’란 여러 단계에 걸쳐 변화ㆍ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운명처럼 나의 생업이 된 대학교수를 내 꿈의 결과로 확정짓기에는 약 7년의 세월이 걸렸다. 평생 마음에 와 닿는 좋은 할 일을 찾는 데는 누구나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기에 나에게 있어서 도 이 과정은 예외일 수 없었다.
숭실대학교 3학년 겨울 방학 때, 교수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 중, 취업시험에 합격할 자신이 없어서 임시 도피할 하나의 변명으로 막연히 선택한 꿈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그래도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져서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도 그나마 꿈을 포기하지 않고 이 위기를 기회로 삼은 것은 나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된 것 같다. 교수는 다소 소극적인 나의 적성에 맞는 것 같아 일생동안을 공부하고 연구하는데 그다지 지루한줄 모르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인내하며 지내왔다.
물론 적성에 맞는 분야를 찾아내기까지는 전공을 세 번(전기공학-경제학-금융론)이나 바꾸는 시행착오를 거치기는 하였다. 애초에는 단지 유명한 교수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기대하는 것만큼 그렇게 성공하지 못한 아쉬움은 아직 남아 있다. 그러나 나 자신이 금융론을 전공한 교수가 된 것을 한 번도 후회를 해본 적은 없다.
진정 좋아할 일을 찾으면 로드맵도 깨닫게 될 수 있어
여기서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쳐서 자신이 평생 좋아할 일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체험한 바로는 자신이 평생 좋아할 일을 찾기만 하면 그 꿈을 성취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로드맵, 즉 이정표를 저절로 깨닫게 되는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있다는 것이다.
더 훌륭한 교수가 되기 위해 미국유학을 해야 한다는 일념에 대학졸업 후 농협직원, 고등학교 교사, 대학교수 등을 했지만, 이 모든 직업은 임시직장으로 생각하고 미국유학 준비에만 몰두했다. 영어실력, 학비문제, 대학성적은 어느 하나도 유학을 해결하는 형편이 못 되었다.
그러나 미국유학 준비에 무려 7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이 걸렸지만, 한번도 미래에 대한 집념을 포기할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사실 이 7년 동안에 미국유학의 기회가 몇 번은 있었지만, 학교성적과 영어실력 때문에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성공은 준비와 기회가 만나는 곳에서 이루어진다.’라는 명언을 뼈저리게 절감하여 보기도 했다.
지금도 돌이켜보면 못내 가슴이 저려오는 것은, 당시 문교부에서 유학생에게 허락한 100달러와 암시장에서 매입한 100달러만을 가지고 1969년 말 무모하게도 미국유학을 시도한 일이다. 그 같은 연유로 오로지 고학에 의존하여 마침내 석사와 박사를 마치고 미국에서 대학교수가 되었을 때, 깊은 감동 속에서도 잠시나마 꿈을 이루게 된 주요 원인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먼저 한순간 머릿속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나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와준다.”는 삶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내가 일생 동안 교회를 다녔지만, 집사나 장로 같은 직분을 담당한 적도 없고 또 독실한 교인은 아니었지만 성경에는 인간의 꿈과 창의성, 그리고 도전을 강조하는 여러 가지 좋은 진리의 말씀이 삶의 잠언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