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의 중요성과 사회에서 인정 ...

바둑과 근본

나는 대학원 무렵, 모든 일에서 성공의 열쇠는 기본이 튼튼해야 한다는 것을 바둑을 통해서 배웠다. 대학원의 동기동창인 김황조(전 연세대 경제학과교수)는 강의가 있는 날이면 연세대 앞에 있던 내 하숙집에서 나와 바둑을 두기 위해 출근하다시피 했다.

처음 바둑을 둘 때는 이 친구가 흑을 잡고 20개 정도 놓고 두었다. 그러나 몇 개월 후에 우리의 바둑실력은 내가 흑을 쥐어야 할 정도로 완전히 역전되었다. 그 원인은 간단했다. 나는 시골에서 기초 없이 어른들이 두는 바둑을 어깨너머로 배웠기 때문에 나의 바둑 실력은 어느 수준까지 도달한 뒤에 진전이 없었다. 그러나 김황조는 바둑책과 기원에서 지도를 받은 덕택으로 기초실력이 튼튼해서 바둑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향상되었다.

기초의 중요성

나도 나중에 몇 개월 동안 서적과 기원에서 기본실력을 배워가며 도전해보았지만, 바둑실력이 향상되지 않아 끝내 포기하고 말았다. 옛말에 “잘될 나무는 떡잎부터 알고,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의 의미는 바로 기초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세상 사람들이 골프의 황제라고 일컫는 타이거 우즈도 가끔은 슬럼프에 빠져 그의 골프성적이 엉망일 때가 종종 있다. 한번은 골프 저널로부터 “슬럼프에 빠진 사람들에게 딱 한 가지 조언을 해보라.”는 부탁을 받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근본으로 돌아가라.”

이처럼 인위적이고 잘못된 습관을 고치고 슬럼프에서 헤어나기 위해서는 기초로 돌아가고, 기본 틀을 갖추어야 한다. 또 그는 이어서 “내가 슬럼프에 빠질 때 제일 먼저 하는 것은 근본 혹은 기초실력의 점검이다.”라고 하였다. 골프 황제로 불리는 그도 항상 개인코치가 옆에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다시 언급하면 그것이 운동이든 공부든 반드시 기초실력이 있으면 발전의 속도 가 빨라진다는 사실이다.

내가 7년 동안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는데도 문교부 유학영어시험에 여러 번 응시하고 떨어진 이유는, 어디까지나 영어기초실력이 약했기 때문이다. 내 평생의 친구인 김황조는 만날 때마다 나하고 바둑을 두자고 하지만, 질 것이 뻔해서 이리저리 핑계를 대고 가능한 이 친구하고는 바둑을 안 두게 되었다.

겸손, 성실, 정직

이 세상에서 나를 제일 좋아했던 사람은 삼촌(김인구)이다. 그는 우리 집안의 다른 어른들처럼 가난했고 못 배웠으며 노동과 소상인으로 일생을 마친 분이다. 그러나 내가 외롭거나 쓸쓸한 날에 내 기억 속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돌아가신 삼촌이다. 그러기에 나는 삼촌이 평택에서 허리를 구부려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움막집에서 가난하게 사실 때에도 자주 드나들었다.

대학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64년, 한번은 삼촌의 부름을 받고 평택으로 내려갔더니 하나밖에 없는 아들 무희의 고등학교 진학을 부탁하는 것이 아닌가? 무희를 대학에 보낼 수 있는 재력이 없었던 삼촌은 졸업하고 취직될 수 있는 고등학교 원서를 구입해서 보내라는 부탁이었다.

나도 나의 장래진로문제로 무척이나 고민할 때였고 또 대학원생인 관계로 거절하면서 무희의 학교에 가서 교사들과 상의하라고 했다. 그러나 삼촌은 네가 누구와 상의하거나 아니면 혼자 생각하던 졸업하고 취직이 될 수 있는 고등학교의 원서를 사서 보내라는 부탁만 되풀이하셨다.

나는 서울로 올라와서 친구들과 상의한 후에 수도공고 입학원서를 구입해서 평택으로 보내기 위해 우체국에 갔었다. 그러나 보내기 직전에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공과를 내 사촌동생에게 추천한다는 게 마음에 걸려서 수도공고입학원서는 버리고 선린상고 원서를 사 보내는 바람에 무희의 일생은 하루아침에 바뀌게 되었다.

무려 반세기 동안 단 한 회사의 금고지기를 하면서도 살아남은 무희의 비결은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고등학교밖에 못 나왔지만 한 회사에서 거의 50년을 근무할 수 있었던 비결은 놀랍게도 겸손, 성실, 정직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한다.

나도 일생을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한 사람 중의 한 사람임을 늘 자부해왔지만, 나를 제일 신임하는 사람이 나에게 금고 열쇠를 맡긴다면 돈을 슬금슬금 빼내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무희는 나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책임지고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는 심성이 참으로 정직한 사람이다.

여기에 나의 둘째 형 둘째 딸인 진선이도 무희 못지않게 겸손하고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라는 것을 밝혀두고 싶다. 그것은 한국에서 나의 크고 작은 모든 심부름을 항상 선한 심성의 소유자로 겸손, 성실, 정직함으로 수십 년 동안 불평이나 얼굴 붉히지 않고 항상 도와준 사람이 바로 진선이기 때문이다.

‘겸손, 성실, 정직’은 금전과 관계된 직장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이다. 이 세 단어의 뜻을 자세히 살펴보면 더욱 명백해질 것이다. 겸손이란 남을 존중하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태도이고, 성실이란 상대방의 신뢰에 반하지 않는 성의 있는 행동이다. 그리고 정직이란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솔직한 것, 즉 다른 사람과 자기 자신을 결코 속이지 않는 심성을 뜻하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겸손, 성실, 정직 때문에 한 중소기업체에서 50여년 동안 근무하고 2013년 3월에 정년퇴직했다.

▲ 왼쪽부터: 조카인 진선, 영란, 필자, 사촌동생 무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