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논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별개의 논문으로 수정ㆍ보완해서 우수한 저널 중의 하나인 「Financial Management」에 투고한 적이 있다. 나는 “자본예산법 실천이 대기업 이윤에 미치는 영향”이란 논문을 저널의 편집장과 심사위원들의 요청으로 3년간에 걸쳐서 5번이나 수정하였다. 심사위원 3명 중에서 2명은 내 논문을 수락하였으나 나머지 1인은 계속 수정을 요청했기에, 편집장도 나의 논문 수록을 끝내 거부하였다. 그러나 이 논문이 나의 저술활동을 거의 180도로 바꾼 계기를 마련했다.
험한 산을 비켜가다
그때나 지금이나 논문을 5번이나 수정을 요청하게 하고 게재를 수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나는 혼자서 3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에 자료수집, 계산 및 수정을 하느라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또한, 자존심에도 깊은 상처를 받았을 뿐 아니라, 막상 거부당한 직후에는 너무 실망해서 몇 달 동안은 아무 일에도 전념할 수 없었다.
이 논문을 다른 재무관리 저널에 제출하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우연히 [베일러 비즈니스 리뷰]라는 저널의 편집장을 만났다. 그는 학회에서 발표한 내 논문을 보고 자기들의 저널에 의뢰하면 즉시 출판해 주겠다면서 나에게 의사를 타진해 왔다. 사실상 나이가 많고 테뉴어(대학교수의 종신재직권)가 매우 급한 처지여서, 나는 그 당시에도 지명도가 낮았고 지금은 폐간된 이 저널에서 출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막상 이 논문이 출판된 1979년 초부터 지금까지 많은 논문을 각종 저널에 출판했지만, 언제나 누가 나의 가장 중요한 논문을 요청하면 이 논문을 제출하는 편이다. 나의 저술활동을 뒤흔든 이 논문이 그렇게 우수한 논문이 된 이유를 밝히면 다음과 같다.
하나는 이 논문은 논문작성법의 기본과 원칙에 충실했다. 좀 과장되게 표현하면 박사학위 과정은 연구위원 양성소이기 때문에 학위논문은 논문작성법의 기본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운동이든 공부든 빠른 성장을 하려면 기본 골격이 튼튼해야 한다는 논리를 주장하는데 그 나름의 일리가 있다.
또 하나는 학계의 전문가들 즉 심사위원들의 요청에 따라 이 논문을 수차 수정ㆍ보완했다는 점이다. 물론 수정을 할 때 온갖 정신적 고통이 따랐지만 고칠 때마다 수정된 논문은 그전의 논문보다 논리적이며 합리적으로 보완되어 보다 학술논문으로 체계화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나의 경우, 주위의 누가 저서를 집필하거나 논문을 작성할 때 조언을 요구하면 10번을 수정하면 9번을 수정하는 것보다 좋으니 수정에 일체의 거부감을 갖지 말라고 권고한다.
김치 냄새가 나는 영어
한국정부가 한국전쟁이 발생했을 때, 외신기자들을 위한 통역관으로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국사람을 고용했다. 이 통역관은 북한군의 남침을 “북한 군인들이 남쪽으로 내려오신다.”라고 했다고 한다. 내가 관동대학에 재직할 때, 어느 날 한가하게 대학 캠퍼스를 거닐고 있던 미국 선교사와 마주쳐서 다음과 같은 대화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오랫동안 한국에서 근무한 이 선교사는 “무엇하고 있느냐?”라는 나의 질문에 “지금 체육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러한 예는 그저 웃어넘길 에피소드라기보다는 외국어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좋은 실례라고 생각한다.
논문심사는 블라인드 심사, 즉 심사위원이 저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하는 심사이기 때문에 내 이름을 알 턱이 없었던 한 심사위원이 내 논문의 문장이 외국출신 교수가 쓴 것 같다고 지적을 하였다. 이때부터 내가 쓴 모든 책이나 논문은 교정담당자를 시켜서 교정하는 방법을 택했다. 비록 교정담당자가 수정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교정 전후 글의 흐름을 비교ㆍ분석해보면 나의 문장이나 문체는 김치냄새가 나고 교정된 글은 버터 냄새가 난다는 것을 나 자신도 금방 인식할 수가 있었다.
인생의 첫 33년 동안 김치만 먹고 자란 내가 아무리 영어로 글을 잘 쓴다고 한들 버터만 먹고 자란 미국인처럼 영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지나친 욕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때부터 논문, 교과서 및 심지어는 좀 긴 편지까지도 교정담당자의 도움을 받은 후에야 사용하였다. 내가 가끔 동료들이나 출판사로부터 문장이 매끈하다는 칭찬을 받는 건 어디까지나 교정담당자의 덕택임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이 같은 실패로 인생의 쓴 경험을 한 것은 처음은 아니다. 대학에 서 F학점이 나와서 그 과목을 다시 수강한 적도 몇 번은 있었고, 미국유학에 필요한 시험에도 여러 번 실패했기 때문에 미국유학이 7년씩이나 늦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긍심을 갖고 당당하게 주어진 현실에 도전했다는 사실이다. 어디까지나 나는 패배를 통해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이 신념을 만들고, 또 이러한 신념은 성공을 이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고통을 통해서 얻은 것이 소중하다는 교훈을 절감하게 되었다.
미국 인디언의 라카타 족은 기우제를 지내면 100%가 비가 오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 이유는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다. 비가 오지 않으면 정성의 부족으로 간주하고 그들은 더욱 절박한 심정으로 기우제를 올렸다. 전구를 만들기 위해 2,000번의 실패를 한 발명왕 에디슨이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2,000가지 방법이 효과가 없음을 입증한 것이다.”라고 역설하였듯이 우리가 일상적인 삶에서 즐겨 사용하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명언도 그의 절절한 체험에서 기인한 결과이다.
앨 뉴하스가 1982년 「USA Today」라는 전국 일간지를 창간했을 때, 일부의 전문가들은 이 신문이 틀림없이 실패할 것이라 장담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 신문은 1990년대에 미국에서 발행 부수가 제일 많은 일간지가 되었다. 발행인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모두들 40세가 되기 전에 최소한 한번은 크게 실패해야 한다.”고 술회하였다. 또 그는 “실패가 크면 클수록 더 크게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라는 부언도 아끼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