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풍요가 가져다 준 가족의 유대
그 무렵은 1978년에 구입한 판잣집 같은 비좁은 공간에서 우리 가족이 에어컨도 없이 지내고 있을 때인데 연봉을 더 받게 된 까닭에 1988년 집터를 사서 새집을 건축하고 거주지를 옮기게 되었다. 이사 하고 난 후에 세 명의 아이들에게 각각 거처할 방을 제공했더니, 예전에는 에어컨도 없이 한방에서 생활한 탓으로 하루가 멀다고 서로 다투던 일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여름철에는 넓은 뒷마당에서 소프트볼을 하거나 겨울철에는 미식축구를 하면서 3형제가 전에 없이 정답게 지내는 것을 몰래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던 일은 지금도 못내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아내는 뒷마당에 작은 숲이 있어서 눈이 많이 날리는 겨울에는 대학재학 중에 영화에서 본 ‘산장의 여인 같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였다.
누군가 “가난이 원수”라고도 했는데 나의 연봉이 오르고 나서야 주로 돈 때문에 하루가 멀다고 가족끼리 다투고 불평하던 일상은 사라졌다.
이 시기에 경제적으로 안정된 나는 아이들의 학업마저 끝나게 되어 비로소 정신적으로 여유를 갖게 되었다. 한편 한국에 돌아가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서 2002년에는 책임 편집하던 이 저널을 은사인 세인트루이스 대학의 김승희 교수한테 넘기고 나는 나름대로의 뜻을 세우고 북한연구를 시작했다.
이 저널은 2003년에서 2009년까지 김승희 교수가 출판ㆍ편집을 했으나, 2010년부터는 영국의 정보회사인 Emerald에서 출판하고, 영국의 리딩 대학교수들이 편집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2005년에는 내가 출자한 일부의 예산과 모금한 자금으로 북한 관련 전문저널을 창간ㆍ편집하게 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재미교포 1세와 자녀교육의 난제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되었던 1990년부터 난생 처음으로 아이들 교육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고학과 연구 및 미국생활의 정착에 모든 시간과 열정을 쏟아온 탓에, 부끄럽게도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러나 장남인 캔이 대학졸업(1990년)을 전후해서 방황할 때야 나도 크게 당황하면서 본격적으로 아들의 교육과 장래에 대해서 개입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로부터 무엇인가를 유산으로 물려받게 되는데, 성공한 사람들이 물려받은 유산은 정신적 유산이다. 황금만능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오늘날 돈이나 물질에 절대 가치를 두는 사람 들이 많이 있지만,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유산 중에 정신적 유산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은 부모에게 단순히 물질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사람이 아니라 정신적 유산을 물려받은 사람들이다. 이처럼 위대한 정신적 유산과 영적 유산은 자녀들의 인생에 위대한 능력이 되어 위대한 삶과 성공의 놀라운 요인이 되는 것이다.
자녀들의 실제 교육과 체험적 담론
나는 아들만 셋을 둔 가장이다. 첫째는 캐네스(한국이름 기강), 둘째는 캐븐(한국이름 기원), 그리고 셋째는 키드(한국이름 기드)인데 우리 식구끼리는 캔, 캡 그리고 키라는 애칭을 쓰고 있다. 친척들과 친구들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아이들도 그들의 이름이 전부 K자로 시작된 것을 매우 궁금해 했다. 그것은 순천 김 씨의 항렬에 따는 돌림자 ‘기’에 맞추기 위해서 K자로 시작한 미국 이름만을 찾아서 지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때 세조의 철퇴에 맞아 죽은 순천 김씨 김종서 장군 때부터, 어쩌면 그보다 훨씬 전부터 내려온 돌림자(항렬)를 따라 이름을 지어온 한국인의 전통은, 최소한 내 후손들의 경우는 내 아이들대로 끝난 것 같다. 다른 사람들에겐 별것 아니겠지만 나는 그것을 생각하면 조금은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한다.
첫 아이인 캔을 키울 때 아내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칭찬과 사랑으로 대한 반면에, 나는 그 아이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뜯어고치려고 해서 가끔은 충돌이 있었다. 아내처럼 아이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사랑과 인내로 대하면 비록 어리지만 아이 스스로 철이 들면서 저절로 자존감을 키우며 자기에게 주어진 일상적인 모든 것을 잘 감당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주위 사람들은 내가 대학교수라서 아이들을 잘 지도해서 별다른 충돌 없이 성장한 것으로 믿고 있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그저 부끄러운 심정이다.
이민 1세들은 눈물겹게도 때로는 처절하게 생존을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해야 했다. 또 아이들의 성공을 위해서 자녀들이 오로지 학업에 열중하기만을 소망하는 것은 어느 부모의 경우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나도 예외일 수는 없다. 까닭에 부모로서 아이들에 대한 지나친 욕심과 문화적 차이로 부자간에 충돌이 있었던 것은 숨길 수 없는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캔과의 갈등과 화해
특히 나와 큰 아이 캔과는 캔이 고등학교와 대학에 재학 중일 때까지 잦은 의견충돌이 있었고, 때로는 부자 간의 갈등이 감정적으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물론 아이들 교육문제 때문에 크고 작은 부부간의 다툼이나 대립도 수없이 체험했다.
이 같은 충돌은 캔이 심지어 나에게 “부모로서의 책임과 의무는 다 하지 못하면서 왜 욕으로만 훈계하려고 하느냐?”라고 항의하는 상황까지 빚어졌다. 이때 심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까스로 참았다. 뿐만 아니라 그때부터 아이들의 생각을 일체의 배려 없이 내가 원하는 대로 바꾸려던 인식을 버리도록 노력했다.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잘못하는 일이 있을 때는 종전과 달리 칭찬과 따뜻한 격려로 훈계를 대신하면서 부자간의 인간관계가 크게 개선되고 회복되었다. 다행스럽게 캔도 스스로 깨닫고 모든 일을 순리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칭찬하면 고래도 춤을 춘다.”는 지론처럼 캔을 키울 때 아내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칭찬과 사랑으로 대했다. 반면에 나는 상대적으로 아이의 인격을 존중하고 격려하기보다는 그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뜯어고치려 해서 많은 다툼을 종종 불러일으켰다. 이것은 한국문화와 미국문화의 충돌과 고정관념에서 오는 잘못된 행위였다.
비록 자라는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자존감을 존중하고 사랑과 인내로 대하면 쉽게 받아들이고 철이 들 것인데도 조금은 천천히 지켜보지 못했다. 그들도 이성으로 주어진 현실을 처리할 수 있는 자제력을 지니고 있기에 어디까지나 성장하고 성숙하는 과정에서 배려와 기다림은 더없이 필요한 것이다.
캔과 키드의 경우는, 경제학 전공으로 대학을 졸업하고도 그 당시 취직이 안 되고 또 공부에 지친 탓으로 그들은 잠시라도 가정에 머물며 한동안 쉬기를 소망했다. 그러나 나는 어느 회사든지 신규직원을 채용할 때 현재 직장을 갖고 있거나 재학 중인 사람을 선호하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는 터라 이 점도 쉽게 수용할 수 없었다. 나는 “집에서 빈둥빈둥 놀면 긴장감이 풀려 머리에 녹이 생기는데 어느 회사가 녹이 생긴 사람들을 채용하겠느냐?”라며 공부를 계속하도록 부드러운 어조로 요구했다.
지난날처럼 항상 명령하듯이 아이들을 훈계하던 모양새를 달리하고 조금은 더 친밀하게 아이들에게 다가가 대화와 설득으로 대학원 진학에 뜻을 모으게 하였다. 덕택으로 우리 가족이 온갖 고생을 했지만 세 아이가 모두 27년 동안을 대학공부에 전념토록 하는데 성공을 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고진감래라는 한자성어처럼 이제는 아이들의 장래는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아이들에게 물고기(재산)를 전해주는 것보다 물고기 잡는 방법(지혜)을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