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한 재산은 교육
기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한번 해놓은 공부는 기록뿐만 아니라, 기억의 창고에 저장되기에 일생 동안 살아가는데 의존할 수 있는 최선의 자산이다. 대학 졸업 후 취직이 안 된다고 집에서 치밀한 계획 없이 놀아서는 안 되고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제로라도 들려주고 싶다. 공부를 계속하면서 때를 기다리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오기 때문이다.
다행히 캔은 석사와 박사과정에 있을 때 학문연구에도 열정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전보다 심성마저 너무 겸손해져서 그 이유를 물어 보았다. “환경이 사람의 의식을 바꾸지 않습니까?”라는 그의 반문을 받은 뒤, 나 자신은 신선한 감동을 받았다. 그렇다. 명언은 유명한 사람들의 입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고 뼈저린 경험을 하면 보통 사람에게서도 이렇게 나올 수 있다. 항상 고통을 통해서 얻어진 것은 진실한 것이다.
다시 말해 아이들을 부모가 원하는 대로 조급하고 무모하게 빨리 고치려고 명령과 욕으로 훈계하기보다는 항상 칭찬과 사랑으로 훈계하고 참고 기다리는 것이 아이들을 바꾸는 지름길이 된다.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고 씨눈이 싹트기를 오래 기다리며 지켜보듯이 그 같은 자연의 순리를 바탕으로 한 체험을 통해 얻은 지극히 평범한 하나의 작은 내 삶의 교시(敎示)이다.
고생은 세상에 대한 겸손과 삶의 성실함을 알게 해
무엇보다 캔은 학사학위뿐만 아니라 경영학석사학위를 받고도 취직이 안 되어 공부를 계속하다가 마침내 대학교수가 되었다. 또 막내인 키는 시력이 나빠서 공부하는데 육체적으로 심한 고통을 겪었다. 그는 대학에서 경제학 학사학위를 받고도 취직이 안 되어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를 열심히 한 덕택으로 직장을 구하기 시작한지 4년 만에 취업을 하였다.
“고생 뒤에 낙이 온다.”는 우리네 속담은 캔과 키의 경우에 더없이 합당한 말이 된 것 같다. 아마도 대학졸업 후 고통 없이 취업이 되었으면, 두 아이의 인생은 지금과는 무척 달랐을 뿐만 아니라 자만심에 빠져서 지금처럼 겸손하고 자기가 맡은 일을 더욱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우리 집 세 아들의 지능지수는 거의 비슷하다. 그런데도 둘째 캡의 고등학교와 대학성적은 유난히 좋았다. 중학교 때 의과대학 교수가 되기로 결심한 캡은 밤낮없이 공부를 열심히 한 반면, 첫째 캔과 셋째 키는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에 공부를 적당히 해서 성적도 그렇게 썩 좋지 않아 취직하는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나의 세 아이들만 놓고 보아도 학문에는 결코 지름길이 없고, 누구든지 열심히 하면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천재는 99퍼센트의 노력과 1퍼센트의 재능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토머스 에디슨의 지적은 단순히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고 그의 체험을 통해 나왔다는 것을 다시금 기억하여야 한다.
미국의 디트로이트 근처에 있는 그린필드 빌리지 박물관에는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기 위해 사용한 실험실과 기록물이 있다. 한 가지 특기할 것은 에디슨이 2,000번의 실험을 실패한 후에야 비로소 전구를 만드는데 성공했다는 사실은 정말 충격임에 틀림이 없다.
이민 1세대와 그 자녀들 간의 문화적 충돌
미합중국은 기회의 나라라고 하여도 사회의 구도가 세계각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간혹 미국은 용광로로 빗대어지기도 한다. 미국으로 이민 온 1세들은 선구자와 같은 입장을 지니기에 두 가지 큰 문제에 직면하게 마련이다. 첫째는 문화, 언어, 풍속이 다른 미국에서 생존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 둘째 이민 1세들이 이루지 못한 성공의 욕망을 자녀들을 통해서 성취하려는 과정에서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마찰과 시행착오가 종종 주어진다. 재미한국교포들은 이와 같은 큰 두 가지의 현실적 문제를 결코 외면하거나 피할 수가 없다.
나는 1969년에 미국에 건너온 이후, 재미교포 1세 중에 열심히 일하지 않거나 생존에 실패한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러나 교포 1세의 자녀들 중에서는 기회의 나라 미국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의 성공을 하지 못해서 크게 상심하는 부모들을 가끔 보았다.
그러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무엇보다 여러 가지 변명이 주어지겠지만, 유교문화의 교포 1세들과 서양문화의 교포 자녀들이 두 문화의 이질감에서 오는 갈등을 잘 해결하지 못한 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부모와 자녀들은 부자, 부녀, 모자, 그리고 모녀의 네 가지 관계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으나, 여기서 나의 의중은 갈등이 제일 많은 부자관계에 중점을 두고 그 나름의 견해를 피력해보려고 한다.
한미 양국 문화의 특이성
미국사회의 구성은 기독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의해서 발전되어 왔기에 보편적으로 개인 가치에 기초한 문화가 형성되었다. 반면 한국은 유교, 독재정치와 정부주도의 경제정책에 의해서 발전했기에 공동체 가치에 기초한 문화가 형성되어 대조를 이룬다.
좀 더 자세히 언급하면 미국문화의 특징은 개인권리중심, 동등한 관계, 개인주장 및 개인의 표현, 개인적 능력과 성취, 적극적 참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문화의 특징은 책임과 의무, 권위존중과 순종, 개인의 희생과 집단의 성공 및 관찰과 소극적 참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사회에서는 어떤 의식이나 일상생활에서 이 같은 문화적 차이는 보편적인 현상이어서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의 결혼식에 가보면 부모들을 먼저 소개하고 다음에 신랑과 신부를 소개하는 반면, 미국인들의 결혼식에서는 그날의 주인공인 신랑과 신부를 먼저 소개하고 부모는 다음에 소개한다.
또 다른 예를 들면 부모와 자녀들이 같은 차를 타게 될 때, 미국인들은 자기의 배우자를 앞에 태우지만, 한국인들은 부모 중 한 분을 앞에 태우는 것 이 관습화되어 있다. 무엇보다 문제는 공동체 문화에 기초한 한국식 가치관과 개인적 문화에 기초한 미국식 문화의 양립이 생각처럼 그렇게 쉽지가 않다는 사실이다.
특히 부자간의 관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소 흥미롭고 신비함을 더해준다. 어떤 때는 심각한 갈등으로 어떤 때는 깊고 큰 사랑의 지침표로, 또 어떤 때는 종속과 상하관계로, 어떤 때는 동등함과 평등한 관계로 전개되기도 한다. 이렇듯 부자의 관계는 종잡을 수 없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동양에 있어서는 유교문화에 길들여져 있어 부자지간의 관계는 주로 전통에 의한 종속과 상하관계이다. 이 같은 상하관계는 윤리적으로 고정되어 있어서 이런 관계를 깨트리거나 어긋난 행동을 하면 그에 상응하는 벌과 징계가 내려졌다.
비록 기독교와 서양문화가 한국에 들어온 지 1세기가 지났고 지금은 세계화와 통신ㆍ정보의 발달로 동서 문화의 차이가 좁아졌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아직도 부자지간의 종속관계는 계속되고 있다. 아울러 대부분의 자녀는 이러한 종속관계를 당연하게 천륜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평등, 자유, 정의와 같은 가치이념의 사회 환경 속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종속관계를 거부하기에 부모와의 갈등은 매우 심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이들은 기성세대의 문화가 구태의연하고 권위주의적인 가치관에 근거하고 있다고 매도하는가 하면 기성세대 또한 젊은 세대의 정신문화는 예의가 없고 자유분방한 가치관에 근거한다고 부정하거나 거부한다.
이처럼 동양의 문화에 익숙한 부모와 서양문화의 풍토 속에서 자란 아이들의 행동에 대한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고, 따라서 부자간에도 충돌하는 경우가 많게 마련이다. 이런 걱정들은 부모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지만, 속 시원한 해결방법을 찾기는 그렇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또 그렇다고 해서 기성세대인 아버지들이 젊은 자식들의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니 심적으로 거부감이 생기고, 일일이 눈에 거슬리는 상황을 지적하며 고칠 것을 간섭하다 보니 서로 간의 대립과 갈등이 심해져 어쩔 수없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