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으로는 평생에 200명 이상의 청중 앞에서는 꼭 네 번에 걸쳐 강의했다. 그 첫 번째는 2003년 10월 17일 우리 학교에서 내가 최우수 교수상을 받은 뒤에 전 교직원 앞에서였다. 물론 이때 강의의 내용은 주로 대학 내의 구성원에 관한 것이었다. 나머지 세 번 강연의 주제는 한국은 동북아의 물류중심지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2007년 5월에는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그리고 2008년 5월에는 북한대학원 객원연구원으로 “동북아에 있어서 북한의 전략적 역할”이라는 주제로 연구할 기회를 얻었다. 이 연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직 시에 여러 번 “한국은 동북아의 허브”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한번 다루어 보고 싶었던 연구의 주제였다. 이 제목으로 행한 첫째 강연은 앞에서 이미 얘기한 대로 2008년 10월 16일 매경의 세계지식 포럼 중 북한 세션에서 했다.
1995년부터 미시간 주립대 한국연구위원회에서는 매년 세계 각처에서 한국인들의 복지와 이중문화 간의 이해증진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글로벌 한국 상을 수여해오고 있다. 나는 2008년 10월 11일 다른 두 사람과 함께 이 상을 수상했는데 물론 내가 이 상을 받게 된 것은 나의 북한연구 때문이었다. 이 상을 받은 사람들은 300여 명의 청중들 앞에서 약 30분간 수상수락 연설을 하게 되어있는데 이때도 “동북아에 있어서 북한의 전략적 역할”이라는 논문을 발표해서 아주 좋은 반응을 받았다.
한국위기관리연구소와 숙명안보학연구소는 2011년 5월 29일에 대북정책 세미나를 개최한 적이 있다. 숙명여대 백주년기념관 강당에서 ‘북한 김정은 체제의 전망과 대비책’을 주제로 대북안보정책 세미나에는 서울에 있는 전 대학학군단 후보생들이 참석한 큰 행사였다. 다른 북한전문가들과 이 세미나에 연사로 참석한 나는 물론 북핵문제만 해결된다면 한반도는 동북아의 물류 중심지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의 강연을 하였다. 왜, 북한은 동북아에 있어서 전략적인 존재인가?
나는 “동북아 중심지 한반도” 또는 “북한: 미국과 동북아시아 관계의 와일드카드?”라는 주제로 미국에서는 10여 번 정도의 강의를 했다. 주로 이 강연 내용은 정보의 세계화로 수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는 효과를 얻었다. 이 내용이 북한에 관심이 있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상식 정도밖에 안 될지는 모르지만, 재미교포나 미국사람들에게는 상당히 감명을 준 교육적인 논문이 되었다. 이 내용을 한국어로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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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희 교수의 저서 'Survival of North Korea'
[출처 : 자유아시아방송 (RFA PHOTO/변창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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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 이후 국제법 및 유엔의 경고를 무시하고 더욱 개량된 대량 살상무기를 개발했다. 또한, 북한은 한국전쟁의 종식 이후 한국뿐만 아니라 때로는 미국에 대한 도발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의 반응은 매우 미미했다. 그들은 경고, 합동군사훈련, 제한된 경제제재와 군사력의 시위 등이 고작 이었다. 힐러리 클린턴이 미 국무장관이었을 때 어느 한국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문제를 나무보다는 숲의 입장에서 보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이 말은 “북한의 수많은 도발에 보복보다는 왜 미온적으 로 대응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그녀의 답변이었다.
북한 문제를 하나의 나무로 빗대어 보면 미국이 포격만으로 북한을 붕괴시킬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문제가 강대국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던 전례를 한 번쯤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북한은 이념이 다른 초강대국들의 중간에 있기 때문에 북한 문제를 숲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단, 북한 문제를 숲의 입장에서 고려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 네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도 있다. 1. 북한의 전략적 위치, 2. 동북아의 안전과 평화, 3. 동북아 국가들의 에너지 수급과 협력, 4. 경제협력 등이다.
무엇보다 여기서 북한의 전략적 위치란, 한국은 역사적으로 대륙강국인 러시아 및 중국과 대양강국인 일본 및 미국 간의 문화교류와 침략을 위한 교두보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 교두보는 파괴되었다. 미국과 동북아 국가들은 이 지역의 안보, 에너지 및 경제문제 등의 이유로 이 교두보의 복구를 원하고 있다. 이 교두보가 복구된다면 한일 간의 해저터널 건설과 아시아횡단철도의 개발을 통해서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까지 이 교두보가 연장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북한을 통과하는 육로가 개통된다면 도쿄와 런던을 기차뿐만 아니라 트럭 및 승용차 등으로 왕래할 수 있는 시기가 올 수 있다는 논리이다.
분석가들은 한국이 분단되어 있고 북한이 핵을 보유할 경우 동아시아 지역은 중동보다 더 큰 위험을 일으킬 수 있다고 역설한다. 동북아는 세계최대의 핵보유국들, 단시일 내에 핵을 보유할 수 있는 국가들, 그리고 세계최대의 경제 대국들이 포진하고 있는 지역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이 지역을 냉전 이후 세계에 있어서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간주하고 있다. 아주 묘한 이야기지만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미국과 동북아 국가들이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북한의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대화뿐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세계최대 에너지 소비국에 속하는 중국, 일본 및 한국은 국내생산량이 극히 제한되어 있기에 대부분의 에너지공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반대로 세계최대 에너지 수출국인 러시아는 극동지역에 막대한 양의 기름과 가스를 보유하고 있다. 이렇게 에너지 소비국들과 생산국이 지리적으로 근접해있기 때문에 에너지 수급을 위해 서로 협력하길 원한다는 것이다. 북한 핵무기의 평화적 해결이 그러한 협력을 위한 정치적 신뢰와 제도를 구축하는데 필수적이라는 것은 새삼 말할 나위도 없다.
동북아국가들은 서로 경제적으로 이미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그 잠재성은 더욱 지대하기에 대결보다는 화해를 택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풍부한 러시아의 자연자원, 중국의 자본과 노동력, 일본의 경영지식과 첨단기술 및 한국인들의 직업윤리 등, 이처럼 동북아는 세 계에서 가장 우수한 무역블록의 형성에 필요한 모든 생산요소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미국과 동북아 사이의 무역 및 투자관계도 주목 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중국, 일본 및 한국의 제일 큰 수출시장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천문학적으로 불어나는 외채에 허덕이는 미국경제에 자금을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동북아국가들은 미국에 수출 없이는 경제위기와 사회혼란에 처할 것이고 미국도 동북아의 자본 없이는 인플레가 증가하고 기업들의 이윤과 투자소득이 격감할 것이다.
북한이 생존을 위한 해법으로 1995년 국가의 정책을 주체에서 선군으로 바꾸고 외부의 경제원조에 의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했다. 1. 외국의 인도적 도움을 받았고, 2. 핵을 포기하겠다는 조건으로 미국과 그 우방국으로부터 경제 원조를 받았으며, 3. 개성공단, 금강산관광과 같은 경제특구를 설치했고, 4. 무기수출 및 위 조지폐사용 등 불법이거나 수상한 방법으로 외화를 획득했고, 5. 2002년부터 경제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북한이 2006년과 2009년에 핵실험을 하고 나서 유엔과 미국 및 그 우방 국가들의 경제제재와 감시가 더욱 심해져서 어느 하나 잘되어 가는 것이 없어 북한의 경 제사정은 더욱 악화되었다. 따라서 최근에 또다시 북한붕괴설이 나도는데,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이 붕괴되지 않을 만큼 도와줄 것이고 북한이 붕괴될 처지에 놓이면 중국이 직접 개입할 것으로 보는 게 국제적 시각이다. 그와 같은 연유로 미국과 동북아국가들은 자국의 안전, 에너지공급, 및 경제적 번영을 위해 북한문제에 서로 협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