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아버지는 농한기에는 소장수를 했고, 농번기에는 남의 땅을 경작하는 소작인으로 무척이나 가난한 생활로 생계를 꾸렸다. 그러나 큰형(영희)이 장사를 시작한 뒤에야 비로소 우리 집안은 먹고 사는 데 큰 지장이 없게 되었다.
우리 집안은 3세대에 5촌 아저씨 부부까지 한집 에서 살았기 때문에 정말 한 부대로 이루어진 대가족이었다. 그 당시에는 보통 만 6세나 늦어도 7세에는 당시 국민학교인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나, 나는 만 9세에 어머니의 강력한 주장에 힘입어 입학할 수 있었다.
잔심부름과 소먹이느라 1년 늦게 초등학교 입학
그해에도 가족회의에서 나보다 3살이나 적은 질녀(선자)만 학교에 보내고 나의 입학은 1년 늦게 시키기로 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어머니를 졸라서 그렇게 원했던 소학교를 그나마 입학하게 되었다. 나의 초등학교 입학이 늦어진 이유는 집에서 소를 키우고 잔심부름 할 아이가 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내가 소학교를 다녔을 때는 성적표에 각 과목성적과 함께 그 반의 석차가 기록되어 있었다. 나는 지능지수는 보통이었지만, 학교를 늦게 입학했고 또 공부하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한때는 우리 반에서 일등을 하였다. 그런데 어머니는 전교에서 일등을 한 것으로 얘기해서,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는 우리네 속담처럼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온 동네에서는 내가 소학교 전체에서 일등을 한 것으로 소문이 났다.
사실 중학교에 가서는 내 성적이 중간 정도였지만 정식 학교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큰 형을 비롯해서 우리 집안에서는 내가 중학교에서도 공부를 아주 잘하는 것으로 모두가 믿고 있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큰형이 나를 대학까지 공부를 시킨 동기가 되었다.
특히 내가 사랑하는 아내의 세 아들에 대한 정성과 희생을 보면 정말 자상하고 어진 내 모친의 다정한 형상과 따뜻한 손길을 느끼는 것 같다. 놀랍게도 모든 한국의 여성들은 본능적으로 자식들을 적절하게 교육시키는 재질을 타고난 것 같다. 나는 미국유학을 늦게 와서 그것도 고학을 하였고, 또 정착하는데 바빴기 때문에 솔직히 아이들이 어떻게 자랐는지 뚜렷한 기억이 없다.
그 같은 정황에서도 나의 아내는 아이들의 일상생활과 교육, 그리고 사회적인 성공에 대해 세심한 관심과 눈물겨운 정성을 쏟아 부었다. 따라서 아이들의 성장과 교육 등 모든 문제는 아내가 힘겨운 생활에서도 도맡아 주었는데 아이들은 모두가 기대 이상으로 잘 자라주었다. 지금도 부자간의 대화를 나누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잊지 않고 습관처럼 자기들의 성공은 어머니 덕택이라고 한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한창 자랄 때, 한국식 개념으로 판잣집 같은 비좁은 공간에서 살았다. 아이들은 에어컨도 없이 단칸방에서 지냈고 학교에서는 차이니스라는 놀림에 수치감을 느꼈지만 힘겹게 참아낼 수밖에 없었다.
또 학용품조차 충분히 사주지 못해 아이들은 형제간에 서로 다투기도 하고 불평도 많았고 입버릇처럼 자기들은 자라면 아버지처럼 절대로 대학의 교수는 안 하겠다고 저마다 다짐하기도 했다. 내가 본격적인 직장생활을 아이들이 자랄 때 했기 때문에 가정형편이 곤란했는데 아이들은 교수 월급이 적어서 우리가 가난한 것으로 착각한 것 같다.
아내 또한 어머니처럼 아이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줘
그런데도 아내는 세 아들의 어머니로서 이러한 제약의 악조건을 지혜롭게 역이용하여 보다 활달하고 도전정신이 넘치는 방향으로 아이들을 교육시켰다. 그리고 주문처럼 “당분간 참고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들려주었다.
우리의 삶에 있어 항상 좋은 일만을 기대할 수는 없기에, 전해오는 우리의 말에 “못 이길 시련은 없다”고 하지 않았겠는가? 아내는 어린 자식들에게 참고 열심히 공부하면 반드시 앞으로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말을 신념처럼 일깨워 주었다.
“너희들은 꼭 기억하여라. 희망을 잃으면 절망밖에 없다.”
대체로 이와 같은 긍정적인 말과 따뜻한 격려로 아이들은 모두 열심히 공부하고 또 착하게 자라서, 좋은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어머니의 교훈
_ 엄창섭
지혜로운 조선의 어머니는
목숨처럼 소중한 아이가 입을 열어
맨 먼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
겨레의 혼인 한글을 깨우치게 하고
신라 천년의 고도 서라벌과
5천년 역사의 맥이 굽이치는 한강이
조국의 큰 강임을 가르친다
지순한 이 땅의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이가 자라
혈육의 의미 깨닫게 될 때면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이름이며
태극기는 겨레의 표징이라는 것과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되는 애국가를
목이 쉬도록 가르친다
한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조국의 참담한 현상 앞에서
피 멍든 손으로 영혼의 닻줄 당기는
어머니, 당신의 이름을 나직하게 불러도
억장은 내려앉고 뜨거운 눈물 울컥 솟아난다
‘아들아, 좌절하지 말고 다시 일어나
환상을 보라’며 저토록 비통 속에서
세기의 강물을 깨우시는 눈부신 음성
무한의 자유 공간을 향해
하얗게 비상을 시도하는 갈매기
불끈 치솟는 장엄한 태양
정녕 이 땅의 건강한 아침은 밝아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