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온 고향으로 가고파
금의환향하겠다고 나 자신에게 굳은 약속을 하고 고향 반곡리를 떠난 지도 덧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어느덧 60년이 흘러갔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고향은 바로 그리움이다. 나를 비롯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들은 흙으로 떠나갔고 살아있는 세대들은 고향을 등지고 멀리 큰 도시나 혹은 가깝지 만, 농촌이 아닌 도시로 떠나갔다. 몇십 년 오롯이 이마 맞대고 우리 가족들이 한 고향에 붙박여 대를 이어 살아가던 삶은 영원히 과거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반곡리는 내가 나고 자란 곳이기 때문에 항상 그립다.
내가 미국을 오던 1969년만 해도 한국은 몹시 가난한 나라였다. 나는 김포공항을 떠날 때 미국에서 선진 경영지식을 배워서 한국으로 돌아가 조국의 번영에 이바지하겠다고 몇 번이나 굳게 다짐을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어느덧 한국은 동방의 등불이 되었다. “동방의 등불”은 1929년 인도시인 타고르가 한국인 에게 보낸 송시의 제목이다.
유럽에서 온 미국의 이민 1세들 중에 적잖은 사람들이 은퇴하고 조국에 돌아가 정착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도 몇 년 전까지도 은퇴 하고 한국에 가서 내 여생을 보내거나 아니면 매년 한국에서 몇 개월 씩 지낼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감안해서 2013년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미시간 주에서 일생을 보내기고 결심했다. 따라서 내 조국 대한민국도 나에게는 영원히 남의 땅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내가 태어나서 33년간 살았던 조국이기 때문에 항상 그립다.
'가고파'의 바다는 이은상이 태어나고 살았던 마산 앞바다 합포만으로, 이 시는 1932년 그가 이화여전 교수로 재직할 때 쓰였다고 한다. 이 시는 나에게 평화로운 고향 “반곡리”와 조용한 아침의 나라 “대한민국”으로 돌아가 깨끗하게 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 꿈엔들 잊으리요 그 잔잔한 고향 바다 /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 가고파라 가고파 / 어릴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 간들 잊으리요 /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는고 / 보고파라 보고파 /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 돌아가 가서 한데 얼려 옛날같이 살고지고 / 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웃고 지내고저 / 그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
연재를 마치면서
보잘 것 없는 저의 자전에세이 ‘꿈 너머 꿈’을 일 년 동안 연재해 주신 히스토리즈 여러분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해 여름 제가 태어나서 15년간 살았던 고향 문경과 33년 동안 살았던 조국 대한민국을 마지막으로 방문하고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많이 울었습니다.
미국에 돌아와서도 인생이 너무 허무하고 무상하다는 생각 때문에 한동안 슬픔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때 히스토리즈에 시작한 저의 자전 에세이 연재는 새로운 희망과 행복을 제공했습니다.
누군가 우리는 얼마든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작과 끝은 상대적이라고 합니다. 비록 저의 자전에세이 연재는 끝이 났지만 앞으로 히스토리즈에 연재될 다른 사람의 자전에세이를 애독할 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동안 저의 글을 애독해 주시고 북리뷰까지 해주신 분들의 성함과 지난해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작성한 시 3개를 다음에 열거하고 저의 난필을 줄입니다.
(존칭생략): 김성수, 윤석규, 조정. 정원석, 이함, 허문영, 최택용 그리고 공혜준
고향으로 가는 새털구름
푸른 꿈, 그 젊음의 한 때
태평양의 하늘을 가로질러
그렇게 한미양국을 오갔다.
높은 산과 도도한 강줄기 마주치는
한 폭의 산수화 같은 고향 산촌은
또 숨 가쁘게 자동차로 오갔다.
청운의 꿈을 실은 여객기
따뜻한 정감의 시외버스
이제는 흘려버린 한갓 꿈이다.
모국을 향한 바람에 흐르는 구름
새털 구름결마다 아득한 꿈의 날개다.
태평양 건너 청자 빛 하늘 아래 있는
동방의 등불인 조국 대한민국
구름 타고서라도 가고 픈 삶의 충동.
고향으로 향해 흘러가는 구름
꿈처럼 아득한 유년의 그리움은
오늘도 못내 눈물겨운데,
풀피리 불며 뛰놀던 동무들 자리한 곳
정녕 구름에 실려서 라도 가고 파라.
고운 꿈과 따뜻한 정(情) 묻어 있는 구름
이국의 눈물겨운 삶이 피곤할지라도
고국의 그리움과 이 간절함 어이하나.
어린 날 버들 숲의 언덕에 모여 앉아
정겹게 뛰놀던 악동(惡童)들, 새삼 절절한 날
낮은 산자락 갈대숲의 바람을 가로질러
새처럼 자유롭게 비상하고 싶은 충동(衝動).
문경새재
구름 위로 한층 더 높이 솟아
바람도 쉬어 가며 넘는 문경새재
높고 험한 새재의 등마루에
떨어진 빗물 어느 방향으로 가는가에 의해
한순간 운명처럼 그 흐름이 바뀐다.
북쪽으로 가면 남한강으로 흘러들고,
남쪽으로 흐르면 낙동강물이 된다.
남한강과 낙동강의 시원한 바람이 스쳐가고
푸르고 푸른 노목들 하늘의 해 가려도
장원급제를 꿈꾸며 과거 보러
한양을 넘나들던 한 맺힌 고갯길
몸종과 필마는 숨이 차 헐떡이고
선비는 갈 길이 바빠 애태웠던 곳
즐거웠던 일은 그 몇 번이며
괴로웠던 일 또한 몇 번이었을까?
장원 급제하고 금의환향하던
선비들은 등마루에서
‘웅장한 경치 동방의 제일’이라
목이 터져라 저마다 크게 외쳤고
‘견줄 곳 없는 이 험준한 고개’
피곤함 잊고 단숨에 넘었단다.
푸른 꿈을 지닌 문경 출신 삼돌이도
1950-1960년대는 버스로 수백 번
문경새재를 숨 가쁘게 넘나들며
희비 또한 그렇게도 엇갈렸다.
고향을 떠난 지 반 백 년 만에
설레는 마음을 앞세우고
찾았던 내 삶의 마지막 귀향 길
자동차로 3분 만에 터널을 통해
바람처럼 문경새재 지났을 때,
“아, 이제는 다시 못 볼 새재여 안녕” 했더니
가슴 아파, 두 눈에서 눈물이 펑펑 나더라.
내 고향 반곡리
탯줄을 묻고 15년간 성장한 고향은
온통 천지에 낮은 산자락이 내려앉은 듯한
문경의 적막한 산촌 반곡리.
놀랍게도 타향살이 70년에 육체는 늙어
뜻대로 돌아갈 수 없는 산천이라 지만
덧없는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가고
돌아가 봐야 모르는 사람만이
옛 고향산천에 살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태평양 저 건너 그리운 내 고국의 하늘
진달래와 민들레 꽃 동구밖의 산천에서
울 것 불 것 피어나고
뻐꾹새와 뜸부기 날아오르던 그 산촌
신록의 계절에 그 푸른 영 강의 바람이 불면
마을 앞 정자의 나뭇잎들 일제히 춤추고
그곳에 살던 유년의 삶이 눈물겹다.
300년 이어온 순천 김씨 마을
내 고향을 오랜만에 찾아가 보니
산과 강은 예와 다름없으나
아는 사람 간 곳 없더라.
도시화가 계속 되면서
대대로 거주해온 가까운 순천 김 씨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이제 내가 태어나고 자란 반곡리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더라.
한번 왔다 가는 이 세상
살면 은 얼마나 살겠다고
고향 떠난 지 70년 만에
설레는 마음 앞세우고 찾았던 마지막 고향 길
울면서 떠난다
영혼으로 다시 돌아올 때가지
내 옛 고향 반곡리여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