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목동아 (20화)

온종일 양을 돌보던 소년이 장난기가 발동하여 이리가 나타났다고 동네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였다. 몇 번 그런 거짓말로 동네 사람들을 속인 뒤 진짜 이리가 나타나 구원을 청했으나 아무도 소년의 말을 믿지 않아 결국 소년은 이리에게 물려갔다는 우화(寓話)가 있다.

소치는 소년

나는 겨우 철이 들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약 15년 동안 소치는 소년이었다. 내가 소학교 입학 몇 년 전 우리 집에는 어미 소와 송아지를 사육하고 있었다. 어미 소는 농사에 사용하기 위해 사육했고, 송아지는 재산을 늘리기 위해 키웠다. 어미 소와 송아지를 이산 저산으로 몰고 다니면서 풀을 뜯어먹게 하고, 돌보는 것이 내 임무였다. 이렇게 소를 돌보는 일은 방목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온종일 양을 돌보던 소년이 너무 지루해서 장난기가 발동하여 동네 사람들을 여러 번 속였다는 우화를 실화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온종일 혼자 있자니 심심해서 나와 순한 송아지는 때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리를 맞대고 밀고 당기는 장난을 했다. 그러다 보니 내 머리에 쇠버짐이 생겼고 집에서 만든 약을 사용했지만, 더욱 악화되었다. 쇠버짐이 온 머리로 감염되자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을 받고 난 후 한동안은 머리가 전부 빠졌고 나중에 다시 머리카락이 자라기는 했지만, 꽤 큰 8자형의 대머리가 생기고 말았다. 그 이유는 쇠버짐이 심한 곳에는 고름을 흡수하도록 8자형의 심지를 사용 했는데 그곳의 머리카락 뿌리가 죽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나는 이 8자형의 대머리 때문에 중학교 때는 내 이름보다는 ‘뻐꺼진놈’으로, 고등학교 때는 ‘썩은 2세’로 더 잘 알려졌다. 양치기 소년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거짓말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고, 소치기 소년은 지루함을 극복하기 위해 송아지와 장난하다 8자형의 대머리를 얻었다.

그 시절 아버지와 형들은 농사를 하셨고, 나는 산과 들 그리고 강변에서 소치는 소년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와 형수들은 양계를 하신다고 앞마당에 닭을 키우셨다. 그리고 뒤뜰에는 부추, 호박, 고추를 심으셨다. 어머니가 끓여준 된장국과 보리밥을 먹으며 철없이 뛰어놀던 이때가 나의 일생 중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야말로 꿈같은 향토 냄새 속에서 무공해 시대에 행복하게 지내던 시절이었다.

▲ 풀밭에서 자유로이 풀을 뜯는 송아지를 요즘에는 보기 어렵다

몇 년 전 내가 고향을 찾았을 때 혼자서 앞산으로 올라가 야생화를 따기도 하고 산등성이에 앉아서 영강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지만, 이제는 낭만이 넘치던 고향은 아니었다. 모든 것이 너무 변했기 때문이다.

내가 살던 초가집은 기와집으로 변해서 낯선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라디오 한 대 없었던 동네에 TV, 수도, 컴퓨터 등 최신문명의 혜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마을이 되었다. 영강변의 백사장은 논과 밭으로 변했고 만인의 방목장이었던 산과 들은 출입금지구역으로 변했다. 도로와 마을 사이의 오솔길은 트럭이 다닐 수 있는 넓은 길로 확장되었고 자가용을 소유한 사람들도 있었다. 버스로 한 시간 걸려 넘던 문경새재는 이제 터널을 통해서 3분이면 통과할 수 있게 되었다. 동네 주변의 산들, 언덕들, 강과 들판을 통해서 나에게 낭만과 꿈을 주었던 자연환경은 내 마음속에만 남은 유물이 되고 말았다.

낭만과 꿈을 주었던 고향은 이제 내 마음 속의 유물

세상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물론 좋은 점도 많지만, 요즘처럼 각박하고 힘들다 보니 과거의 추억을 더듬어보게 되나보다. 요즈음 날로 발전해가는 산업의 다양화 속에서 가장 큰 문제는 ‘환경의 오염’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자동차의 움직임, 또 수많은 인구의 수도권 집중현상, 각종 폐기물과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폐수들, 그리고 곳곳에 함부로 버려진 각종 폐품들, 우리 주변은 온통 쓰레기로 가득 찬다는 생각이 앞선다.

어디를 가나 쓰레기더미, 폐차장, 폐기물 창고, 각종 오염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불행스럽다. 바다가 방사능에 오염되고, 토양은 중금속에 죽어가고 있고, 대기의 환경도 열악하여 호흡기 질환의 발생도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보면 무공해라는 단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하게 된다.

따라서 자연환경에 순응하며 살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자연을 변화시키는 시대를 살고 있다. 발달한 건축ㆍ토목기술로 많은 인공 구조물로 포화된 도시에 살던 사람들은 자연이 주는 편안함을 선호하고 있다. 자연을 경험하고 체험하는 관광 상품들이 인기가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을 오감으로 느끼고 감상하며 즐기는 시대가 되면서 도시 내에서 이러한 여건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도심 내에 공원을 마련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술을 앞세워 개발하다 보니 편리한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환경오염문제가 심각하게 되었다. 인간과 자연환경을 분리하여 생각할 것이 아니라 상호 간에 연결된 관계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현대에 있어 자연환경과 인간은 이러한 관계이다. 둘을 따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의미를 지닌 것이다.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조건의 묘수를 찾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정말 오래간만에 찾은 고향을 허전한 마음으로 떠나면서 내가 방목장으로 사용했던 도로 옆 산을 지날 때 <아 목동아>라는 노래의 가사가 내 머리를 스쳐갔다. 이 노래는 나에게 어린 시절 동무처럼 친근한 노래이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언제 들어도 반갑고 가슴을 따뜻하게 적셔주는 노래다. 그러나 내가 인생의 겨울에 도달하면서 들으면 더 슬프고 애달파지는 노래가 되었다. 그렇지만, 이 노래의 가사를 조용히 음미해보면 언젠가는 그리운 모습들을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따뜻한 소망이 눈물처럼 가슴 속으로 밀려온다.

아 목동아

1.
아, 목동들의 피리 소리들은 산골짝마다 울려 나오고 여름은 가고 꽃은 떨어지니 너도 가고 또 나도 가야지. 저 목장에는 여름철이 오고 산골짝마다 눈이 덮여도 나 항상 오래 여기 살리라 아 목동아 목동아 내 사랑아.

2.
그 고운 꽃은 떨어져서 죽고 나 또한 죽어 땅에 묻히면 나 자는 곳을 돌아보아 주며 거룩하다고 불러 주어요. 네 고운 목소리를 들으면 내 묻힌 무덤 따뜻하리라 또 네가 나를 사랑하여 주면 네가 올 때까지 내가 잘 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