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비극적인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8일까지 지속된 한국과 북한 간의 전쟁이다. 인류역사상 참으로 불행했던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도 어언 65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름 없는 산자락에서 또 바다에서 적의 총탄을 맞고 죽어간 250만 명이 넘는 국군 및 유엔군과 민간인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 조국은 한강의 기적을 낳아 놀랍게도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 되었다.
북한이 자행한 천안함 폭침사건(2010년 3월 26일)이나 연평도 포격사건(2010년 11월 23일)은 한국전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한국전쟁이 시작된지 불과 한 달 사이에 북한군은 중부지방과 호남지방을 모두 휩쓸고 대구까지 내려왔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를 정도로 매우 급박한 처지에 있었다. 다행히도 한국군과 유엔군이 마산, 왜관, 영덕을 잇는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해 북한군의 격렬한 침공을 격퇴하고 반격을 시작할 수 있었다.
역사상 동족 간의 비참한 전쟁이 각 가족에게 미친 영향으로 불행을 겪어야 했던 개인적 삶의 모습을 뒤돌아보면 너무 참혹하여 누구나 할 말을 잊을 수밖에 없다.
한국전쟁은 우리 집안에도 비극을 안겨 줘
특히 나에게 있어서 전쟁은 우리 가정을 파괴해서 민족적 비극 이전에 개인적으로 불행을 체험케 하였다. 당시에 나의 둘째 형(병희)과 셋째 형(세묵)은 군인으로 참전했다. 불행하게도 셋째 형은 치열한 전쟁 중에 전사했고, 정부에서 화장해서 보낸 형의 유골은 우리 집안에서 그 당시의 풍습대로 영강에 뿌렸다고 한다. 따라서 마땅히 현충원에 안장되었어야 할 형의 유골이 낯선 강변에서 한줌의 흙으로 남아있 을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인생의 무상함을 절감케 된다.
결혼한 지 몇 년 만에 남편을 잃고 가난과 멸시, 그리고 천대 속에서 아들 하나를 키우면서 일생을 보낸 한 여인(황계임)의 한을 그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나마 아주머니를 기쁘게 했던 것은 형이 전사했을 때 두 살이었던 아들 기철이였다. 모든 환경으로 봐 기철이는 불량아가 될 처지에 있었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성품이 착한 기철이는 공부도 잘해서 은행에 취직을 하고 외로운 홀어머니를 잘 모신 이상적인 아들이 되었다.
둘째 형은 돌아가신 지 38년만인 2015년 6월 3일, 6.25 참전 유공자의 자격으로 유골이 가족묘지에서 이천에 있는 호국원으로 이장되었다.
우리 형제들의 돌림자는 ‘희’였는데 셋째 형의 이름에는 왜 이 돌림자가 사용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항렬을 나타내는 자(字)를 항렬 자 또는 돌림자라고 한다. 항렬(行列)은 같은 씨족 안에서 상하의 차례를 분명히 하기 위하여 만든 서열이다. 형제들은 형제들대로, 아버지의 형제나 할아버지의 형제는 또 그들대로의 이름자 속에 항렬자를 가지고 있으며, 같은 세대(世代)에 속하면 촌수에 관계없이 같은 항렬자를 쓴다. 그러나 한국이 서구화되면서 이름에 이 돌림자를 사용하던 관습이 서서히 약해짐에 따라 지금은 이 돌림자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한다.
기철이는 1997년에 현충원을 방문하여, 유해를 수령한 전사자는 국군묘지에 안장이 안 된다는 답변을 듣고 그냥 가슴에 묻어두고 살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기철이는 아버지가 전사한 지 61년이 지난 2014년 8월 5일에서야 아버지의 묘비가 국립서울현충원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국립묘지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전사하신 분의 경우 이미 산골을 하셨다고 하더라도 국립묘지가 설치되기 이전이므로 위패 봉안이 가능하다.”는 육군사관학교 조교수 김인수 소령의 정보가 형의 묘비를 찾는데 도움이 되었다.
국립묘지는 1955년 국군묘지로 처음 만들어졌다가 1965년 국립묘지로 승격되었다. 형은 국립묘지가 설치되기 전인 1953년 6월 12일에 전사했기 때문에 국립서울현충원에 위패가 봉안된 모양이다. 국립묘지에 위패봉안이 되었지만, 이것을 모르고 지나는 유족들이 우리 형의 경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정부에서 홍보를 해서 이러한 유족들을 찾아 주길 기대해 본다.
|
|
| ▲ 유해 없이 국립서울 현충원에 세워진 필자 셋째 형의 묘비 |
|
김 소령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미 위스콘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저명한 국제학술지에 여러 편의 논문을 잇달아 발표한 재원이다. 뿐만 아니라 몇 년 전 내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김 소령은 육군사관학교 조교수들에게 영어논문 작성법에 대한 특강을 하도록 초청해주어서 난생처음으로 육사를 방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매주 금요일마다 있다는 전교생 사열식도 참관했다. 특히 그날 은 은퇴하는 교수의 환송을 겸한 사열식이어서 교수인 나에게는 더욱 인상적이었다. 큰형과 담임선생의 반대로 고3 때 육사에 진학하려던 꿈을 접고 한때 몹시 실망했던 기억이 내 머리를 스쳐갔다.
60여 년 전에 산정현교회의 주기철 목사 밑에서 부친은 장로로 그리고 자신(장인)은 집사로 시무한 경험이 있고 또 지주였던 장인(김경진)은 공산당의 박해를 견디다 못해 온 가족이 한국전쟁 직전 남하를 하는 바람에 평양에서 태어난 아내와 결혼하게 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한 우리 가족은 몇 개월간 공산당의 통치 하에 살면서 큰형은 어쩔 수 없이 마을 이장 일을 보게 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할 때, 선발대에 속한 학도병(고등학생과 대학생으로 구성된 군인)들이 인민군 치하에서 협조한 사람들을 모조리 처형 한다는 소문 때문에 이들에게 잡혀간 큰형이 처형되는 걸로 알고 온 가족이 공포에 떨었다. 더구나 이때 우리 마을 부근에서 아군과 적군이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였고, 멀지 않은 곳에서 대포소리가 밤낮으로 그칠 날이 없었기에 우리 가족은 불안감에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우리 가족의 실질적 가장이던 큰형의 신변을 제일 염려한 분은 물론 어머니였다. 밤낮 정화수 한 그릇을 상위에 올려놓고 아침저녁으로 오래 기도를 드리면서도, 가족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큰 애비는 꼭 살아온다.”고 장담하기도 했다.
모친의 예측이 근거 없는 줄 알면서도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도 잡는다.’는 속담처럼 그나마 온 가족은 희망을 잃지 않았고, 다행히도 큰 형이 심한 고문만 받고 풀려나는 바람에, 뒷날 큰형이 나를 대학공부까지 시키게 되었다. 1969년 미국유학을 위해 받은 신원조회 때에 이것이 문제제기 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