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stria, Swiss 여행 (106회)
  제13장 원자력연구소1

하이델베르크 구경 다음날 Swiss Air 편으로 Vienna에 날아갔다. 여장을 풀기가 무섭게 IAEA(국제원자력기구)를 방문했다. 공보실장의 친절한 안내로 기구의 역할, 한국과의 협조관계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간단한 다과 모임에 참석했다.

IAEA 본부 건물은 다뉴브 강변에 위치해 있고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일품이었다. 공보실장과의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2차 대전 끝날 무렵 Austria의 국제적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무척 감명을 받았다. 마지막 결전을 목표로 베를린을 향해 진격하던 소련 적군(赤軍)은 Hungary를 점령하자 거침없이 Vienna에 돌입, 이틀 만에 무혈 입성했다. 당시 2차 대전 전(前) 독일에 강제 합병된 상태여서 독일 영토로 간주되어 소련군정에 들어갔다.

그 나라에는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등 다양한 이념적 분파가 있었으나 소련군정 앞에서는 오로지 Austria인(人)만이 존재했다. 군정에 협력했으나 일방에 치우치지 않고 무엇이 Austria의 장래를 위해 메리트가 있느냐 하는 관점에서 과도정부를 이끌어 갔다. 급기야 Auatria를 중립국으로 선포하여 소련을 안심시킨 다음 군정(軍政)을 자연스럽게 종식시켰다. 절묘한 화합의 정치로 혼란 없이 슬그머니 서방(西方)의 하나로 변신해 갔다. 유럽 대륙을 3백여 년간 호령했던 Hapsburg 왕조의 그 권위와 전통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오늘날의 Austria는 가장 평화로운 예술의 나라로 계속 발전하고 있다. 이념일랑 접고 나라 사랑이 먼저라는 교훈이다.

귀로에 요한 스트라우스 작곡으로 유명한 「비엔나 숲의 이야기(Tales from a Forest of the Vienna)」, 그 멋있는 숲을 구경하고 싶었다. 운전수에게 부탁하니 OK! 한다. 올 때는 시간 때문에 다뉴브 강변 고속도로를 이용했기 때문에 숲을 볼 수가 없었다. 다뉴브 강을 건너서자 바로 나지막한 언덕으로 2차선 도로가 곧장 뻗어 있었다. 도로 양편으로는 포도밭이 보이고, 그 너머로는 가문비나무로 빽빽한 독일에서 흔히 보이던 Black forest가 끝없이 연결되어 있었다. 중간 중간 길가에는 와인식당이 보이고 길가 노천테이블에는 삼삼오오 모여 글라스 와인을 즐기고 있었다.

좀 한갓진 Wine Bar에 차를 세우고, 백포도주를 시켰다. 포도주를 직접 생산하는 Winery로 보이는 이 식당에서는 큼지막한 Jar에 듬뿍 백포도주를 담아가지고 와서 따라주는데 온도도 적당하고 달큰한 것이 나의 구미에는 아주 적합했다. “Sweet wine, please!” 했더니 동양의 촌신사가 와인을 청구하는 것으로 알고 극히 대중적인 브랜드를 내놓은 모양인데 맛이 좋았다.

새소리가 산속 풍경을 채워주면서 스트라우스의 그 멋진 왈츠 곡을 연상케 한다. 가파른 정상에 올라도 높은 나무에 막혀 시야가 한동안 차단된다. 한참 만에 완만한 구릉을 지나면서 시야가 트이고 나무로 적당히 덮인 공원지대가 전개되면서 낭만적인 풍경이 비엔나 도심 가까이까지 이어졌다.

여장을 푼 곳은 4, 5층의 나지막한 유럽 샤토 풍의 여관호텔이었다. 숲속에 둘러싸인 이곳은 정원이 잘 손질되어 있고, 좋은 꽃으로 로비가 잘 장식되어 있었다. Hapsburg 왕조의 정궁(正宮)이 바로 앞이어서 다음날 일찍 구경할 수 있었다. 센브른 궁(宮)은 후에 보게 된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이나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의 아미타르 궁에는 못 미치지만 음악의 도시답게 궁 안에 많은 연주를 위한 공간들이 있었고, 넓은 잔디 정원 끝에는 향나무로 만들어 놓은 높은 미로가 특이했다. 일본식 연못이 축성되어 동서양의 조화를 맛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도시에서 가장 자랑한다는 중앙공원에 들렀다. 오스트리아 그리고 독일이 탄생시킨 그 많은 음악가, 철학자 그리고 예술인들의 유택이 있는 장소인데 자연공원으로 꾸며 놓고 있었다. 베토벤 바로 옆에 슈벨트가 있는 등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숨이 막힐 정도였다. 묘비, 거대한 조각품들은 그 자체가 박물관 전시장이었다. 우거진 숲속에 잘 정돈된 산책로 등, 묘지라는 거부감을 자연에 잘 희석시킨 안식의 장소였다. 시내 중심가로 다시 돌아와 그 유명한 비엔나 오페라하우스와 그 앞의 대성당을 구경했다. 단순함 역사적 건물이라기보다 조각품, 예술작품이라는 느낌의 건물이었다.

다음날 Swiss Air 편으로 제네바로 향했다. 유럽은 많은 이름 있는 선진국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국토는 매우 적어 비행기로 한 시간 이내면 어디든지 도달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 비엔나를 뜨자 내가 탄 항공기는 곧 고도를 낮추어 스위스 제네바에 착륙했다. 아름다운 레만 호(湖)를 끼고 있는 제네바는 국제회의 도시답게 아름답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공항에는 나의 대학동기인 이주영(李周永) 군이 마중을 나와 주었다. 주(駐) 제네바 대사관의 참사관으로 있다 미국으로 이주하는 중이었고, 부인과 자녀들은 이미 떠나고 홀아비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사로 어수선한 집이지만 여장을 푼 다음 레만 호를 끼고 도는 관광 드라이브를 나갔다. 호수 가운데 하늘로 치솟은 60여 미터의 분수는 장관이었다. 일 년 내내 가동 된다고 한다.
 
▲ 알프스 산장에서

외식을 하자는 제의가 있었지만 시내에 한식당(韓食堂)이 아직은 없다고 한다. 약 일주일 김치 맛을 못 본 처지를 호소했더니 집에 가서 같이 취사를 하자는 대안이 나왔다. 김치는 물론이고, 고사리무침까지 나오는 판에 포식을 했다. 고사리에 얽힌 이야기가 재미있다. 제네바 인근에 약 20가구의 동포가 사는데 봄에 버스를 대절하여 알프스 인근의 야산에 야유회를 가서 지천으로 널려있는 탐스런 고사리를 꺾어 와서 집집마다 삶아 말려서 일 년 내내 요리해 먹는다고 한다. 토질이 좋아서 그런지 고사리가 탐스러워서 굵기가 손가락만하고 향취도 좋았다. 공원 당국도 소와 같은 가축이 먹으면 해롭기 때문에 고사리 채취는 장려를 한다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

알프스의 나라 스위스에 왔으니 몽블랑 근처 Chamonix(샤모니)에 당일로 다녀오는 관광을 추천해 주었다. 다음날 아침 8시에 출발, 약 네 시간을 버스로 달려 도착했다. 중간에 스위스 영토에서 프랑스 영토로 넘어가는 국경검문소가 있는데 Guide가 여권을 회수해 가더니 10분 만에 입국검사가 끝나고 돌아왔다. 모든 것이 순탄하고 무리가 없는 여행 분위기였다.

샤모니에 도착하니 백설로 온 마을이 뒤덮여 있었다. 아래쪽은 한여름이고 몽블랑 쪽은 한대지방 이었다. 케이블카로 전망대로 한참 올라가는데 중간 환승역이 있었다. 수백 척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장대를 든 등산 팀이 군데군데 움직이고 있으며, 또한 시원스런 스키꾼들이 눈가루를 날리며 신나게 내리달리는 광경이 보였다. 완전히 별천지였다.

전망대에서 편편한 동굴 하나를 지나니 앞이 뻥 뚫린 새로운 세상이 전개되었는데 이태리 영토라고 했다. 관리하는 인원들의 복장이 이쪽 프랑스와는 완전히 달라 타국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샤모니 식당에 내려와 스위스 치즈를 위주로 한 샌드위치가 나왔는데 일품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깨끗한 물이 굽이쳐 흐르는 개울 옆에 차를 세워줬다. 물에 손을 대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떻게나 차가운지 뼛속까지 시린 0°의 물이었다. 빙산이 녹은 물이라고 한다.

차는 다시 출발해서 아침에 통과했던 스위스 국경을 넘는데, 문제가 생겼다. 일본인을 포함한 일행 전원은 아무 문제가 없는데 나의 Visa가 단수이기 때문에 무비자 입국이 된 모양이다. Guide의 안내로 관리 초소에 들어갔다. 친절하지만 극히 사무적이었다. 제네바에 온 이유, 친구가 한국대사관에 근무하고 있으며, 내일 파리로 떠나는 기차표까지 보이며 스위스에 불법 체류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을 설명한 끝에 풀려났다. 나 때문에 약 20여분 기다리게 했던 일행에게 미안하고 몸 둘 바를 몰랐다. 통과되었다고 미모의 백인처녀 가이드가 차내에 보고하니 박수가 터져 나왔다. 불과 10여 시간의 동행에 동지의식이 생긴 것이다.

대부분이 영국인들이고 젊은 일본인 관광객 두 사람이 동승했는데 일본은 스위스와 무비자 협정이 되어 있어 문제가 없다고 했다. 약소국 대한민국의 비애가 여기서 터져 나왔다. 6 .25 사변 후 25년 만에 느껴보는 뼈아픈 쓸쓸함이었다. 하루속히 이 굴레를 벗어나야지 다짐해 본다.

제네바 역으로 데려다 준 친구 이주영 군과 작별을 고하고, 로잔으로 행했다. 파리는 서쪽인데 로잔은 북쪽이다. 북쪽으로 가는 영문을 물으니 파리 직행은 로잔에서 갈아탄다고 한다. 로잔은 지금 같아서는 우리나라와 IOC 관계로 잘 알려진 도시이지만 당시에는 그런 연고가 없었고 단지 고교시절 독일어 시간에 배웠던 교과서 「Brother und Geronimo」라는 책이 생각났다.

어릴 적에 형의 실수로 동생을 장님으로 만든 죄의식 때문에 평생 동생을 뒷바라지하고, 유럽 전역을 동생을 이끌고 다니며 구걸하는 이야기인데, 비 오는 날 로잔 어느 집 처마 밑에서 추위에 떠는 동생을 꼭 껴안고 “내일은 오늘보다는 좀 더 나을 거야, 해도 뜨고 말이야.” 하는 형의 위로의 말은 나의 눈물을 생산하게 했던 기억이 나서 감회가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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