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 France 그리고 England_1 (107회)
  제13장 원자력연구소1

12시 자정에 로잔에 도착했다. 한 시간 후면 취리히에서 오는 파리 행 열차를 타야하는데 시내 구경을 나갈 수도 없고, 텅 빈 플랫폼 벤치에 앉아 기다리는 것도 Geronimo 못지않게 처량했다. 정시에 도착한 열차는 기세 좋게 달린다.
 
독일 국경에서는 차 안에서 간단한 여권 체크가 있었고 곧이어 차는 출발했다. 새벽에 프랑스령 다종 시에서 차가 멈추었는데 입국절차가 없이 라이벌 관계인 독일과 프랑스가 사이좋게 터놓고 지내고 있었다. 우리와 일본과의 사이를 생각해 본다. 

오전 9시쯤 돌고 돌아 드디어 목적지인 파리 리옹 역에 도착했다. 플랫폼에 내려보니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미모의 백인처녀가 다가와 “Mr. Kim?”하고 묻는다. “Yes, I am” 했더니 자기가 원자력청(CEA) 그리고 외무성(Quai d'Orsay)에서 파견한 통역 Guide라고 하면서 France 체류 동안 안내를 책임질 것이라며 자기소개를 하였다.

언뜻 이것이 미인계가 아닌가 의심이 날 정도로 깜찍하고 영어도 아주 훌륭했다. France에서 학부를 마치고 영국에 유학하고 돌아왔다는 이 여성은 28세이고 Marie Genevieve라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는데 다된 밥에 특별히 나에게 미인계를 쓸 이유가 없고, 미인계의 장본인이 되기에는 너무 당당했고, 자존심 강한 French 특유의 여성이었다.
 
아주 사무적이고 도도했다. 이것저것 일정에 관계되는 것을 부탁하면 즉각 즉각 해결해 주는 순발력이 있는 여자였다. 단지 흠이 있다면 말이 많았다. 프랑스 사람과 만나면 어찌나 이야기가 길고 긴지 프랑스말로 대화하는 자체가 예능으로 생각되는지 말을 그렇게 즐길 수가 없다. 여하튼 예쁘고 좋은 안내자를 파견해 주어서 감사했다. 샹 제리제 근처의 고색창연한 호텔로 안내 받고 체크인 했다.

다음날 원자력위원회(CEA)에 안내 받아 관리당당 부원장을 만났다. 동아시아 국가와는 처음으로 시작하는 계약이기 때문에 기대가 크다고 하며, 재불(在佛) 기간 동안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약속한다.

오후에는 근처에 있는 루블 박물관으로 안내 받았다. CEA의 한 공보실 직원이 인도했는데 Paris 공대를 나왔다는 공학도인데 프랑스 문화사에 대한 설명이 전문가 수준이었다. 어떻게 이리 자상하게 많이 아는가 했더니 자기는 프랑스를 사랑하고, 교양으로 어릴 때부터 문화, 역사에 관한 많은 책을 접했다고 실토한다. 진지했다.

아침, 저녁으로 포도주에 절은 프랑스 국민이 많지만 이와 같이 국가관이 확실한 엘리트 약 5%가 나라를 이끌어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실감이 난다. 박물관 중앙홀에서부터 사람을 압도한다. 그리스의 대리석 조각상 좋은 것은 다 모아 놓았고, 그림 전시장은 세계적인 작품들이 너무 많다보니 조밀하게 걸려있어 감상의 호흡을 맞출 수가 없었다.

역시 인기는 「모나리자」였다. 그 그림 앞에서 다시 줄을 서서 봐야 했다. 다른 그림에 비해 매우 왜소한 크기인데 사람의 눈을 편하게 끌어주는 매력이 있었다. 그 미소의 마력을 나름대로 다시 확인해 보는 그 즐거움을 어디다 비교하리! 「모나리자」 하나만 보아도 루브르 전부를 다 본 기분이다.
 
▲ 파리출장의 모습 (1975. 7.)

약 세 시간 정도의 관람을 끝내고 광장 벤치에 몸을 내렸다. Mr. Piere와 다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한국의 핵주기 개발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그리고 중진국으로의 진입을 위해 핵 발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랬더니 한국이 좀 너무 서두르는 감(感)이 있다고 지적한다. 한꺼번에 다 하려면 시행착오가 따르고 잘못된 작품이 나올 수도 있다는 사려 깊은 주의도 준다. 그리고 특히 한꺼번에 급히 서둘면 매우 비싼 값을 치를 거라는 조언까지 한다. 프랑스가 원자력 Hardware가 이만큼 발전하는데 30여년이 걸렸다고 한다. 유럽에서 가장 기초과학이 앞서 있는데도 말이다.
 
또 하나 감명을 받은 발언은 “Mr. Kim! 저 박물관 처마 밑에 서 있는 조각상을 보세요. 한 석공이 저 사암을 조각하는데 일평생 둘 내지 세 개 정도 만들고 세상을 뜹니다. Slow but sure가 해답이지요.” 한다. 나는 “우리는 압축 성장을 통해서 하루 속히 전후 회복도 해야 하고, 경제적으로 일본도 따라잡고, 북한보다 앞서가야 합니다.” 라는 입에 발린 말로 정치구호만 뇌까리면서 대화를 마무리했다. 좀 허전하고 대안의 메아리 같은 느낌이었다.

밤에는 호텔 근처의 그 유명한 「무랑루즈」 Show를 구경 갔다. 입장료는 약 $15, 당시 면세점에서 조니워커 Red 한 병에 약 $3 정도 했으니 꽤 비싼 구경 값이었다. 그것도 식사 없는 관람료만 그러했다. 아름다운 무희들의 캉캉 춤은 관객을 압도하였고, 마지막 Finale에서 폭포수가 쏟아지면서 무대 전체가 물바다가 되는 「싱크로나이싱」은 참말로 장관이었다.

다음날 드디어 방불(訪佛) 제 1 목적인 「상고방(SGN)」과의 기술공급계약에 서명(initial)하는 행사가 있었다. 계약서 매 Page 마다 계인(契印) 서명하는 절차인데 그쪽 법무담당 입회하에 project 담당 부사장이 나의 Counter part였다. 불과 30여분 만에 서명 절차는 끝나고 교외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옮기더니 환영 겸, 계약 성사의 축하 Luncheon이 베풀어 졌다.

약 7, 8명이 둘러앉자 치즈와 백포도주로부터 시작하더니 Main course가 나오면서 Port wine(red wine)이 돌아가고, 끝 무렵에 다시 French cheese(디저트용)에 2차 백포도주가 나온다. 끝이 없는 Wine 서빙에 음식은 약 10여 가지 코스에 이르는, 나로서는 전대미문의 프랑스 요리를 체험하는 행사장이었다. 마시고 이야기하고, 먹고 마시고, 또 이야기가 이어지고 끝이 없는 호화판 손님 접대였다. 나중에는 프랑스어도 잘 통하지 않는데 괴롭기까지 했다.

끝에 일어서는 순간 시계를 보니 장장 세 시간 반의 중식 시간을 보낸 것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신문에 날 일이었다.
다음날 핵연료 재처리로 유명한 「쌔크리」 핵연구단지를 방문했다. 우리 연구소 TRIGA Ⅲ에 있는 Glove box(핵연료 등 고준위 방사능 물질을 다루는 밀폐된 유리 box) 보다 4~5배 크기의 것들이 수십 개 설치되어 누렇게 조명을 받는 시설은 마치 마귀들의 통제실 같은 느낌을 주었다. 우리는 그것 다는 필요 없고, 2, 3개만 있으면 되는데 하고 겸손한 생각을 해 본다(90년대 초반 일본의 사용 후 핵연료를 거기서 재처리했음).

주말을 이용해서 베르사이유 궁전을 안내 받았다. 거대한 외관보다는 인테리어가 더 화려하고 멋이 있었다. 나폴레옹 전쟁 후 「파리강화회의」가 열렸던 GlassHall의 아름다움과 남쪽 창밖으로 전개되는 대정원의 분수대 등 루이 왕조들의 영화를 엿볼 수 있었다. 외무성의 연락을 받은 모양으로 평소에 공개하지 않는 밀실, 즉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내밀한 기도실 등을 안내 받았고, 동행했던 Marie도 자기도 처음이라며 무척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귀로에는 「제3의 사나이-The Third Man」의 마지막 Scene의 로케 장소인 그 당당한 포플러 가로수를 통과해 왔다. 다음날 일요일에는 파리 시내 구경에 나갔다. 「에펠」 탑에 올라 센 강을 내려다보는 경치는 가히 압권이었다. Marie의 설명 두 가지가 기억해 둘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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