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원자력연구소(HARWELL) 방문 (109회)
  제13장 원자력연구소1

당시 한국원자력연구소(KAERI)는 프랑스와 영국을 두 Top으로 하는 기술협력을 추진하려 했다. 초기에는 영국은 프랑스에 못지않게 적극적이었다. 차관방식의 논의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으나 시간을 가지고 협의하면 방법은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런데 프랑스는 적극적인데 반해 영국이 점점 소극적으로 변하고 좀 회피하는 징조까지 보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때부터 이미 미국의 압력이 서서히 먹혀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는 다소 독자적인 외교노선으로 가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압력을 배격하는 측면이 있었으나 영국과 미국은 모든 외교 면에서 철저 한 공조 체제였기 때문에 와싱턴이 ‘No’면 런던도 ‘No’였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와는 다소 느슨했지만 협조체제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으며, 나의 방문도 예방(禮訪)적인 차원이기 때문에 수락이 된 것이었다.

드골 공항을 이륙한 지 불과 1시간 20여분 만에 런던의 「히드루」공항에 도착한다. 비행기가 뜨기 바쁘게 고도를 낮추는 형국이다. 「도버」해협을 사이에 두고 백 년을 계속 싸워온 가깝고도 먼 나라 프랑스와 영국은 문화적으로 서로 매우 이질적인 나라이다.

런던에 도착하니 우선 언어가 자유롭게 소통이 되니 살 것 같다. 예를 들어 파리에서 “엘리제궁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지요?” 하고 영어로 묻는다면 “오뜨와(우측으로!)” 라고 꼭 프랑스어로 이야기한다. 분명히 영어를 알아들은 것 같은데 대답은 불어로 하는 사람들, 자국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고 불어로 말하면서 그 의미와 리듬을 즐기는 것 같다.

택시로 런던 시내 지하철까지 가서 우리 내외의 친구인 주영(駐英)대사관 통신과장으로 근무하던 강용중(姜容中) 씨 댁에 찾아가 여장을 풀었다. 「테니스」 매치로 유명한 「윔블던」 근처였다. 우리는 지하철을 보통 Subway 혹은 Underground라고 하는데 런던에서는 「튜브」, 즉 지하에 건설한 거대한 「파이프」(원통)라고 하는 모양이다.

다음날 일찍 「패딩턴」역으로 달려가 급행에 올라 영국 중북부의 Harwell을 찾아갔다. 열차는 전철인데 프랑스 못지않게 속도가 대단했다. 상당한 롤링이 있는데도 Speed를 계속 유지한다. 기차(汽車)의 발상지답게 안전에는 자신이 있는 모양이다. Harwell의 원자력연구소는 2차 대전 당시 독일 폭격을 위해 마련한 공군기지가 있던 곳으로 아주 광활한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우선 기구를 소개하는 브리핑을 청취하고, 원자력연구로(爐) 건물을 외곽으로 돌며 관람했다. 핵무기 보유국으로서의 위상이 당당했고, 보안도 무척 신경을 쓰는 것 같다.

더 이상의 것을 보여 달라고 하더라도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아 ‘연구로(爐) Tour’ 정도로 끝내고, 점심을 먹은 다음 제공해 준 리무진으로 인근에 있는 Winston Churchil 경의 생가인 Blenheim Palace로 향했다. Woodstock, Oxfordshire 지방은 강과 숲 그리고 푸른 초원으로 잘 조화를 이룬 이상향의 모습이었다. 「브렌하임」 궁(宮)이 자리 잡은 위치 또한 유속이 느린 호수풍의 강 옆에 자리 잡고 전망이 매우 좋았다. 비와 안개를 잘 처리할 수 있게 강의 높이와 하폭이 잘 마련되어 있었다.

「윈스턴」 경이 애인에게 청혼했을 때 걸터앉았다는 벤치에 한참동안 앉아 주변의 경치에 빠져들었다. 대부분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작가들의 글은 문장이 수려하고 곰살궂지만 역시 뼈대가 튼튼하지 못한 것이 흠이다. 그런데 「처칠」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의 뼈대가 견고한 것은 처칠이 젊은 시절 실패와 좌절을 많이 겪으면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처럼 심오한 인간의 도(道)에 이르렀을 것이라 추측한다. 그 바탕은 역시 Blenheim Palace의 그 특출한 「자연」에 기초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무한한 사색과 도전을 길러줄 수 있는 명당자리인 것을 확인했다.

약 한 시간 거리인 Oxford로 가기 위해 Local bus를 탔다. 그리고 Oxford College와 접해 있는 고색창연한 3층짜리 호텔에 체크인 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 호텔은 수백 년 동안 많은 명사들이 들었다고 하며 도착한 날도 만원이였다. 다음날 종합 졸업시험이 끝나면 자녀들을 데리고 돌아갈 학부모들이 많이 투숙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 영국 원자력연구소(Harwell) 방문 (1975. 7.)

나는 한국대사관을 통해 미리 예약이 되어 있어 편하게 투숙하였다. 외교부에서 위탁학생으로 와 있던 Mr. Lee라는 대학원생에게 연락을 했더니 졸업식 때 입는 「가운」에 수술이 달린 사각모자까지 쓰고 나타났다. 웬일이냐고 물었더니 학교식당에서 석식(夕食 : Dinner)을 먹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렇게 정장을 하는 것이 교칙이라고 했다.

자유분방했던 미국의 대학생활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다음날 학교와 시내 구경을 하고 호텔로 돌아오는데 「가운」으로 정장한 수백 명의 학생들이 호텔과 대학 강당 사이 길에서 응원가를 부르며 모자를 하늘 높이 던지는가 하면, 강당에서 하나하나 나오는 학생들을 껴안으면서 껑충껑충 춤을 추고 요란뻑적했다. 듣자하니 졸업시험(Baccalaureate Exam)을 끝낸 학생들의 축하하는 단막이라고 한다. 그 지긋지긋한 시험의 지옥에서 해방되는 순간이라 했다.

밤늦게 열차로 런던 「패딩턴」역을 거쳐 강용중 씨 댁으로 돌아왔다. 다음날부터 런던 Soho를 중심으로 구경을 했다.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방법은 역시 2층형 City tour bus를 이용하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의사당, Lundon Tower Bridge, 자유언론의 메카인 하이드파크 등 책에서나 나오는 많은 명물들을 보는 것은 참말로 즐거웠다.

하이드파크와 붙어있는 애완용 동물들의 공원묘지는 희한했다. 비석도 자그마하게 기교를 부려 만들어 세우고 꽃과 나무 잔디로 잘 다듬어진 공원은 신기하기까지 했다. 전 세계의 인구 반이 끼니를 굶은 판에 이게 무슨 짓인가 배알이 서기까지 한다. 그러나 생명에 대한 존중 그리고 오랜 기간 가족같이 애정으로 함께 했던 것들에 대한 보답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아름다운 마감이려니 생각하니 이해가 가는 것 같았다.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세계적인 문화재에 또한 압도되었다. 많은 역사적인 비극을 겪은 London Tower의 건물은 세계 여러 나라 학교 교사(校舍)의 Model이 되기도 하였다. 1932년에 지은 고려대학교의 도서관도 그 모델을 이용한 것이라 한다. 궁궐과 형무소로 번갈아 이용되던 이 건물은 드디어 박물관으로 정착됨으로서 그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 그 막강한 소장품을 보면서 이것들이 모두 대영제국의 약탈과 회유의 산물이 대부분이려니 생각하니 좀 씁쓸한 느낌마저 들었다.

영국에 체류하면서 느낀 것은 노조와 복지가 국가경제발전에 많은 브레이크가 되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우선 의료제도의 사회화로 인해 좋은 질의 백인의사들이 미국을 위시해 영연방,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으로 모두 떠나버리고 인도, 파키스탄, 남아공 등지에서 임상경험이 부족한 의사들이 대거 유입되어 의료의 질이 떨어지고 있으며, 유럽 그리고 과거 식민지 등에서 출산을 위해 임산부들이 몰려들어 영국의 지방복지 예산을 잠식하고 있다고 한다.

또 하나 목격한 것은 런던 시내구경을 위해 강용중 씨 집을 출발하면 반드시 지나가는 Over bridge가 하나 있다. 파손된 바닥을 수리하는데 지금 한 달여를 계속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이라면 약 일주일 정도면 말짱하게 고칠 것을 이렇게 질질 끄는 것은 토목, 건축 분야는 노동조합이 강경해서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한다. 그 후 「대처」 수상이 입각하면서 혁명이 일어난 것은 우리가 모두 잘 아는 사실이다.

약 일주일의 영국 투어를 끝내고, 파리로 귀환했다. 마지막 방문지인 「그르노블」 원자력 연구 단지를 방문할 일정이 잡혀있었다. 다음날 항공편으로 출발했다.

 
  Paris, France 그리고 England_2 (108회)
  중공 홍위병(紅衛兵)과의 조우 (북경사건)_1 (110회)
|1||2||3||4||5||6||7||8||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