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 홍위병(紅衛兵)과의 조우 (북경사건)_1 (110회)
  제13장 원자력연구소1

그르노블은 알프스 산맥 가까이에 위치하며, 이탈리아 국경과 접한, 기원전 카니발의 로마 침공과 그후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공격의 요충으로 사용했던 역사적인 도시다. 여기에 Euro-공동 Reactor 원자로(爐)가 설계 중이었고, 프랑스 시험로(爐)의 거점이기도 한 단지여서 우리 원자력주기 도입의 핵심인 시험 원자로를 공급할 예정인 곳이며, 60년대 그르노블 동계올림픽으로도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아름다운 도시다.

알프스 산맥을 배경으로 그 넓은 평야를 앞으로 끼고 1박 2일간의 시찰을 통해 많은 것을 보고 자료도 얻고 해서 흡족했던 순간, 동행했던 Marie 양이 종이 한 장을 흔들면서 나에게 쫓아왔다. 한국연구소 윤 소장에게서 온 telex인데 ‘예산문제가 심상치 않으니 일정을 단축하고 즉시 귀국하라’는 요지의 전보였다. 당시로서는 통신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 나의 친구인 파리 대사관 이희일 공사(公使)에게 부탁해서 좀 더 상세한 상황을 알아보게 했다.

설명인즉 과학기술분야 총 투자액이 확정되었는데 신설연구소까지 합해서 이 액수를 우선순위를 정해서 배분하게 된다고 한다. 9월 초 정기국회에 제출하기 전까지 각 연구소별로 액수의 결정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 Telex를 받았을 때에는 ‘바보들, 그만큼 해 놨으면 알아서 할 일이지.’ 했었는데, 그것이 아니지 않는가. 다시 원점에서 공작해야 하는 지경으로 상황이 바뀐 것으로 이해가 되었다. Marie에게 가장 빠른 비행기 편을 예약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르노블 2일째 오후 리옹 시(市)로 리무진을 달려 파리 행 고속열차(Super Express : TGB의 전신)에 몸을 실었다. 얼마나 빠른지 땅이 열차와 함께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시속 200km라는 속도는 비행기 이외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속도였으니까.

다음날부터 사업관리(Project Management)에 관한 일주일간의 교육에 들어가기로 「상고뱅」과 약속이 되어 있었다. 이 교육이 끝나면 모든 유럽 방문의 일정이 끝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사정을 설명하고 교육 스케줄을 취소하면서 바로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매우 바쁜 일정이었으나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경험과 즐거움이 충만한 여행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특히 파리를 대표하는 식빵, Baguette의 구수한 맛을 언제 다시 맛볼까. Continental Breakfast의 주종이 바케트 빵인데 Cheese-butter와 커피 한 잔이면 아침식사는 거뜬하다.
 
「파리지앙」은 퇴근길에 집 앞 골목길 입구에 있는 Bakery에서 갓 구워낸 그 길쭉한 빵 하나씩을 사들고 귀가한다. 절대로 종이로 싸 주거나 봉투에 넣어주는 법이 없는 이 독특한 운반법은 파리의 오랜 전통이다. 집까지 가면서 그 구수한 냄새를 흡입하면서 살아있다는 감각과 퇴근의 즐거움을 마음껏 느껴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했다. 

▲ 파리 ‘그르노불’ Europe 원자력연구소 방문 때
 
Telex를 받은 지 삼일 만에 Air France B-707에 몸을 실었다. 도착했던 「샤를 드골」공항에서 출발했다. 비행 스케줄을 보니 지난번 올 때와는 완전히 반대로 북극 Route가 아닌 남반구를 가로지르는 비행거리가 아주 긴 여정이었다. 드골 공항을 이륙하고 이탈리아 반도를 가로질러 「이오니아」, 지중해를 거쳐 3시간 만에 「그리스 아테네」 공항에 도착했다.

아테네에 착륙할 때 「에게」해(海)를 천천히 저공비행하는데 인근의 조그마한 수백 개의 작고 큰 섬 그리고 백색의 집들은 아름다우면서도 이국적인 정서를 마음껏 자아냈다. 바다 색깔도 맑고 고운 짙푸른 색이었다. 승객들이 공항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이 기내(機內) 진공청소가 되고 많은 사람이 내린 것을 발견했다. 다시 출발, 이번에는 파키스탄의 항구도시 「카라치」에 날아간다고 한다.

「터키」상공을 지나면서 이란 그리고 파키스탄 초입까지 붉은 사막의 연속이었다. 단조로운 사막 상공을 날더니 날은 저물어지고 밤 9시쯤 해서 파키스탄 제2의 도시에 착륙했다.

공항의 활주로 포장이 좀 엉성한지 비행기가 Taxing 하는데 매우 흔들린다. 많은 나라를 비행하다 보면 활주로의 소음과 흔들림으로 그 나라의 수준을 가늠할 수가 있겠다 싶다. 일본의 나리타, 파리의 드골, 런던의 히드루에서 이착륙을 비교해 보면 매끈하고 부드럽다. 그런데 아테네는 중간쯤 되고 카라치는 많이 엉성하고 다음 기착지인 북경(北京)의 공항은 완전히 전투기가 착륙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북경공항의 포장상태는 매우 열악해서 아마도 기계포장이라기보다 인해전술을 사용하여 사람 손으로 작업한 것이 아니었는지 싶었다.

상당한 인원을 다시 태우고 카라치를 이륙한 비행기는 인도 북쪽 네팔 국경 근처를 거쳐 가면서 엄청난 열대성 폭우를 만났다. 아래는 밀림 같은데, 칠흑 같은 밤중에 계속 번개가 치면서 기체는 오르락내리락하며 요동친다. 간혹 산불을 구경하는 것처럼 지독한 번갯불이 발아래 전개되면서 비행기는 숨 가쁘게 흔들리며 날아간다. 겁을 잔뜩 먹은 승객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캄캄한 기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남자승무원이 OK! OK! 하며 따끈한 커피를 돌리면서 분위기 전환을 시도한다. 그 많던 여승무원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고 남자승무원만이 확실히 복무하는데 직업의식이 확고하고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지구의 고봉 히말라야 산맥을 무사히 넘어갔는지 잠시 후 조용해졌다. 잠깐 눈을 붙이고 얼마나 지났는지 창밖이 훤해온다. 끝도 없이 펼쳐지는 평야, 아마도 옥수수 밭이나 벼농사의 논 같기도 했다. 군데군데 취락이 보이는데 한결같이 같은 형태의 마을이었다. 까만 기와지붕에 흑(黑)벽돌로 된 건물들인데 거대한 회관을 중앙에 두고 작업공장 같은 길다란 건물이 방사형으로 늘어섰다. 혼자서 저것들이 자급자족한다는 인민공사가 아닌가 생각했다.

아침을 먹고 나니 해는 중천에 떴고, 조금 있다가 거대한 강이 용틀임하듯 아래쪽에 전개되고 있었다. 아마도 양자강이 아닌가 싶은데 약 반 시간 후에 누렇다 못해 짙은 황토색의 또 다른 강이 발아래 전개되었다. 세계 3대 문명의 발상지 황하(黃河)임에 틀림이 없다. 이제 북경도 멀지 않겠지 하는데 비행기는 서서히 아래쪽으로 내려간다.

정오쯤 해서 북경공항에 도착했다. 아니나 다를까 활주로 착륙은 요란했다. 속도가 제어될 때까지 한참동안 심하게 덜덜거리니까 승객들끼리 서로 쓴웃음으로 인사를 하고 있었다. 서서히 Taxing하던 B707은 드디어 직선으로 뻗은 포플라 가로수 옆에 멈추어 서고 승객 일부는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포플라 나무 밑에는 농촌 노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한가로이 담배를 피우며 우리 비행기 쪽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주 목가적인 풍경이었다.

덜커덕하기에 아래쪽으로 내려다보니 6.25사변 때 자주 보던 「찌스」라는 소련제 화물차가 비행기에 가로 붙여 대고 짐을 내리고 있었다. 그 흔한 「컨베어」도 없이 인력으로 짐을 내리는 원시적인 방식이었다. 폐쇄사회의 낙후된 산업을 실감할 수 있었다.

조금 있더니 국방색 전투복에 빨간 왕별을 모자에 달고, 20대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다가오더니 기내에 있는 모든 승객들에게서 「패스포트」를 걷어 갔다. 당연한 것으로 알고 모두들 여권을 건네준다. 준엄할 것까지는 없지만, 상냥하다는 표현은 사치로 생각하는지 무표정함과 차돌처럼 딱딱한 태도는 아무것도 통하지 않을 것만 같다. 자기 몸에 위해가 되지 않는 한 시키는 대로 해야 할 것만 같다.

 
  영국 원자력연구소(HARWELL) 방문 (109회)
  중공 홍위병(紅衛兵)과의 조우 (북경사건)_2 (1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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