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영등포 공업지대의 대한중기(大韓重機)를 필두로 창원, 거제의 효성중공업, 현대양행, 삼성조선, 대우조선 등을 안내하게 되었다. 기계가 좀 들어있다고 하면 현대양행 정도이고 나머지는 부지(敷地) 조성과 공장 건물 일부를 겨우 세우고 있는 중이었다.
삼성조선에 들렀더니 손님 맞을 자료는 준비되어 있었으나 영어로 브리핑할 사람이 없어 삼성직원을 대신해서 내가 직접 지휘봉을 잡고 챠트를 하나하나 넘기면서 삼성의 마스터플랜을 설명할 정도로 인적(人的) 마련이 안 되어 있었다. 아마 시찰단 일행도 한국이 너무 의욕이 앞서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을 것이다.
기분도 좀 그렇고 장시간의 버스여행에도 지쳐있을 것 같아 부산 해운대호텔에 짐을 풀자 바로 해변 가의 한 일식식당에 Canada 일행을 초대를 했다. 생선 위주로 서양 사람들이 좋아하는 튀김 등 최고로 마련토록 했고 그리고 꼭 생 낙지를 듬뿍 썰어 오도록 했다.
산 낙지가 가득 든 사발, 살아 우글거리는 짤막짤막하게 절단된 생 낙지, 이분들 말에 의하면 꿈에서 보는 지옥의 단면이라고 했다. 우선 내가 초장에 풍덩 담그고 입속으로 넣었다. 모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먹어보라고 Try it, Try it! 했다. 인솔책임자인 아주 호인형인 AECL 할아버지 Mr. J. S. Nelles가 흥미를 가지고 자기가 먹어보겠다고 한다.
서툰 젓가락질로 두서너 개를 겨우 집어 올리는가 싶더니 잽싸게 입에 넣는다. 순간 벌떡 일어서더니 아!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그 큰 눈이 반쯤 튀어나오는 시늉을 한다. 먹은 산낙지 빨판이 입천장과 볼에 찰싹 달라붙은 모양이다. 이런 경험을 처음해 본지라 매우 놀란 모양이다. 나도 덩달아 일어서면서 “Chew it, chew it. It's normal. Nothing wrong!(씹어 삼켜, 그거 보통 있는 일이야, 잘못된 것 없어!)” 했더니 잠시 후 안정되고, 자리에 앉자 좌중에 박장대소가 터지고 분위기가 일신되었다.
몇 개월 후 내가 CANADA를 방문했을 때 Nelles 씨의 자택으로 초청을 받아서 가는 도중 동네 어귀에 있는 Pub에 들렀다. Nelles의 친구인 듯한 사람들이 4, 5명이 우르르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You are the gentleman, who gave the alive octopus to eat.”(당신이 산 낙지를 짐에게 먹인 장본인이로구만!) 하면서 모두 웃고 악수를 청하며 칵테일 한 잔을 맛있게 마시게 해 주었다. 아마 Nelles가 귀국하여 산 낙지의 진기한 경험을 친구들에게 자랑한 모양이었다.
여하튼 한국 내 제조업체 시찰을 통한 2박 3일 간의 교우는 성공적이었고, 모두 행복해 했다. 그리고 돌아오면서 천년고도 경주에 들러 문화탐방을 해온 터라 보람 있는 여행이었다. 그러나 서울에 돌아와서 마지막 간담회를 하는 우리는 너무 줄 것이 없었다. 그때 마침 가지고 있던 KABAR의 「원자력발전소 기자재 국산화방안 연구」는 일행들에게 좋은 선물이었고,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숨은 의지를 피력하게 되어 다행으로 생각했다.
이 무렵 연구소 뿐아니라 모든 산업체들이 국산화(Localization) 그리고 수입대체가 시대의 「케치프레이즈」였음이 사실이었다. 이때쯤 연구소 유치과학자 1호인 이해(李楷) 박사는 CANDU에 들어가는 Calenderia(tube형의 작은 원자로)를 대한중기(大韓重機)에 기술 지도를 해서 제작에 성공한 성과도 거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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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NADA의 JCKSP팀을 안내해 현대조선소를 방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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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E(한국원자력기술주식회사)
미국의 B&R이 철수하자 그해 10월 연구소 단독으로 KNE(KOREA NUCLEAR ENGINEERING SERVICES, Inc.)를 설립했다.
「핵연료개발공단」 분리, 독립 직후 연구소의 대대적인 개편을 통해 신설된 동력기술담당 부소장에 이해(李楷) 박사(연구소 고위직으로는 유일하게 미국 Westing house에 근무하며 원자력발전 분야에 참여)가 취임하고, 그 산하에 기계배관공학실, 구조공학실을 두고 설계, Engineering 체제로 개편하여 KNE를 창구로 원전설계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는 태세를 갖추어 나갔다.
그런데 한전(韓電)은 1977년 1월 원전 5,6호기의 A-E 회사로 Bechtel과 계약을 맺었는데 Bechtel은 대한전선의 그룹 산하의 대한 Enineering과 계약을 맺고 KNE를 배제시키려는 일이 벌어졌다. 이때 Bechtel의 계획을 무산시키고 KNE 쪽으로 A-E를 실어주는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1976년 11월 18일 제2경제수석 오원철(吳元哲) 비서관을 통해 대통령 재가를 받은 「원자력발전소 국산화대책」이다.
이 국산화 대책은 연구소가 마련하여 과기처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오(吳) 수석에게 전달된 건으로서, 초창기 KNE로서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활용했으며, 민간기업의 A-E로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1977년 4월 19일 당시 실세이던 장덕진(張德鎭) 경제기획원 차관 주재로 열린 관계차관회의(關係次官會議)에서 「원자력부문에 관한 기술은 일관된 원칙에 따라 한국원자력기술주식회사가 단일 집중하여 축적, 발전시키도록 한다」는 대원칙을 확정시켰다.
그리고 곧이어 개최(1977. 4. 21)된 외자(外資)도입 심의위원회는 이 원칙에 따라 Bechtel은 KNE와 A-E 협의를 하도록 조건을 부가해 승인하기에 이르러 이제 국내 A-E 주체로 확고부동하게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때 차관회의에서 A-E 국산화를 주장하는 이해(李楷) 박사의 명(名) 브리핑에 모두 감명을 받았으며 그 대의명분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한전(韓電)을 대변하던 상공부 차관 심의환(沈宜煥) 씨도 대세에 호응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나는 K-BAR에 이어 KNE의 감사(監事)로 등기 되었고, 연구소 행정관리실장으로서 KNE의 초창기 산파역으로 계속 동참했다.
한전과는 두 차례에 걸친 악연(惡緣)이 있었다. 첫째 악연은 총리실 근무 때 대일청구권자금(對日請求權資金)으로 추진했던 소양강댐 건설 때의 일이다. 한전이 발전(發電) 단일목적으로 추진하던 것을 다목적댐으로 계획을 돌려놓는데 실무적으로 참여한 바 있다.
그때 건설부와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한전을 저돌적으로 몰아붙여 끝내 청와대가 다목적으로 결론을 내리도록 일조한 일이 있었다(1969년도). 그리고 두 번째 악연은 이번 A/E를 연구소, KNE가 주도하도록 뒷바라지하여 한전의 계획을 무산시킨 것이다.
이제 A-E 주체의 자리는 확보했으나, 사업의 수용태세가 취약하기 이를 바 없었다. 4월 19일 차관회의가 민간 기업을 참여시키고, 이들의 출자를 받아 체제를 갖추는 원칙을 결정해 줌으로써 숨통이 트이게 되었다. 곧 조직에 돌입하여 브리핑 차트를 준비하고 성북동에 있는 Engineering Club에서 첫모임을 가졌다.
현대, 동아, 대림, 삼부, 한일개발 등 5개 건설업체와 강원산업, 대우중공업, 대한전선, 대한중기, 삼성중공업, 효성중공업 등 6개 제조업 그리고 한전이 참여했다. KNE의 기존 자본금 1억 5천에 기업이 십시일반으로 출자해 1억을 더 만들어 2억 5천 자본금 회사로 하고 연구소의 윤용구 소장이 KNE의 사장으로 취임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필요하면 계속해서 출자 받아 회사를 키워나가는 방안도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