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0월 1일은 국군 1사단이 전선을 돌파, 북으로 진격하는 날이었다. 후일 이 날을 기념하여 ‘국군의 날’로 정한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의용군, 또는 학도병으로 출전하고 선생님들도 변동이 많아 학교가 제대로 운영 될 수 없었다.
무엇이든 소일거리를 물색하던 중 UN 연락장교단에서 연락장교 3기생을 모집했다. 나이나 학번을 묻지 않고 무조건 영어만 구사하면 자격이 되는 것이었다. 1, 2기생은 이미 대구에서 모집해서 각 부대에 배치되었고 서울 수도 탈환 후 처음 있는 모집시험 이었다. 일정한 훈련 후에 육군중위로 임관시킨다는 내용은 매력적이었다.
영어회화에는 다소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모집장소인 서소문동에 있던 배재중학교로 갔다. 많은 대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개중에는 ‘하와이’ 교포라고 하는 60이 넘은 할아버지, 상해에서 무역업에 종사했다는 50대 장년 등 다양했고, 중학교 차림의 학생은 나 이외에 거의 없었다.
한국장교 한 분과 민간복을 입은 외국인 한 분이 앉아 질문을 한다. 시험관은 두 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대뜸 “소총을 무어라 하지?” 라며 묻는다. 학교에서는 건(GUN)이라고 배웠지만 군에서 쓰는 용어는 rifle(라이플)이다. 어린 학생이 제대로 대니까 좀 흥미가 동했는지 많은 질문을 했고, 영어 발음도 좋은데 어디서 배웠느냐고 묻는다. “예, 미국학생하고 좀 연애를 했습니다.” 했더니 책상을 치며 박장대소를 한다.
다음날 방이 붙었다.
훈련소는 명동성당의 사제관과 수녀생활관에 자리 잡았다.
오전에는 제식훈련, 오후에는 미군의 야전교본 위주로 강의를 받았다. 인원은 약 70여명, 모두 형님 뻘이었다. 약 일주일 정도 교육을 받고 있는데 연락장교단 보좌관(補佐官 : 副團長 격)인 서국신(徐國信 : 육사 3기)중령에게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을지로 입구에 위치한 장교단 본부에 갔더니 여섯째 정주(廷周) 삼촌(당시 부산, 경남 경찰국 사찰과장 : 총경)과 막역한 사이인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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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수복 후 국군이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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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 행정과에 인력이 필요하니 낮에는 여기에 와서 근무를 하라는 것이다. 연락장교단 단장은 훗날 총리를 역임한 강영훈(姜英勳) 당시 준장이었는데 미국에 교육차 파견되어 계셨고, 서국신 중령이 사실상의 단장 역할을 하고 계셨던 것이다.
훈련이 약 이주(二週) 정도 진행 되었을 때, 성적순으로 약 20명을 잘라 임시로 설치된 인천 포로수용소 통역요원으로 차출하고, 50여명만이 서울에 남았다. 제대로 훈련이 될 리 없었다.
어느 날 아침 성당 쪽으로 언덕을 올라가는데, 약간 발을 절면서 내려오는 낯익은 자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이 사람이 남한산성에서 총을 메고 나를 연행했던 그 사람임을 직감했다.
“당신 광주 동부면 살지?” 군복을 입은 사람이 갑자기 세우고 질문을 하니 그는 꽤나 놀란 모양이다. 아무 말이 없다. 장교단 훈련소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그는 체념한 듯 순순히 따라왔다.
“당신 의용군 몇 사람이나 보냈어?” “많지 않습니다.” “그러면 보내기는 꽤 보낸 모양이구나.” 했더니 대답이 없다.
아마도 장애가 있고 해서 북상을 못한 모양이다. “당신 콩밥 좀 먹어야 되겠어!”했더니 말이 없다. 장애가 있는 이자를 고발하는 것이 옳은지, 그냥 야단을 쳐서 방면을 하는 것이 옳은지 심히 갈등되었다.
옆에 있는 동료 그리고 기관사병들이 일을 경찰에 넘기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곧 중부서 사찰계 형사가 당도했다. 대충 나의 경위 설명을 듣고 “알겠습니다. 연행해서 조사를 더 해보지요.” 하면서 데리고 나갔다.
1.4 후퇴 때 대구에 내려가 우연히 그 형사를 만났는데, 대통령의 사면령(살인,방화를 제외한)으로 석방을 했다고 한다. 다행이라고 생각을 했다. 나의 고발로 또 하나의 인간이 고초를 겪는다는 것이 두고두고 마음 아픈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