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한참 지도자를 물색하고 있을 때 윤석만(尹錫萬)군이 한 분을 소개해 왔다. 윤 군이 신세지고 있는 고아원의 사무장으로 있는 오 여사의 남편 되는 분인데 인품이 훌륭하고 정치적 식견이 매우 높은 분인데 한번 만나보라고 권했다. 우리 핵심 동지 4, 5명이 유세림(柳細林)씨라는 분을 만났다.
중년 신사인데 다부진 데가 있어 보이고 풍기는 품이 약간 혁명가적인 데가 있었다. 이론도 정연했고 약간 아집이 강한 듯 했다. 우선 우리는 그분 부인의 인품을 잘 알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것도 알고 있어 다른 사상적 고배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제일 염려했던 것은 시국이 하도 어수선하고 해서 혹시 북한의 학생조직 침투가 아닌지에 대하여 매우 걱정했다.
몇 차례 만나는 과정에서 그것은 점차 해소되고, 상해임시정부와 관련이 있는 한독당(韓獨黨) 잔존세력(殘存勢力)으로 점차 파악되었다. 시국(時局)에 대한 비판이 강했고 특히 이승만 박사에 대한 적개심도 대단했다. 시국을 읽는 방법도 배울만 했고, 한문에 박식하고 유머도 적절히 구사하는 분이었다.
한 달 정도의 면담 후에 柳선생님도 우리 「그룹」의 단합된 모습과 의지를 확인하고, 어느 날 까만 두루마기를 입은 키가 훌쩍 크고 앞이마가 훤하게 벗겨진 한 분을 모시고 왔다. 박대완(朴大完)씨라 했다. 모든 말이 웅변이었고 약간 여운형 선생 같은 풍모가 엿보였다.
대단히 정열적인 분이었다. 서울대 정치과를 졸업하고 사회운동을 하고 있단다. 우리보다 5, 6세 위이고 柳선생님보다는 4, 5세 아래로 보였다. 대충 서울대 기(期)를 잡아보니 용규(龍圭)형님과 동기였다. 용규 형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그 친구 똑똑하지! 어떻게 만났어?” 한다.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좌파는 아닌 것으로 파악이 되었다.
또 궁금했던 것은 어느 정도의 배경과 세력이 되느냐 하는 것이었다. 대충 기독교 신진세력과 광복회(光復會)를 중심으로 한 임정계(臨政界)가 주축인데 군(軍)도 광복군 출신 중심으로 상(像)이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대충 내가 아는 군 장성(將星)들의 이름도 거론되었다. 柳선생님은 박대완(朴大完)씨를 지도자로 세우고, 자기는 핵심 참모로서 제갈공명(諸葛孔明)의 역할을 하는 아주 재미있는 콤비였다.
우리 일당, 동지들은 거사(擧事)키로 결심하고 우선 무기(武器)를 구하는 방법을 강구했다. 나는 후방(後方)에 근무하기 때문에 권총이나 수류탄 등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마침 하재윤(河在潤)군이 전방 기갑연대(機甲聯隊)의 전차대대(電車大隊)에서 중대장을 하고 있어 개인병기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자기가 구해보겠다고 했다.
2주에 한 번씩 휴가를 나오는데 첫 휴가에 45구경 한 자루와 수류탄 3개를 가져왔다. 그리고 2차 휴가 때 45구경 또 한 자루와 수류탄 2개를 구해왔다.
자루에 넣고 보자기에 정갈하게 싸서 궁정동 우리 집 2층 나의 침대 밑에 숨겨두었다. 아내도 일체 모르고 오로지 나와 하재윤 군만이 무기의 소재를 알고 있었다. 柳선생님에게는 무기의 종류와 숫자를 정확히 알리고 동지들에게는 그저 준비가 되었다고만 고했다.
거사는 1960년 3월 1일 광화문 군(軍) 사열식장을 「타겟」으로 정했다. 매년 3월 1일 정오에 동아일보사 옆(지금의 청계천 입구) 사열대(査閱臺)에서 대통령을 모시고 군(軍) 행진을 관람하는 행사가 있었다. 행사 하루 전 2명 1조로 지하 하수도에 잠입했다가 대통령에 대한 경례 나팔소리가 울리면 바로 튀어나와 수류탄 투척과 사격을 가하는 것으로 했다.
그와 동시에 대로(大路) 건너 시민관람석에 있던 우리 동지 일행이 길로 튀어나와 소란을 피우고 그 틈에 최대한 빨리 퇴각해 광화문 전화국 뒤뜰에 1차 집결하는 것으로 했다. 그리고 저격수들은 나의 군용 짚차로 서대문으로 해서 한강 이남으로 소개하여 사육신묘에 2차 집결하는 것으로 「시나리오」를 잡기까지 했다. 예행연습도 두 차례 정도 할 계획이었다.
이제는 세(勢)를 불리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첫째는 대학을 중심으로 거점을 하나 마련하고, 군에 복무중인 자는 군 동기(軍 同期) 또는 시국에 대해 걱정을 하는 상관이나 부하 등을 일차 포섭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가족도 하나의 축으로 구성했다. 시국을 개탄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대세만 잡으면 쉽게 따라올 그런 여론이었다.
1959년 초겨울부터 대통령, 부통령 선거에 관한 자유당의 불법 부당한 활동은 완전히 도를 넘어섰다. 일선 경찰이 가장 악질적으로 부정선거 운동에 앞장섰고 회유와 협박으로 야당을 분열시켰다. 각 부처의 고위공직자들도 지방 예하 기관에 수시로 파견해 점검을 했다. 군(軍)도 지휘관 회의를 수시로 개최해 조직적인 선거운동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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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9년 겨울부터 자유당 정권의 정부통령 선거의 불법이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 서울시립대 박물관이 4·19 혁명 50주년을 맞아 ‘민주주의를 위한 큰 함성’ 특별 전시회에서 등장한 이승만 자유당 후보의 선거 벽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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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층 상급자들은 완전히 민주의식이 마비되고 말았다. 부정선거가 얼마나 무서운 도둑 행위인지 분간을 못하는 양심의 공황 상태에 빠진 것이다. 李 대통령이 없으면 나라가 성립될 수 없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민심이 흉흉해지고 불만이 고조될수록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일은 명분도 서고 지지도 확실하게 받을 것으로 믿었다.
우리 핵심 동지들은 수시로 우리 집 2층에서 비밀회의를 갖고 진행사항을 점검하고, 유(柳)선생과 박대완(朴大完)씨 하고도 긴밀한 연락을 유지해 나갔다.
관계했던 핵심동지와 협조관계에 있던 인사들은 다음과 같다.
핵심동지로서 거사에 직접참여를 결심한 친구는 김효곤(金孝坤 : 前 서울보건대학 교수), 권호순(權昊純 : 前 일본 동식사(東食社) 고문), 곽장섭(郭長燮 : 前 육군중령, 월남에서 사망), 이상격(李相格 : 前 조달청 주미구매관(駐美 購買官), 재미(在美)), 윤석만(尹錫萬 : 한국수자원개발공사 창설멤버, 원자력연구원 토지담당, 재미(在美)), 하재윤(河在潤 : 前 한국원자력기술주식회사 관리담당부장, 재미(在美)), 홍선표(洪善杓 : 前 부산중기 사장), 오명엽(吳明燁 : 재미(在美), 사업) 이상 7명이 핵심으로서 도원결의(桃園結義)를 했다.
주변의 협조관계에 있던 분은 다음과 같다.
강기홍(姜基弘 : 前 서울대학교 사무국장, 고교 교장), 김운용(金雲龍 :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헌법학), 김문수(金文洙 : 前 부산진구 보건소장), 백안기(白安基 : 前 전화국장), 송영언(宋榮彦 : 前 총무처 인사국장, (주)뉴코어 회장), 박창호(朴昌浩 : 前 육군대령 예편), 이종식(李鍾植 : 前 조선일보 편집국장), 오현수(吳鉉洙 : 통역장교 출신, 사업), 정복달(鄭卜達 : 불가(佛家)), 채홍식(蔡弘植 : 前 수출입은행 상무), 한영수(韓英洙 : 前 국회의원) 등 11명이었다.
거사(擧事)에 성공하면 조직 확장의 핵심 멤버로서 잡아놓고 있었으며, 수시로 대화를 통해 친교를 유지했다. 거사 후의 자문역(諮問役)으로서 이만섭(李萬燮 : 당시 동아일보 정치부기자, 前 국회의장)씨 그리고 윤형섭(尹亨燮 : 당시 육사 교수, 前 문교부장관) 씨로 정하고 7인 멤버의 합의를 보았다.
우리 핵심들의 구호(口號)는 간결했다. “독재(獨裁)는 민주주의의 적(敵)이다.”, “적(敵)과의 공존(共存)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적(敵)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격파해야 한다.” 이었다.
상당한 기간 동안 우리는 자주 모이고 회의도 하고, 주변 친구를 상대로 공감을 얻는 활동을 꾸준히 해 왔으나 주목을 받는다든지 탄로가 나지는 않았다. 그것은 물론 멤버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기밀 엄수도 하였지만 사회적 공감대가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승만 정부에 대한 불만과 자유당에 대한 혐오는 극에 달해 어느 장소에서든 공개적으로 떠들고 비방해도 학생들의 활동은 묵인되었다. 그만큼 대학생들을 엘리트로 인정해 주던 시대이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