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픈 부관생활은 나로 하여금 일찍 잠자리에 들게 한다. 첫 새벽 6시에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고 막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부관님, 부관님.”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난다. 운전병 최석호 일병의 목소리다. 나를 집에 내려놓고 떠난 지가 얼마 안 되는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최 일병, 무슨 일인가?” 물었다. “부대 비상소집입니다” 한다. 6시 30분쯤 사령관을 청파동 댁에 모셔다 드리고 퇴근했는데 아무 말씀이 없었다. 대부분 비상소집을 발령하려면 최소한 몇몇 핵심참모와 전속부관에게는 사전 예고를 하는 것이 관례이다. 이상하다. 우선 비상소집이라 하니 전투복, 작업복을 입고 뛰쳐나갔다.
시간은 대충 9시쯤으로 기억한다. 가는 도중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군사혁명이란 상상도 못했고, 사령관의 비상소집이나 사령부 내의 불미한 사건 또는 적정(敵情)불안 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퇴근 때, 차 안에서 불쑥 사령관이 “부관” “네!” “요새 참모들의 기강이 좀 해이해진 것 같지 않아? 야간 비상소집 한번 걸까?” 하신다. 잠깐 숨을 고른 다음 “각하, 비둘기 훈련이 끝난 지 얼마 안 되고 참모들 고생했습니다.” 했더니 아무 말씀이 없었다. 비상소집과 관련을 지으면서 당신의 분신과 같은 부관도 알지 못하게 비상소집을 발동했다는 것이 몹시 자존심 상하게 했다.
전 속력으로 지프차를 몰아 효자동, 광화문, 서울역, 용산을 거쳐 막 한강대교에서 노량진 쪽으로 꺾어지는데 지프차 한 대가 빨리 달리는 내 차보다 훨씬 속력을 내서 달리며 깜빡이까지 켜고 있었다. 아찔했다.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양평동 사령부에 도달하니 2개 분대 정도의 병력이 앞에 총을 하고 정문에서 가로막는다. “부관(副官)이야!” 했더니 비켜 주지를 않는다. 헤드라이트를 깜빡거리고 경적을 울리자 장교 한 사람이 튀어나와 “통과!” 하고 외친다. 사령부 청사 입구에 별판을 가린 탑차가 하나 대기하고 있는데 우리 6관구 차는 아니었다.
계단을 밟아 현관에 들어서니 이것이 어찌된 일인가. 군사발전국(軍事發展局)에서 같이 있던 길재호(吉在號) 중령과, 조창대 중령 등이 장교답지 않게 장총(長銃 M1)을 메고 서성거리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이상한 미소를 짓는다. 경례를 붙이고, “어찌 된 일입니까?” 했더니 피식피식 웃기만 한다.
그때 부관실에서 당번 김연중(金然中) 상병이 쫓아 나오면서 “부관님, 빨리 들어오세요.” 한다. “혁명(革命) 한답니다” 라고 보고한다. 멍해졌다. 조금 숨을 고르고 ‘아! 그래,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 하면서 정신이 바짝 들었다. 그리고 김 상병이 이어 참모장 김재춘, 작전참모 박원빈 중령이 핵심이고 박정희(朴正熙) 장군도 부사령관 김천경(金天敬) 장군 사무실에 계시다는 이야기를 한다.
2군 부사령관이면 대구에 있어야 하는데, 이 밤중에 6관구 사령부에 와 있다니 좀 이해가 안 갔다. 역시 박(朴) 장군이 혁명의 정상(頂上)이구나 하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조금 후의 일이었다. 서(徐) 장군과는 일체 연락이 되지 않았다.
박(朴) 장군이 있는 부사령관실 쪽으로 막 가보려고 하는데, 서종철(徐鍾喆) 장군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부관! 내 지금 현병부장실(중구 필동 수도경비사령부 자리)에 와 있어! 내 위치를 아무에게도 일체 이야기 하지 마!” 하면서 이쪽 상황이 어떤가 묻는다. 대충 “박(朴) 장군이 부사령관실에 와 있고 김 대령, 박 중령이 가담되어 있고, 길재호 등 외부 장교들이 와 있습니다.” 보고했더니 “알겠어, 곧 그곳으로 갈게.” 하신다.
전화를 끊고 부사령관실 가까이 가는데 박(朴) 장군의 큰 소리가 밖으로 들린다. “각하! 안됩니다. 전군(全軍)과 해병대가 동원됐습니다. 끝장을 봐야 합니다.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각하가 주동이 돼야 합니다. 혁명(革命)입니다. 모두 각하의 결단을 바라고 있습니다.” 문 밖에서 듣던 전화 내용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506 서울지구 방첩대(지금 프라자호텔 자리 근처에 있었고 통신시설이 잘 되어 있었다)에 급히 출동한 총장 장도영(張都暎) 중장이 박(朴) 장군 전화를 받고 “뜻은 충분히 알겠으니 나에게 맡기고 귀가(歸家)하라.” 는 내용의 지시를 한 모양인데, 박(朴) 장군은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장(張) 장군에게 거사에 참여하고 지휘해야 한다고 우기는 순간이었다.
전화를 끊고 밖으로 나오는 소리가 난다. 현관 쪽으로 먼저 걸어 나갔다. 계단 쪽에서 박(朴) 장군과 마주쳤고 경례를 붙였다. 권총을 두 자루 차고 있었다. 45구경 하나와 허리 뒤쪽에 장군들이 착용하는 「리볼버」 권총이었다. 나중에 어느 책에서 봤는데 혁명이 실패할 경우 허리 뒤쪽의 권총으로 자결(自決)하려고 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박(朴) 장군이 밖으로 나오자 여러 장교들이 모여 들었고 “차 불러!” 하는 소리가 나자 대기했던 짚차가 와서 섰다. 박(朴) 장군 혼자서 차에 오르려 하자, “부관 없어? 경호 없어?” 하는 소리가 장교들 틈에서 나왔다. 그러나 박(朴) 장군은 혼자 차에 오르고 영문 쪽으로 빠져나갔다. 혼자 걸음을 하는 박(朴) 장군의 뒷모습이 처량해 보였다. 만일 내가 사령관에게 매이지 않고 일반 장교로 그 자리에 있었다면 아마도 자진해서 그분의 경호를 위해 그 차에 탔을지도 모른다.
부관실로 돌아와 앉았는데 곧 서(徐) 장군이 들어오시고 부사령관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한웅진 장군이 따라 들어온다. 잠깐 두 분이 대화하는 것을 옆에서 듣고 있다, 부관실로 돌아왔다. 한 장군은 서(徐) 사령관을 설득하기 위해 거사 내용을 설명하는 눈치였다.
조금 있다 상황에 맞지 않게 「카키」 복장을 한 장경순(張坰淳) 장군이 “각하 계신가?” 하면서 바로 사령관실 문을 거의 걷어차다시피 꽝 차면서 밀고 들어가더니 “각하! 혁명 하십시다!” 하고 고함을 지른다. 듣던 대로 다혈질 군인이었다. 서(徐) 장군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시더니 “이 사람아, 혁명의 내용을 알아야지!” 고함을 지르며 응수한다. 순간 분위기가 험악해 졌다. 그러자 한웅진 장군이 같이 일어나면서 “장(張) 장군! 지금 각하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있어 앉아, 앉아!” 다급하게 중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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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6 직전의 장경순 육군본부 작전참모부 교육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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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무기를 휴대하고 있기 때문에 좀 불안해서 서(徐) 장군 소파 뒤에 나도 무기를 휴대하고 열중쉬어 자세로 서 있었다. 한 장군은 열심히 상황 설명을 하고 ‘박정희(朴正熙) 장군은 김포 공수특전대와 해병 제5여단 동원 때문에 조금 전에 현지로 떠났다’ 고 설명했다. 이때 김재춘 대령이 들어오더니 “각하, 죄송합니다.” 만 연발한다. 그 특유의 밉지 않은 순박한 미소를 지으면서. 아마 대단히 죄송했을 것이다.
이제 김 대령이 합류했으니 나는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부관실로 되돌아갔다. 그날 밤 처음으로 작전참모 박원빈 중령을 마주했다. 약간 겸연쩍은 미소를 짓는다. 그도 그럴 것이 참모들 중에서 유일하게 고대(高大) 선배이고 평소에 나를 무척 아껴주는 분이다. 둘 사이에서는 거의 모든 문제에 기탄없이 의견을 나누는 사이였기 때문에 나를 완전 따돌리고 거사를 일으킨 것이 약간 미안했으리라.
혁명이 성공한 다음 조용한 자리에서 해명을 해 주셨다. “혁명에 관해서 너한테는 이야기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걸 들었으면 자네가 사령관과의 의리로나 보좌관으로서의 책임상 서(徐) 장군에게 말씀을 아니 드릴 수가 없었을 것이다.” “만일 서(徐) 장군이 수도경비와 방어를 책임진 주체적 지휘관으로서 ‘No’하면 거사는 깨지고, 많은 사람이 희생이 되기 때문에 차마 사전(事前)에 알려주지 못했다.”하는 해명이었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극단의 세계에서 우정을 밀어낼 수밖에 없는 처지였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