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지들과 주변의 협조로 아버님은 30여명 영입 케이스의 일원(一員)으로 무난히 공천이 이루어졌고, 본격적으로 선거에 돌입했다. 첫째 관문은 공화당 지구당(地區黨) 사무국의 반란이었다. 자기들이 기대했던 당료 사무당원이 탈락하자 사무국에서 조직명부까지 들고 철수해 버린 것이다.
지구당(地區黨) 조직을 정비하고 1개면에 4~5명이 되는 지역관리장(地域管理長)을 임명하는 등 첫 주는 정신없이 돌아갔다. 미덥고 효과적인 조직은 역시 친인척, 씨족의 구성조직이다. 활동비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돈을 써 가면서 가문의 명예를 위해 뛰는 분들이다.
그리고 동창, 선후배와 취직 등을 통해 은혜 입은 사람들의 활동은 매우 확실한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여당이기 때문에 그 「프리미엄」으로 당시만 해도 이장(里長), 구장(區長) 등을 활용할 수 있었다.
우파는 여당이기 때문에 협조하고, 좌파는 제헌의원(制憲議員)인 김옥주(金沃周)숙부에 대한 동지의식이 발동했는지 아버님을 민다는 말이 돌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1955년 박헌영(朴憲泳), 이강국(李康國)의 숙청과 사형집행 후 이남(以南) 출신들로서 평양에서 고위직에 있던 대부분의 인사가 1960년 이전에 이미 지방의 농장관리인(農場管理人) 등으로 하방(下放)된 상태였다.
대충 조직이 정돈되면 자금이 공급되어야 한다. 선거자금이란 한도가 없다. 있는 대로 들어가기 마련이다. 2개(個) 군(郡)내 관리장(管理長)만 하드라도 50여명, 읍. 면 조직책 15~16명씩을 합치면 100여명이 가동되면서 엄청난 활동비가 소요된다. 거기다 각종 사설단체, 노인정 그리고 준(準) 공공단체(군경회 등)와 농업, 어업 그리고 산림조합 등 수많은 단체에 관심을 표하고 금일봉(金一封)을 해야 했다.
자금조달은 중앙당 자금이 조금 나와 후보등록금 정도를 해결했고 그 다음은 모두 출마자가 자비(自費) 또는 친지, 단체의 후원금으로 충당했다. 당시 선거자금에는 규제가 없어 다다익선(多多益善)의 상태이고 유권자(有權者)들도 염치가 없었다.
다행히 주변의 지원이 많았고 서울에 「스폰서」가 있어 지난 선거 때보다는 좀 여유를 가지고 선거자금을 쓸 수 있었다.
이제 체제가 정돈되고 자금도 마련되자 후보자의 유세, 연설을 통해 부동표(浮動票)를 공략하는 문제에 올인 했다. 아버님은 행정가 출신이라 정치연설에는 별반 경험이 없었다. 방에 모여 좌담은 아주 잘 하시는데 대중 앞에서의 연설은 별로였다. 합동강연에 맞춰 전문연사의 도움을 받아 연습을 몇 차례 하시고 출전하시곤 했다.
하루에 5회(回) 이상의 유세(遊說)에 총 10여일이 지나니까 모두 목이 쉬어 잘하는 사람, 못하는 사람이 별로 표가 나지 않는다. 연단에서 내려와 모인 유권자들과 악수를 나누는데 얼마나 정신이 없으면 주위에 서있는 아들, 당신의 운전수하고도 손을 잡고 “부탁합니다,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는 촌극도 자주 벌어졌다. 초선(初選)이 재선(再選) 그리고 3선(三選)에 비교되는 이유도 바로 이런 데에서 나타나는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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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님 (1963.) / 아버님은 6대국회의원 선거에서 광양, 구례지역구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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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은 부녀회라는 조직이 있어 그들의 안내로 각 지방으로 인사를 다니셨다. 나는 고향 사촌들을 앞장세우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산간마을, 섬진강 언저리, 구름 위에 솟아 있다는 운산리(雲山里)까지 다니며 민원이 무엇이고, 숙원사업이 무엇인지 열심히 알아보면서 돌아다녔다. 대부분 취직 부탁, 마을도로 확장, 교량가설 등인데 제깍제깍 선거 사무실에 보고해서 다소 희망적인 회답을 주려고 노력을 했다.
드디어 1963년 11월 26일, 투표일이 왔다.
첫째 낭보는 아침 일찍 고향 진상면(津上面)에서 날아들었다. 나의 진외가(陳外家 : 어머님의 외가) 당숙이 돌아가셨는데 마침 투표일이라 상주(喪主)인 허태(許泰) 형님 내외가 상복을 입은 채 투표를 하고 장지(葬地)로 행했다는 전갈이었다.
주변 모두 대단히 상서(祥瑞)로운 징조라고 좋아들 했다. 투표는 사고 없이 끝나고 군청 개표소에 함(函)이 하나씩 도착하고 지역 관리책임자들도 속속 선거본부로 들어왔다. 득표 예상을 집계하는 시간이 왔다.
선거 분야의 달인으로 평가 받고 있는 우리 고숙(姑叔) 강만원(姜萬遠) 씨가 집계를 시작했다. 약 30~40분간 주판을 두들기더니 “형님, 싸움은 이겼심더. 푹 쉬세요. 한 2천~3천표 차이로 끝나겠심더!” 하니 모두 박수가 터져 나온다. 이런 기분에 정치를 하는 모양이다. 드디어 자정에 개표가 시작되고 새벽 6시경 구례에서 1,000표, 광양에서 2,000표 계(計) 3,000여표 차이로 당선이 확정되었다.
광양(光陽)에서의 득표는 예상되었지만 구례(求禮)쪽은 외지(外地)인데다 조직도 불안했다. 그러나 우리 계모(繼母)님의 고향이 구례 마산면(馬山面)의 오(吳) 씨 집성촌이고 나의 여동생 영자가 구례 광희(光熙) 김해 김씨 집안으로 시집가 다른 후보들 보다는 유리했다. 특히 자유당시절 거물인 이갑식(李甲植) 씨가 몰표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위 양가의 적극성으로 현지의 이(李) 후보를 많은 표 차이로 눌렀던 것이다.
민주공화당(民主共和黨)은 총 의석수 175석 중 62.8%인 110석을 차지했고 야당인 민정(民政)이 41석, 민주(民主)가 13석, 자민(自民) 9석 그리고 국민(國民) 2석으로서 여당이 압도적이었다. 공화당 대통령이 확정된 후인지라 「프리미엄」이 있었고 야당이 분열상태라 지방에서는 모두 실패했다.
드디어 12월 17일 박정희 의장(朴正熙 議長)은 5대(代) 대통령에 취임했고, 같은 날 제 6대(代) 국회가 개원하면서 제3공화국(共和國)이 출범했다.
제 6대(代) 의원선거를 종합해 보면 첫째 당선자의 평균 연령이 40대(代)로 신진(新進)의 대거 입성이 두드러졌다. 구(舊) 정치인이 정리되면서 소위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 반면 야당은 지명도 위주로 당선되다가 보니 나이가 여당보다는 많았고, 따라서 원내활동에서 공화당 의원의 패기(覇氣)와 완력(腕力)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둘째 신진(新進), 특히 혁명주체(革命主體)들의 진출로 인해서 사회 구조적으로 새로운 계층이 탄생되고 경제, 산업분야에도 신기류(新氣流)가 형성되어 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