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과 결과가 너무 확실해서 대책도 분명했다. 그리고 홍수가 하도 잦으니까 과학적 Data를 위해서 뚝섬 근처에 한강수계(漢江水系) 「시뮬레이션」을 만들어 실험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를 안내하던 시(市) 직원 한사람이 코메디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장마철인 7월 초(初), 첫 비가 내릴 즈음 경상도, 전라도 산간벽촌에 전보(電報)가 자주 배달되는데 그 내용인 즉 「우기도래(雨期到來), 조속상경(早速上京)」이란다. 비가 오니 곧 상경하라는 내용인데, 동부 이촌동 한강 둑에 초막을 짓고 있으면 이재민으로 취급 받아 상계동이나 봉천동에 땅과 천막을 배정받을 기회를 얻으니 올라오라는 것이란다.
서울시의 설명과 현지답사를 통하여 우리 실무 TF는 다목적(多目的)으로 해야 한다는데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약 3, 4주에 걸쳐 행정연구(行政硏究)가 완료되고 다목적(多目的)으로 결론이 났다. 총리(總理)께도 보고가 되었다.
다음날 상공부, 한전, 건설부의 연석회의가 총리 임석 하에 열렸고 그간 검토한 내용을 박승복(朴承復) 수석이 브리핑 했다. 그런데 박영준(朴英俊 : 중국군(中國軍)) 출신으로 예비역 소장(少將) 한전(韓電)사장의 반론이 만만치 않았다. 결론적으로 차관약정(借款約定)을 위반하면 페널티가 걱정되고 한전(韓電)의 대외(對外) 신용도가 땅에 추락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박(朴) 사장은 언변이 대단히 좋았다. 중국군(中國軍) 출신이라 정(丁) 총리와는 각별한 관계가 있어 총리는 매우 신중한 태도를 취하면서 1차 결론을 유보하신다. 이에 박(朴) 수석은 건설부와 산은(産銀)의 정보를 입수해 UNDP가 소양강댐을 다목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는 Feasibility study(사업타당성 분석)한 것을 입수하고 이것을 내세웠더니 상공부까지도 이제 할 말이 없게 되었다.
2차 연석회의(連席會議)가 소집되었고 결론이 나는 듯 했으나 총리가 또 보류하도록 지시하신다. 문제는 7백만 불(百萬弗)은 발전 300,000Kw 설비비용인데, 다목적으로 할 경우 200,000Kw 설비로 축소되는 모양이고, 축소할 경우 약정된 7백만 불 중 어느 정도 다시 사용할 수 있는지 검토해서 수정하는 방향으로 안(案)이 나온 것이다.
곧 검토에 들어갔고 약 5~6백만 불 정도는 활용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와 우리는 모두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소양강댐에 관한 결재서류를 대통령께서 찾는다는 연락이 김학렬(金學烈) 경제수석에게서 왔다. 김창희(金昌熙) 비서관에게 결재서류를 챙겨 청와대로 보냈고 총리 결재란은 공백이었다.
다음날 서류를 찾아가라는 연락을 받고 내가 파견되었다. 김학렬(金學烈) 수석실에 들르니 결재서류는 나와 있었고 열어보니 대통령의 힘찬 서명이 이미 되어 있었다. 반갑고 순간 열이 화끈 났다.
총리의 서명을 후결(後決)로 사후에 받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막 돌아서려 하니 김학렬(金學烈) 수석이 나오면서 나를 보더니 “수고했어, 36년간의 우리 선열(先烈)들의 고혈(膏血)을 되찾아 오는 건데 (소양강댐은) 기념비적(memorable)인 작품이 되어야지!” 한다. 나는 참말로 고맙고 감격했다.
김(金) 수석은 나의 은사(恩師)이기도 하다. 경남중학(慶南中學) 2년 때 우리 영작문(英作文)선생을 잠깐 하신 적이 있다. so that, 또는 Either or 같은 숙어(idiom)를 적어 놓고 “백만 불짜리야!” 하면서 언제나 화폐 단위로 공부의 가치를 들려주곤 했다. 두뇌회전이 매우 빠르고 성질은 불같았다. 청빈했고 자존심도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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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총리 취임식에서의 김햑렬(1969. 7.3.) [출처 ; 서울사진아카이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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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일화(逸話)를 생산했는데 명문학교 출신을 철저하게 따졌다. 사석(私席)에서 “‘경상도’ 하면 경중(慶中) 정도 나오고, ‘전라도’ 하면 서중(西中) 정도는 나와야 하고, 서울 출신이면 경기(京畿) 쯤은 졸업해야 말이 통한다, 이 말이야!” 라고 말하곤 했다.
어느 때인가 기획원 차관(企劃院 次官) 시절에 결재를 받으러 온 모(某) 과장(課長 :후에 전매청장이 된 분)의 설명이 못마땅했던지 야단을 치기 시작하고, 상대방 과장(課長)의 자존심이 몹시 상할 정도로 호통을 쳤다고 한다. 한참 정신없이 야단을 치다가 “나가! 여기서 썩 꺼져!” 하자 얼이 빠진 모(某) 과장이 출입문을 열고 나간다는 것이 캐비넷을 열고 나가다가 ‘꽝!’ 머리를 부딪쳐 부상을 입었다. 김(金) 수석은 이렇게 짓궂고 고압적이지만 뒤가 없는 분으로 알려졌다. 후에 그 과장에게 사과를 하고 타(他) 부처로 승진해 나갈 때 옆에서 도왔다는 일화가 있다.
어려운 과정을 겪고 소양강댐은 마침내 다목적댐으로 탄생했다. 강원도 춘천시 신북에 댐 높이 123m, 제방길이 530m, 수면면적 70km² 총 저수량(貯水量) 30억(億)톤의 당시 동양제일의 규모였다.
갑수 조절능력 5억 톤, 농 .공업 용수공급능력 12억 톤, 수력발전소 시설용량 20만(萬)Kw에다 우리나라 대형 댐으로서는 처음으로 흙, 돌로 쌓아 올린 사력(砂礫)댐의 대표이다.
한국수자원개발공사가 출범하고 첫 번째의 거대 프로젝트였다. 1967년 4월에 착공, 1973년 10월 준공되었고 상류로는 인제 그리고 양구 어귀까지 배가 다닐 수 있어서 관광 사업에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초대(初代) 현장건설소장으로는 나와 함께 연합참모본부에 근무했던, 평양입성 제1호 김봉건(金奉健) 前 대령이 맡아 군(軍) 공병단(工兵團) 운영방식으로 활기차게 이끌어 나갔다.
공사 도중 주말이면 김(金) 대령을 가끔 찾아가 공사의 진척 상황을 안내받곤 했다. 거대한 산을 뚫어 물막이 도수로를 내는데 24시간 교대로 인력을 투입하고 있었고 3, 4개 수몰 부락을 이주시키느라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지금 같아서는 이주대책을 추진하는데 2, 3년은 걸렸을 것이다. 수몰지구 근처는 6.25 당시에 마을이 거의 소실되고, 막 재건하는 중이었으므로 비교적 해결이 간단했다.
김학렬(金學烈) 선생이 일갈(一喝)한대로 우리 선열들의 고혈을 되찾아 와서 기념비적인 역사(役事)가 완성된 것이다. 여담이지만 1972년 이후락(李厚洛) 대통령비서실장이 김일성(金日成) 주석을 만났을 때 ‘남한의 소양강댐은 아주 잘한 일이라’고 부러워하더라는 후일담이 기억이 난다.
이렇게 다목적댐이 완성된 후에는 한강수계(漢江水系)의 홍수조절이 어느 정도 가능해 졌다. 1984년도(年度) 중랑천 범람으로 한차례 이북(以北)의「쌀과 비단」원조의 이벤트가 있기는 했으나 지금까지 서울은 이렇다 할 홍수피해 없이 지내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