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회(陽智會)의 현재 (136회)
  제17장 은혜와 봉사

친교와 배움의 산실이었던 양지회는 그 수(壽)를 서서히 다해간다. 세월의 금줄을 뛰어 넘을 수는 없다. 우리의 큰형 뻘이요, 휴머니스트인 齊藤 사장은 2007년 1월 1일 세상을 뜨셨다. 그리고 친교의 우수한 매개체로서 그 역할을 다했던 安田 사장도 같은 해 4월 29일, 오랜 투병 끝에 저세상으로 갔다. 

齊藤 사장이 세상을 뜨기 한 달 전, 회복이 어려울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 병문안을 갔다. 동경 체류 4일간 매일 병원에 들러 문안을 했다. 그 어려운 투병 중에도 옛날 재미나는 일화를 되새기면서, 갑자기 기력을 회복하는 듯 화색이 돌면서 미소를 짓는 모습을 나는 보았다.

부부의 금슬이 유난했고, 형제의 우애가 각별했던 사이도 사장은 형제자매에게도 공평하게 다 배려를 했다고 한다. 10대에 아버님을 잃은 막내 여동생은 오빠를 아버지로 알고 살았으며, 사랑으로 돌봐주어 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울먹이고 있었다. 다행히 큰 아들이 건실해서 아버지에 이어 원심분리기회사를 3대째 잘 운영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安田 사장은 죽기 한 해 전 3월에 그 알뜰했던 부인을 앞세우고 말았다. 부인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아프기 시작하자 아들이 스탭으로 있던 병원에 입원시켰으나, 대장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고 손도 쓰지 못했다. 安田 사장의 오랜 투병을 뒷바라지 하면서 자신의 아픔을 감추고 있었던 부인이 결국 먼저 세상을 뜬 것이다. 

부인은 여필종부하는 고전적인 동양 어머니의 표본이라 하겠다. 安田 사장은 생전에 자식 교육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귀화인의 한계를 인식한 그는 기술과 면허를 자식들에게 심어주어야 한다는 방향에 철저했다. 아들은 안과 의사로, 딸은 치과 의사로 각각 키워냈고, 회사가 있던 부지를 이용해 병원을 세워 남매가 나란히 개업할 수 있도록 기초를 닦아 주었다.
 
安田 사장이 운명하기 하루 전, 병상에서 아들의 도움으로 마지막 전화를 나에게 걸어왔다. 대화가 될 리 만무하다. 그저 전화 끝에 좋은 친구가 있다는 것만을 확인하며 신음소리를 약간 내면서 통화를 끝냈다. 
 
81.jpg
 
 
▲ 上 한라산 정상을 밟은 양지회원(백록담)  /  下 양지회의 경주 불국사 방문
 
49제 때에 그의 처가 동네에 있는 고찰에 가서 성묘를 하고, 나의 내자가 만들어 준 조화를 갖고가 헌화했다. 그리고 다음날은 齊藤 사장의 묘소에 안내를 받아 조의를 표했다. 일본에 갈 때마다 들러본다. 옛날의 기억들을 되새기는 기회로 삼으면서 그러나 허무하기 이를 데 없다.

이렇게 2007년은 나에게 많은 충격을 안겨 주었다. 위 두 친구 외에 양지농장 마을의 유성옥(柳聖玉) 노인회장이 작고했다. 온화하고, 성실한 유 회장은 마을 유지인 박진환(朴鎭煥) 회장과 함께 나의 시골 일을 보살펴 주고 좋은 음식이 있으면 안성, 평택도 멀다 하지 않고 안내해 주곤 했다. 주말이면 반드시 어울리는 친구이고 자상한 선배였다.
 
유 회장은 자수성가한 분이다. 경력 또한 화려한데 일제 때 일본군에 징집되어서 일본 본토의 결전을 준비하던 후지산 진지에 투입되어 갖은 고생을 다했던 분으로 해방과 함께 목숨을 부지하고 돌아왔다. 곧이어 6 .25가 터지면서 방위대에 갔다가 입대하고 전방부대에 투입되어 또 고생을 겪어야만 했다. 「할아버지」 일등병이라는 별호가 붙었고 어느 장교의 배려로 취사반장을 하는 바람에 배는 곯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후지산 병영생활을 자주 이야기하였다. 이 스토리를 들은 命尾 사장이 박진환 씨 그리고 나와 함께 3인을 5박 6일로 일본 구경을 시켜줘 원(願)을 풀었던 일이 있다.

이제 우리 회원은 하나 둘 세상을 뜬다. 그리고 생존해 있는 멤버들도 건강이 좋지 않아 출입이 어려고 나와 최봉근 씨 정도가 비교적 건재한 상태다.

양지회는 돌이켜 보면 친목회로서의 소임을 다했다. 그러나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었다. 회관(會館)을 추진했던 프로젝트는 미원(味元)의 사업포기와 함께 온천지구 지정이 무산되는 바람에 15년 가까이 가지고 있던 땅을 매각하여 회원들에게 모두 돌려주었다. 

또 하나는 자식 대에까지 이 친교가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약속을 실현하지 못했다. 가족끼리는 서로 연락이 되는 상태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이루어지지 않겠나 생각해 본다. 나는 아들에게 일러두려고 한다.

 
  북해도 대설산(大雪山), 그리고 조난_2 (135회)
  어린시절과 산하(山河 : 고향의 풍경) (137회)
|1||2||3||4||5||6||7||8||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