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관실에서 협의가 된 모양인지 서(徐) 장군이 31사단장 김(金) 장군에게 전화를 대라 하신다. 통화가 끝난 다음 다시 30사단 이상국(李相國) 장군에게 또 전화를 대라고 하신다. 김재춘 대령이 나오더니 “출동, 출동” 한다. 내 방에 있던 모든 참모들이 김 대령을 따라 나가고 나는 서(徐) 장군 혼자 남아계신 사령관실에 들어갔더니 경호 헌병과 무전차를 수배하라고 지시하신다.
곧 김(金) 대령에게 알리고 영등포역 근처에 주둔하고 있던 20헌병 중대에 연락을 했다. 이윽고 헌병 원(元) 중위가 무전차를 가지고 도착했고, 서 장군과 나는 헌병 선도차(先導車) 바로 뒤에 지휘관 차에 올라타고 일차 집결장소인 영등포 역전으로 갔다. 영등포 역전에 도착한 시간이 대충 밤 12시 자정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약 10분 후에 31사단의 차량 행렬이 헤드라이트를 켜고 줄줄이 우리 뒤에 따라 늘어섰다. 목표는 육군본부 연병장, 조금 전에 혁명군과 육군본부 직속 헌병 제 3중대 일부 병력과 충돌이 있던 지점을 무사히 통과해 육군본부에 진입했다.
전방(前方)에서 출동한 문태준 대령의 포병단(砲兵團)이 이미 육본 광장에 와 있었다. 모든 장군들은 본관(本館) 참모총장실로 들어가고 이미 해, 공군 그리고 해병대 사령관 등이 총장실에서 회의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때 당시 가장 중요한 현안은 윤보선 대통령과 UN군 사령관 「맥루더」 장군을 어떻게 설득하느냐의 문제로 갑론을박 했던 것으로 안다.
해가 뜨고 주변이 밝아지면서 계급장이 없는 「카키」 복장의 두 사람이 본관 계단에 걸터앉아 있는데 김종필 중령과 석정선 중령이었다. 석(石) 중령은 군사발전국(軍事發展局) 시절에 알고 지내던 분이라 인사를 했다. 나를 보더니 “수고했어 밤 12시 이전에 동원에 참가했으면 혁명군(革命軍)이야.” 한다.
석 중령 말대로라면 졸지에 타의로 혁명군이 된 것이다. 이 두 분이 계급장 없는 군복을 입고 나타난 것은 부정선거에 개입한 장군들과 부정부패의 인물들을 군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다 강제 전역되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군사혁명위원회가 결성되면서 계엄령이 발동되자 서(徐) 장군은 서울지구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서울 시청(市廳)에 진주했다. 시청 3층에 서울지구 계엄사무소를 설치하고 모든 민사(民事) 업무를 우리 참모들이 수행해 나갔다.
갑자기 대민사업(對民事業)을 관장하면서 중지(中止), 허가(許可) 등 벅찬 일들이 산적해 갔다. 특히 국제공항이 일시 폐쇄되자 외국인들이 아우성이었다. 역시 젊은 군인들인지라 밤을 새면서 일처리를 해 나가니 가속도가 붙어 나갔다.
공수특전대(空輸特戰隊)는 덕수궁에 진주(進駐)해서 치안업무와 「반(反)쿠테타」 감시를 했다. 계엄사령관 및 혁명위원회 의장에 장도영(張都暎) 총장이 추대된다. 박(朴) 장군은 부(副)를 맡고 있었지만 중령, 대령들의 혁명주체들은 박(朴) 장군 뒤에 모두 Lined up 되어있어 실권은 박(朴) 장군이 행사했다.
그리고 중앙정보부의 창설을 준비하면서 민주당 정부의 정리와 반혁명(反革命) 군부세력의 척결은 김종필 중령의 지휘 아래 제 3 CID 요원들이 동원되어 진행해 나갔다. 민주당 정권의 무능과 퇴행에 식상한 민심은 의외로 군사 쿠테타에 호의적이었다. 조류의 방향은 역시 5월 18일의 육사생도 전원의 5.16 군사혁명 지지의 가두행진으로 결말이 났다.
그러나 5.16 새벽과 5월 18일 정오 사이에 몇 차례의 숨 가쁜 고비가 있었다. 청와대, 미(美) 8군, 미(美) 대사관 그리고 혁명군 사이에 밀고 당기는 말할 수 없는 긴장과 고뇌가 이면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처음에는 혁명군을 달래서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애를 쓰던 장(張) 총장도 대세를 짐작하고 혁명 지지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모든 것이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16일 9시쯤, 장(張) 총장과 박(朴) 소장, 이성호(李成浩) 해군총장, 김신(金信) 공군총장 그리고 김성은(金聖恩) 해병사령관 일행이 1차 청와대를 방문해 윤보선 대통령에게 혁명 동기 등에 관해 설명하고 더 이상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혁명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
| ▲ 앞줄 왼쪽부터 서종철 장군, 임충식 장군, 김성은 해병대 사령관 (이 사진은 5.16군사정변 5년 후인 1966년 사진이다) |
|
한편 군사혁명에 깜짝 놀란 미국 측은 「맥루더」 8군사령관과 「그린」대사가 청와대로 쫓아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군의 혁명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헌법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혁명군을 격파해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했다.
그러나 윤(尹) 대통령은 이미 혁명군 일행의 설명을 들었고, 평소에 장(張) 정부의 무능과 치졸한 행태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터라, “아군끼리 전투가 벌어지면 북한에 빌미를 줄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반혁명군 동원을 거절했다. 실제 그 시각 북한군이 휴전선 일대에 집결하고 있다는 보고도 있었다.
윤(尹) 대통령으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17일 낮 「맥루더」 장군은 1군(軍) 사령부로 날아가서 “1군 병력을 동원해서 혁명군을 진압해야 한다.” 고 강력히 요구하였고 이에 이한림(李翰林) 장군은 청와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군 동원을 서둘렀다.
그러나 1군(軍) 산하 각 군단장, 민기식(閔機植) 장군을 위시하여 박임항(朴林恒), 임부택(林富澤) 장군들이 반(反)혁명 동원을 반대했다. 그리고 18일 새벽 1군 사령부 내의 주체세력인 심이섭(沈怡燮), 조창대 중령 등이 병력을 동원, 1군(軍) 사령관을 강제 연행해 군용기로 서울로 압송하고 군단장 중 유일하게 반대했던 최석(崔錫) 장군도 체포, 연행됐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군 혁명이 유혈사태 없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정권의 실체인 총리가 이 위급한 상황에서 행방불명이 된 때문이었다. 이 졸장부가 종교시설 깊숙한 곳에 들어가 숨어 버린 것이다. 미(美) 국방부도 대사관을 통해 백방으로 행방을 찾았으나 불가능했고, 군 혁명은 이렇게 돌이킬 수 없이 굳어져 갔다.
장면 총리는 5월 16일 새벽, 장도영 총장으로부터 혁명군의 서울 진입과 위급한 상황을 전화로 연락을 받고 각료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은 채 개인비서만 대동하고 총리 직무실로 쓰던 반도호텔을 탈출한다.
1차로 건너편에 있는 미 대사관에 노크를 하는데 열리지 않자 차를 돌려 경기고등학교 입구에 있는 미(美) 대사관 직원관사(Embassy Compound # 2)에 들어가려고 시도했으나 신분을 밝히기를 망설이는 총리 일행을 들여 놓을 리 없다. 이미 혁명군의 위협사격 총소리가 들리자, 자신이 교장(校長)으로 있던 혜화동 동성고등학교 옆 「카르멜 수녀원」으로 급히 피신을 하고 이틀 동안 외부와 일체 연락을 차단했다.
5월 18일 오전 겨우 혁명위원회의 신변보호 약속을 받아 밖으로 나왔고 12시 30분 제 69차 임시 국무회의를 장면(張勉) 총리 주재 하에 개최하고 비상계엄령을 추인하는 동시에 내각 총사퇴를 결의한다. 그동안 핵심각료들은 집에 있다가 모두 혁명군에 의해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있었다.
이런 한심한 겁쟁이(coward) 지도자를 모셨다는 것이 우리의 불행이었고 역설적으로 「군사 쿠테타」가 성공하는 원인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