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vens 가족의 일원(一員)이 되다 (58회)
  제7장 미국유학1

Stevens 박사의 full name은 George R. Stevens이고, 부인은 Mae Ann C. Stevens인데, C는 Cameroon의 약자로서 처녀 때의 성이다. 「아이리쉬」 출신답게 키도 적당히 크고 머리만 약간 갈색이지만 피부는 우리 동양인 여성과 같다. 외딸로 많은 사랑을 받고 컸으며 Ohio주 출신으로 미 중부에서 가장 진보적인 대학 Oblin(북부 대학 중에서 흑인을 제일 먼저 입학시킨 대학)에서 음악과 심리학을 복수 전공했다. 「아일랜드」 후손이지만 독실한 개신교 가정에서 자랐다.

Stevens 교수는 자칭 Viking의 후예라고 자랑한다. 선대(先代)가 「노르웨이」에서 이민 왔고, Maryland 주 Baltimore에서 대서양을 오고가는 선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부터 공부를 잘해서 고교에서 월반을 했고, 미 동부의 명문 John's Hopkins 대학에서 지질학(Geology)을 전공했다. ROTC 장교로 임관, 한국전선에서 1년 복무하고 귀국 후 박사학위를 모교에서 끝내고 Lafayette College에 조교수(助敎授)로 첫발을 내디뎠다. 예비역으로 계속 남아 소령으로 제대했다. Mae Ann과 George는 ‘Christian Student Summer Camp’ 에서 만나 성공적으로 결혼에 이르렀다.

내가 가족의 일원이 될 때에는 장남 Eric(당시 초등학교 3학년), 장녀 Laurel(초등학교 1학년) 그리고 3살짜리 차녀 Kirsten, 세 자녀가 있었다. 모두 금발이고 파란 눈을 가진 아주 인형 같은 아이들이었다. 다들 영리하고 공부를 잘 해서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 아이들이다.

가끔 Stevens 내외가 출타중이면 밤 8시경 아이들 잠재울 때 성경 한 구절씩을 읽어준다. 내가 읽는 폼이 시원치 않으면 초등학교 일학년 Laurel이 냉큼 성경을 뺏어서 자기가 대신 읽는데 거침없이 낭독을 완료한다. 세 살 때 벌써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는데 나의 영어선생님이었다. 아이들 모두 나를 무척 좋아해서 uncle Kim(삼촌)이라고 불렀고, 성장한 지금도 그 호칭이 유지되고 있다.
 
▲ Dr. Stevens 가족일동 (1962. 3. 부활절날)

신출내기 조교수의 수입으로는 큰 집을 살 수가 없다. 2층에 Master's bedroom과 아이들 방 2개, 그리고 아래 층에 식당 겸 부엌이 있는 소박한 집이다. 나의 입주를 위해 같은 교회에 다니는 절친한 사이인Carlson 교수와 공동으로 아래층에 방 하나를 늘려 내어 내 방을 꾸민 것이다. 자선이란 여유가 있어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아침에는 커피 그라인다의 소리와 함께 고소한 커피냄새를 맡으며 기상하는 신세 좋은 학생이 되었다. Carlson 박사는 기계공학 전공이기 때문에 목수 일도 잘해서 방을 아주 멋지게 꾸며 놨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미국 공학계통 교수들은 자기 전공분야에서 이론 뿐 아니라 실무 작업에 있어서도 매우 우수하다는 것을 느꼈다.

Carlson 교수가 만들어 놓은 난방용 양철 닥트는 일류 양철장이가 만든 것 못지않게 솜씨가 좋았다. 후에 안 일이지만 유학 온 우리 한국의 공학도들이 실험실 작업(Lab time)을 매우 어렵게 생각하고 미국 학생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 같았다.

미국 학생들은 어릴 적부터 공학적인 마인드가 되어 있는 반면, 우리 학생들은 「학자는 선비요」 손을 써서 공작하는 것은 금물이라는 생각이 있는 모양이었다. 한국에서 유학 온 전동수(田東洙) 씨(당시 전자공학 졸업반)는 Lab 시간이 가장 괴롭다고 항상 불평을 하던 것을 들었다. 

▲ 미국 도착직후 (Laurel과 Kirsten)
 
College Town 인 Easton

대학이 소재한 Easton은 당시 인구 약 3만 정도 되는 소도시로 「펜실베니아 주」와 「뉴저지 주」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 독립전쟁 당시 「워싱턴 장군」이 추운 겨울 병사들과 함께 도강해 영국 식민지군을 무찔렀다는 전설적인 델라웨어 강이 있다. 주변의 경치는 미국 동부 지역에서도 휴양지로 이름이 나있을 만큼 아름답다.

동부지방의 큰 강들이 다 그렇지만 식민지 시대부터 운하를 축조해서 대서양과 내륙을 연결해 모든 물류가 소통되어 오지(奧地) 개발에 일찌감치 성공한 나라다.

Easton은 「델라웨어」운하의 중간 기착장으로서 일찍 도시가 발달했다. 부자들이 많아 지방대학 설립을 추진할 쯤 마침 미국 독립의 은인인 Lafayette 장군이 50년 만에 미국을 다시 방문하는 것을 기념해 장군의 이름을 교명으로 했다. 1832년의 일이다. 지금도 캠퍼스 중앙과 출입이 가장 많은 후문 옆에 거대한 장군의 동상이 서 있다.

이즈음에서 미국의 SOC개발은 일찌감치 독립 초기에서부터 역점을 두었다. 첫째는 인마(人馬)가 다니는 Trail, 즉 인디언 Road가 오지를 누비고 Trail이 마찻길로 발전했다. 물류의 대량 유통과 도시 개발이 진행되면서 미국 동부의 4대 강, 즉 Hudson강, Delaware강, Potomac강 그리고 Georgia강에 운하를 건설해 오지와 연결했다.

큰 배가 더 이상 들어올 수 없는 지역부터는 말 두필이 끌어가는 바지운하를 만들어 오지 끝까지 접근했다. 「멕시코」만에서 시작해 대륙 중앙을 가로질러 Chicago에 이르는 「미시시피」물길도 상류 부분은 모두 운하로 연결했다. 대륙횡단 철도가 건설되면서 운하의 수명이 다 됐지만 지금은 관광지로 활용하고 있다.

운하 건설에는 많은 「유럽」저지대 운하가 발달된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그리고 「영국」 이민(移民)들의 역할이 컸다. 그 후 철도가 들어오면서 「영국 시스템」과 「유럽대륙 시스템」이 공존하다. 대륙시스템으로 통일되고 고속도로가 생길 때까지 150년을 열차가 대륙을 누볐다. 모두 숙련된 이민자들의 작품들이다.

그 반면, 남미 제국(諸國)은 초창기 Spain과 Portugal 이민들이 대부분이고 운하 축성이나 철도건설 등 S.O.C에 별 경험이 없어 Columbus가 대륙을 발견한지 500년이 지난 지금도 미개발(未開發) 국가로 남아있다. 「인디언」통치에만 관심이 있었다.

 
  대륙횡단 여행 (57회)
  Lafayette College (5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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