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산(富士山) 답사_2 (133회)
  제17장 은혜와 봉사

먼저 도착한 몇몇 그룹이 길에 나와 쉬고 있었고 외국인도 드물지 않아 스위스인인 BIEMON, 네델란드인 REMBERT 등을 만나 재미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숙소라고 안내를 받은 곳은 비탈에 지은 어두컴컴한 집이다. 마룻바닥으로 되어 있는 1, 2층 내무반에 10명이 한 조가 되어 잔단다. 이 좁은 곳에 열 명이? 아니나 다를까 반은 북으로 반은 남으로 머리를 두고 차곡차곡 누워 잔다고 한다. 이런 잠자리는 난생 처음이요, 길이길이 기억될 일이었다.

물이 귀한 나머지, 먹는 물 이외에는 일체 세수, 발 씻기 등은 불가능하단다. 거대한 산이지만 화산으로 형성된 곳이라 물이 없다. 겨울의 눈과 가끔씩 내리는 빗물을 모조리 받아(지붕 등은 모두 쇠양철로 되어 있음) 지하 저수장에 모아 놓고, 겨우 음식 만드는 데와 식수로 조금씩 꺼내 쓰는 정도였다. 물리, 화학을 이용하여 물만 만들어 판다면 대박이 터질 것 같은 희한한 곳이었다. 

도착이 5시, 저녁식사는 5시 반, 가슴은 답답한데 음식이 들어갈 수가 없다. 내일을 생각해 먹는 둥 마는 둥 조금 요기를 하고 말았다. 이시사와 군은 가급적 일찍 자는 것이 내일을 위해 좋을 것이고 새벽 1:30분이 기상이라고 일러줬다. 정상에서 일출을 보는 것이 성산(聖山) 등반의 재미인데 그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양쪽으로 발을 뻗고 10명이 눕는데 반대쪽에 중년부인 두 사람이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후지산 산중에는 이런 희한한 문화도 존재했다.

10,000척의 고산은 춥기도 하고 마룻바닥에 새우잠을 자려니 설기만 하다.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 일어났다 누웠다 하다가 엣다, 모르겠다, 밖에나 나가보자 하고 나갔더니 삼삼오오 모여 잡담, 담배를 피우는 무리도 있었다. 다시 들어와 뒹굴다가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기상시간이다. 모두들 짐을 챙긴다. 일어나 허둥대는데 이시사와 군이 들어와 우리를 깨운다. 그는 벌써 완전군장을 하고 우리를 인도할 채비가 끝났다. 

나와서 보니 산길은 이미 반딧불로 환상적인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남녀노소, 손전등을 든 사람, 머리에 광부들처럼 전등을 매단 사람, 가지가지 모습으로 자기 앞길을 밝히며 위로 위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순례 길을 오르는 신도들의 행렬 같기도 하다. 모두 경건하고 말소리도 없다. 가파르고 구부러진 길은 오르는데 가다 서다 한다. 다행히 하산하는 사람이 없어 부딪치는 법이 없다.

약 한 시간 반 정도 걸었을까 「후지 Hotel」이라는 산장이 나왔다. 마지막 숙박시설이라 했다. 정상을 오르기 위해 산에서 2박하는 등반객들이 이틀째 밤을 보내는 곳이라고 했다. 우리 삼총사는 용케도 낙오되지 않고 대열을 따라 잘도 오르고 있었다. 3~4시간 걷고 나서 정상이 가까워오자 머리가 조여 오면서 숨이 가쁘고 힘들어졌다. 열 발짝 옮기고 쉬고를 반복했다.

드디어 새벽 4시경 정상에 도달했다. 아직 해가 뜨려면 2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 3,776m 정상에는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신사가 있고, 간단하게 요기할 수 있는 스낵식당도 있었다. 한꺼번에 몰리는 등산객을 수용하느라 식당은 말할 수 없이 붐비고, Coffee 하나 얻어 먹는데 30여분이 걸렸다. 

편하게 하산하려면 아침을 먹어야 한단다. 이시사와 군의 성화에 적당한 의지를 찾아 쪼그리고 앉아 식사라고 하는데 나의 모습이 우습기까지 했다. 모두가 동냥아치 같은 모습이다. 동양관(東洋館)에서 준비해 준 주먹밥 하나를 갉아 먹으며 따뜻한 커피와 된장국을 한 모금을 마시니 살 것 같다.
 
정상에는 일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우체국이 있어 한국으로 엽서 하나씩을 적어 보냈다. 후지산 정상이라는 스탬프까지 찍어서 말이다. 분화구를 한 바퀴 돌아오려면 반나절이 걸린다고 하여 그만두고 기상관측소와 NTT중계소가 있는 쪽으로 조금 더 가서 해맞이에 적당한 곳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역시 Pro guide를 동반한 관계로 모든 것이 알뜰하게 준비되었다.
 
▲ 일본 북알프스 입구에서 양지회 일행

동쪽 하늘이 점점 붉어 오면서 아스라이 하늘 쪽으로 빛이 솟구치더니 붉은 태양이 서서히 그 모습을 나타냈다. 아침 여명을 가르며 떠오른 태양은 신성하게까지 느껴졌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그저 그 광경에 압도되어 “아, 아,” 하는 가느다란 탄식의 소리만 내뱉는다. 

불쑥 올라온 햇님 덕에 분화구 아래쪽을 볼 수 있었는데 백두산 천지(天池) 같은 호수는 없고 바닥은 잔설로 덮여 있었다. 정말로 멋없이 밋밋한 정상이었다. 춥기는 한겨울처럼 추웠다. 기상관측소 앞에 큰 한란계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영상 3도를 가리키고 있다. 우리 한국은 지금 장마 끝이고 복중이라 최고로 더울 때인데 말이다.

6:30분, 하산 길을 재촉한다.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쏟아지면 비집고 나가기 힘들다고 했다. 하산 길 입구에 당도하니 벌써 인산인해이다. 그날이 그해 들어 최고의 등산객이 모였다 한다. 날씨도 최고이고, 아이구! 이 군중 속에서 어떻게 다섯 시간을 걸어 내려갈지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약 30분 정도 내려가니 길이 세 갈래로 나누어 졌다. 야마나시(山梨), 시스도가(靜岡) 방면으로 가는 길이 트인 것이다.

하산하는 사람이 약 반으로 줄면서 숨통이 트였다. 장엄한 산허리를 마음껏 구경하면서 내려갈 수 있게 되었다. 하산 길 전용이 되어서 그런지 상향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우선 부딪히지 않으니 좋았다. 의도적으로 길을 그렇게 개설했다고 한다. 그런데 부서진 화산 돌이 잔자갈로 변해 발을 잘못 디디면 죽죽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기 일쑤였다. 

하산 길은 지옥길이라 했는데 정말 어렵고 주변에 부상자가 속출했다. 풀밭, 수풀 하나 없는 나산(裸山)이어서 마땅히 편히 쉴 자리가 없다. 완전히 군대에서의 행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길도 단조로워 「지그재그」만 되풀이하며 약 1,000m를 내려와야 했다. 마지막 「지그재그」를 벗어난 지점에서 원(元) 회장이 허리 부상으로 인하여 보행이 어려워졌다. 수차의 엉덩방아 끝에 허리에 무리가 간 모양이었다. 85kg의 거구이다 보니 충격이 컸던 것이다.

시간은 오전 10시, 3시간 반 정도로 주파한 것이다. 이시사와 군도 연령에 비해 놀라운 건각(健脚)이라 칭찬을 해 주었다. 넓은 하산 집결지에는 간이 구급소가 있고, 계속 보행이 어려운 사람을 위해 말이 준비되어 있었다.

북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역마(使役馬)인데 다리통이 유난히 굵고 힘이 무척 세게 보이는 말이었다. 2만원에 계약을 하고 원(元) 회장을 실었고, 성(成) 사장과 나는 넓은 대로에 나온 기분으로 팔을 휘저으면서 폭넓게 걸어갔다. 조금 뒤에는 먹을 물도 있고 조그마한 시내도 흐르고 이제 문명국에 당도한 기분이었다. 

정오쯤 해서 출발지점인 5호목 시가지에 당도했다. 이시사와 군에게 Ticket을 전하고 그간의 수고를 치하하며 헤어졌다. 오후에 또 새로운 팀을 배정받아 산행에 오른다고 했다. 택시 편으로 약 1시간을 달려 ‘양지회’ 일행이 기다리고 있는 가와구찌고(河口湖) 온천호텔에 도착하였다. 우리의 성공적인 후지산 등반을 박수로 맞아 주었다.

후지(富士)는 멀리서 쳐다보면 정말로 신비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직접 들어가서 정상에 올라보면 실망이 앞선다. 「Just once, No more」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후지산을 등반했다고 두고두고 자랑을 한다.

 
  후지산(富士山) 답사_1 (132회)
  북해도 대설산(大雪山), 그리고 조난_1 (13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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