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과 진주만 공격 (163회)
  제20장 나의 성장기1

삼국동맹을 맺었던 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침략전쟁을 본격적으로 감행한다. 독일은 「슈데텐랜드」 남부국경을 끌어당기더니 오스트리아, 체코를 순차적으로 합병하고 드디어 「폴랜드」를 1939년 침공함으로써 2차 세계대전의 서막이 열리고, 이탈리아는 이에 질세라 에티오피아를 침공한다. 일본도 중국 남경(南京)을 인간도살을 통해 점령하더니, 중경(重慶)으로 퇴각한 장개석을 계속 압박해 나갔다.

미국은 집요하게 일본의 중국 침략을 견제하고 비난하다가, 말을 듣지 않으니 일단계로 곡물 수출을 중단했다. 드디어 일본으로서는 가장 아픈 부분인 석유 수출을 점점 줄이다가 1941년 여름에 와서 완전 중단을 단행하자 일본은 선전포고 없는 전쟁을 감행한다.

드디어 1941년 12월 9일 각 신문사는 호외를 돌리고 진주만(Pearl Harbour) 기습공격을 대서특필하고 있었다. 나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구군신(九軍神)의 사진이었다. 이들, 해군의 신(神)이 된 특공대원 9명이 미(美) 태평양함대를 요절내고 장렬히 산화해 군신(軍神)이 되었다 한다.

그런데 미군사(美軍史)에 보면 이 9군신이 하나도 목표인 진주만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도중에서 없어지고 말았다 한다. 이들은 대형 함정에서 띄운 일인용 잠수어뢰정을 타고 진주만에 잠입해 공중 기습 항공기와 함께 항만에 정박 중이던 모든 함정을 파괴한다는 임무였는데 가는 도중 잠수정의 기능상의 문제로 물속에 모두 가라앉아 없어지고 단 한 척이 어떻게 고장을 일으켜 진주만 입구에 좌초하여 태평양전쟁 포로 1호가 되었다.

그리고 일본은 정보도 어두워 진주만 안에서 항공기에 의해 격침된 배는 「오클라호마」, 「아이오아」 같은 육중한, 기동성이 없는 전함들뿐이었다. 태평양함대의 핵심이었던 항공모함 4척은 모두 대양에 나가 있어 한 척도 피해를 당하지 않았으며, 2년 후 태평양전쟁의 전세(戰勢)를 뒤집은 미드웨이(Midway) 해전(海戰)에서 일본은 항공모함에 의해 결정타를 입고, 그때부터 일본 본토 쪽으로 쫓겨 가기 시작했다.

또 하나 관심을 끄는 것은 이 작전을 총지휘했던 山本 五十六(야마모토 이소로쿠) 원수(元帥)이다. 아버지가 재혼하여 56세에 山本(야마모토)을 낳았다 하여 이름을 五十六(이소로쿠)라 했단다. 1904년 러일해전(露日海戰) 때 결정적인 승리를 이끈 東鄕 平八郞(도고 헤이하치로) 원수(元帥)의 환생이라며 일본 국민의 추앙을 받던 山本(야마모토)은 우수한 해군 장성임에 틀림이 없다. 

사관학교, 해군대학에서 일등을 했고, 와싱턴 주미(駐美) 일본대사관에서 무관(武官)을 지냈으며, 미군 해사(海士)를 자주 시찰하고 강연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당시 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미국의 위치가 최상이었고, 미국의 군수(軍需)능력 등 전력(戰力)이 막강하다는 것을 잘 아는 지미파(知美派)가 개전(開戰) 일선(一線)에서 무모한 짓을 했을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야마모토(山本)만이 이 전쟁을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 생각한 것은 아닌 것 같다. ‘秋丸(아키마루)보고서’라는 것이 있다. 이에 대해 풀이를 한 조선일보의 기사기획 에디터인 박정훈 씨의 글을 인용한다.

‘...진주만 기습직전인 1941년 여름, 이른바 「아키마루 보고서」가 완성되었다. 육군 중좌 아키마루 지로(秋丸次郞)가 이끄는 특명팀이 1년 반을 작업한 결과물이다. 아키마루 팀에 주어진 과제는 「미국, 영국과 전쟁을 하면 이길 수 있느냐」 는 것이었다. 방대한 시뮬레이션 끝에 나온 결론은 상식대로였다. 일본의 국력은 영국, 미국의 1/20에 불과하다. 개전 초기 2년은 버틸지 몰라도 그 이상 가면 무너질 수 밖에 없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이다. 108쪽 분량의 이 보고서는 상부에 보고되었다. 육군 참모부는 이 보고서는 국책에 반한다며 소각지시를 했다...’

이와 같이 승산이 전혀 없던 전쟁을 왜 했을까? 전후(戰後) A급 전범(戰犯)들도 하나같이 ‘개전 때부터 확실히 승산이 없었다.’ 고 실토를 했다. 그러나 당시 상황으로는 ‘전쟁을 억누르면 천황도 폐위(廢位)로 이어질 수 있었다.’ 고까지 말했다.
 
▲ 일본의 진주만 공격 장면

아키마루 보고서대로 딱 2년 만에 전세(戰勢)는 바뀌었고, 야마모토(山本)는 「카달카날」 전선에서 무모한 항공 이동 중 사전(事前) 통신감청으로 비행비밀을 알아챈 미(美) 전투기에 의해 격추되었다. 그리고 「사이판」의 옥쇄(玉碎)를 시작으로 「쿠암」, 「앗쓰스」섬의 무참한 옥쇄로 점차 이어가고 있었다.

이 무모한 전쟁의 시작은 일제 군부의 비밀주의, 은폐 그리고 거짓말 정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거짓말과 은폐 덕분에 보통 일본인과 순진했던 우리들도 일본이 전쟁에 질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그리고 일부 일본인, 일본 교사들까지도 일본은 신(神)의 나라이므로 신풍(神風)이 불어 줄 것이고, 성냥갑만한 폭탄을 대본영(大本營)이 개발했는데, 이것 하나면 「와싱톤」이 날라 간다고도 했다.

독재의 속성은 거짓말에 있는 것 같았다. 6 .25 때 미군과 같이 있으면서 느낀 것은 미군은 보도(報道)의 원칙적인 공개주의를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 병력의 위치, 작전 등은 철저하게 사전보안을 하고 있었으나, 전투가 끝나면 보도진에게 전장은 철저하게 공개되었다. 다시 말해 승리와 패배는 투명하게 밝혀주었다. 전쟁 중 우리는 대본영의 발표만 하늘처럼 믿었고, 외부세계와는 완전히 단절되어 아무것도 몰랐다.

태평양전쟁은 광기(Out Cry)로 시작되었고, 거짓말로 3년 반을 더 이어가다가 미국의 원자탄 두 발로 그 환상과 광기가 끝장이 났다.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이 세상을 우리들은 물려받은 셈이다. 

<1941년>

신사년(辛巳年) 한해는 나에게 아주 가혹하고 잊을 수 없는 해였다. 쓰디쓴 죽음의 그림자가 항상 나의 주변에 감도는 것 같았다. 연초부터 건강이 심상치 않았던 어머니는 그 곱던 얼굴과 몸매가 앙상하게 피골이 상접하고, 얼굴에서는 미소와 웃음이 떠나버렸다. 계속 아프니까 어머니가 미워지기까지 했다.

갓 태어난 경자(京子)의 먹이를 위해 아버님은 백방으로 노력하셨고, 암죽으로만 아이를 키울 수 없으니 젖이 있는 유모를 대는 수 밖에 없었다. 위생이란 물 건너갔다. 계속 배탈이 심해지면서 아이가 크지를 못한다. 어머니의 병환이 심해지면서, 형님과 나는 번갈아 동생을 업고 큰댁에 가서 백모님께 맡기고 오기 일쑤였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8월 4일 어머니는 핏덩어리 여덟 달 된 내 동생을 놓아두고 세상을 뜨셨다.

그리고 초상 중에 관리가 소홀했던지 나의 애견 「베쓰」까지 출상 후 3일 만에 죽고 말았다. 모두들 어머니가 외로워서 좋아했던 「베쓰」를 저세상으로 데려갔다고 했다. 베쓰는 독일 「쉐퍼드」 종자로 잘 생기고, 입양 전에 양견학교(養犬學校)에서 제대로 훈련을 받은 군용견(軍用犬)이었다. 말도 잘 듣고 재주도 많았다. 친구와 내가 혹시 다투기라도 하면 그 친구를 혼쭐을 낸다. 정이 많이 든 개였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3개월 만에 계모님이 들어오셨다. 구례군 마산면 사돌에서 1,000석 했던 오(吳)참봉 댁의 스무 살 규수였다. 우리 생모님을 아버지에게 중매했던 나의 진외가 허(許) 면장의 며느리(나는 아짐이라고 불렀음) 김(金)씨의 중매로 이루어졌다. 

‘아짐’과 계모님의 어머니는 자매 사이였다. 우리 백모님이 구례로 가셔서 처녀를 보고 마음에 들어 혼사는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오정순(吳貞順) 어머니는 자식이 하나도 아니고 넷이나 딸리고, 서방님과 열두 살이나 차이가 있는데 어찌 선뜻 응했는가, 그럴 사연이 있었다.

몰락해 가는 1,000석지기 집안은 당시로서는 구제불능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실의에 차서 날마다 술로 지새고, 몇년 전 외할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오정순(吳貞順) 어머니는 그 환경을 하루 속히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만사 재끼고 우리 집으로 피난을 오신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집안 살림은 비교적 넉넉했으나, 아이 넷을 키워야 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며, 독선이 심했던 서방님을 모셔야 하는 고생은 이때부터 시작이 되었다. 새 어머니가 들어오시자 한 달이 못 되어 대동아전쟁이 발발했고, 그로부터 4년여를 물자부족과 더불어 정신적으로도 많은 고초를 겪는 단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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