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영(林胤英) 실장 후임으로 오신 홍성철(洪性徹) 실장은 인품이 모가 나지 않은 호인(好人) 형이었다. 차분하게 총리를 모시고, 부하들에게도 싫은 소리나 스트레스를 주는 법이 없었다. 그저 사고(事故)만 치지 않으면 가만 두는 분이었다. 상하 구별이 없었다.
그리고 최(崔) 총리 때 민원 수석(民願 首席)으로 있었던 김창희(金昌熙) 씨는 민원업무가 정무실로 통합되면서 박(朴) 수석을 보좌하게 되었고 나하고도 여러 일을 같이 수행했다.
경제, 시정(市政) 수석으로 있던 심창유 씨는 감사위원(監査委員)으로 전출했다. 두주(斗酒)를 불사하는 강골이고, 일제(日帝) 때부터 총독부 예산편성에 참가했던 분으로 우리들에게 많은 일화를 남겼다.
나의 여섯째 숙부님과 중학동창이고 해서 그분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가끔 술자리에서 “진휴야! 니 삼촌 말이다, 양정(養正)에서 역기, 기계체조 선수였는데 나를 촌놈이라고 가끔 두들겨 패서 여러 번 얻어 맞았어.” 하시면서 술잔을 건네곤 했다. 심 수석은 용인(龍仁) 이동면 시골 출신이고, 숙부님은 더 시골 출신인데도 5학년 때 서대문 미동소학교(美洞小學校)에 전학 오셔서 서울내기 행세를 하셨던 모양이다. 두 분 모두 동경의 「와세다」 그리고 「주오(中央)」大에 유학하면서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경제, 시정실 초창기에 기획원에서 지원 나왔던 이규찬(李奎燦) 전(前) 공정거래위원회 위원, 권이긍(權彛肯 : 전(前) 구청장(區廳長)) 양(兩) 씨는 심창유 씨를 도와 열심히 시정감독을 해나갔다.
민원실에서 정무실로 옮겨와 좌장(座長) 역할을 한 박상형(朴商亨 : 전(前) 한국냉장 사장) 씨, 그리고 조용히 끈기 있게 정무실 서무(庶務)를 돌본 최영태(崔永泰 : 전(前) 주택은행 부총재) 씨 등이 같이 일한 동료로서 나의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국회(國會)와의 연락관계를 총괄했던 하대돈(河大敦 : 전(前) 국회의원) 씨와 정보실에서 보안기관과 연락을 맡아온 정진규(鄭鎭奎 : 전(前) 해양경찰청장) 씨 그리고 비인기 종목인 인사(人事)와 재정(財政)을 맡아온 총무비서실의 오종표(吳鍾杓 : 전(前) 한일협회 사무총장. 매사에 줏대를 세워 서무행정을 원만하게 수행해 많은 친구를 두었다.) 씨 등 모두 좋은 분들과의 교우(交友)였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두 분과의 만남은 지금도 친분이 꾸준히 계속되고 있는 김영만(金英萬 : 전(前) 국제화재보험(주) 부회장) 씨와 이결(李潔 : 현(現) 샘표식품 감사(監事)이며 국총회(國總會) 총무간사장) 씨이다.
김영만 씨는 나의 선친(先親)과의 인연도 있고, 총리실에서 같이 근무한 관계로 특별한 교우를 지속하고 있다. 국총회(國總會) 공동부회장(共同副會長)으로서 지금도 같이 동우회(同友會) 일을 열심히 돌보고 있다.
이결(李潔) 씨는 내가 정무실에 근무할 당시 총리공관과 비서실간의 연락을 담당하는 의전(儀典) 실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활달한 성격에 인화, 교우에 아주 능해 주변 동료 사이에서 인기가 대단했다. 지금도 우리 국총회(國總會)의 「Idol」로서 회(會)의 주요업무를 불평 없이 총괄하면서 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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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國務總理室 體育大會 李漢東總理와 함께 / 나는 國總會 代表로 參席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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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잠시지만 총리보좌관이라는 직함으로 서너 사람이 와 있었다. 정(丁) 총리께서 미국 대사(大使)를 역임하면서 유학생들과 친하게 지낸 모양이었다. 특히 Washington D.C 지역의 대학에서 공부했던 분들이다. 귀국해서 국내에 정착할 때까지 총리가 「Mentor」 역할을 한 것이다.
그 대표로서 전(前) 외교통상부장관을 지낸 박정수(朴定洙) 박사가 있었고, 잠시 교육계에 투신했던 정인택(鄭仁澤) 박사 그리고 가업(家業)인 실업계(實業界)로 돌아간 박병구(朴炳球) 박사 등 세 사람이다.
정인택 씨는 나의 고교 후배였다. 여러 가지 재능이 뛰어난 수재(秀才)였는데 오랜 외국생활에서 갑자기 복잡다단한 한국 현실에 노출되면서 자제력을 잃고 말았다. 놀이에 건강을 잃고 그 아까운 인재가 일찍 세상을 떴다.
이분들이 각자 자리를 찾아 떠나면서 국방, 외교에 관련된 서류들을 나에게 인계 했다. 그 중에 2, 3급(級) 비밀서류가 등재, 또는 말소도 되지 않은 채 일반서류 속에 끼어 있는 것이 여럿 있었다. 그만큼 국내실정, 행정통속을 모르는 분들이었다. 보안감사에서 적발되었으면 여러 사람 다칠 일들이었다. 다행히 내가 있는 동안 총리실은 한 번도 보안감사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보안기관에서 체면상 총리실은 열외로 취급했던 모양이다.
끝으로 잊을 수 없는 분으로 내가 약 5년간 측근(側近)에서 보좌했던 정무수석(政務首席) 박승복(朴承復) 씨다. 그분은 일의 시작과 끝이 분명하고 근면, 성실이 몸에 밴 공직자의 표상이라 생각한다. 이런 모범적인 상관을 모시다 보니 고달프고, 혹사를 당하는 일이 예사였다.
그러나 이분을 통해서 공무원으로서의 기본자세와, 근면과 책임감에 관한 덕목(德目)을 뼈저리게 몸에 익혔다고 본다. 그 당시에는 대책(對策)도 가지가지였다. 월동대책(越冬對策)을 필두로 풍수해(風水害)대책, 이주(移住)대책, 도시정비(都市整備)대책 등등 외에도 부처 간의 조정(調整)문제가 많아 수시로 행정연구를 해서 브리핑하는 일을 하였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행정지원이 매우 열악했다. 도대체 정무실(政務室)에 타자기라고는 한글타자기 하나, 영문타자기 하나가 전부였다. 따라서 모든 것이 수작업에 의존했고 그것도 지시가 떨어지면 야간작업이라도 해서 아침 회의에 맞춰 안건을 준비해야 했다. 1, 2, 3급(級)의 고위직 공직자가 사무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등사된 인쇄물 하나하나를 집어 들고 제본하는 모습은 가관이었다.
그러나 모두 불평 없이 신나게 일했다. 식사비가 예산에서 나올 리가 없다. 언제나 박(朴) 수석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비서실의 관행은 참 재미있었다. 일반 공직사회에서는 밑에 사람이 윗분에게 대접하는 것이 보통인데 우리들은 거꾸로였다. 박(朴) 수석은 든든한 가업(家業)이 있어 아버님으로부터 생활비를 지원 받으셨다.
그러나 절대 낭비하는 일이 없이 꼭 필요한 곳에 가려 썼다. 야간작업을 시키더라도 무교동 「미선옥」의 설렁탕 한 그릇이 전부였다. 어쩌다 하절(夏節)과 연말(年末)에 푸짐한 음식으로 살풀이는 했다. 무더운 더위 때에는 얼음 바켓스에다 선풍기를 틀어대면서 주연을 즐겼던 기억이 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