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춘계공세도 끝나고, 전선이 비교적 안정되면서 병원도 한가해 졌다. 어느 날 피투성이가 된 한국군 사병이 하나 트럭에 실려 왔다. 그는 의식이 없었다. 머리 뒷부분을 다친 것이다. 공병인데 양구 고개 확장공사에 투입되었다가 발파한 돌에 맞았던 것이다. 병원에서는 그를 위한 응급수술반이 가동되었다. 이동외과 병원에는 Neuro-Surgical-Detachment(신경외과 분견대)라고 최첨단 의료진과 장비로 뇌수술만 전담하는 팀이 파견되어 있었다. Cohen(코헨) 소령이 책임자인데 역시 유태인이라고 한다. 부상 입은 한국군 병사는 신경외과로 직행해서 수술을 받는데, 나는 이때 수술에 처음 참관했다.
X-Ray 촬영 후 먼저 간호장교가 머리를 박박 면도로 밀고, 다음 집도하는 코헨 소령은 메스로 부위를 수술할 만큼 가르고 난 후, 소형 톱으로 해골을 자르고 뼈 뚜껑을 잡아 올리니, 누르스름한 뒷골 뇌가 노출이 된다. 비눗물 같은 액체도 동시에 사용되었다. 나에게는 그 광경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잠시 뒤로 빠져 서 있다가 밖으로 나왔다. 모자, 가운, 장갑 등을 벗으면서도 내 정신이 아니었다.
여하튼 수술은 잘 끝나서 중환자 회복실에 들어갔는데, 3일 만에 정신이 돌아온 것이다. 눈을 뜨자 주변이 너무 다르고, 어느 사후세계에 접한 것으로 알았는지, 간호사가 얼굴을 살짝살짝 때리면서 “hey, boy, hey, boy”하니, 이 병사 방긋 웃는 것이 아닌가. 그 고통 속에서 미소를 짓는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이때부터 그 병사에게는 별명이 붙었다, ‘Mr. Smile(미스터 스마일)’ 이라고.
그는 비교적 회복이 빨랐다. 천성이 낙천적인 사람이어서 병원에서도 「마스코트」 로 인기가 있었다. 얼마 후, 한쪽 팔다리가 불편해서 절뚝거리기는 해도 보행이 가능해졌다. 약 1개월 정도 장기치료 후 인근에 있는 한국군 이동외과병원으로 후송차 데리고 갔다. 많은 선물과 약을 싸서 보낸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한국군 병원에 도착하니 대단히 실망이었다. 동행한 미군 간호장교에게도 너무 미안했다. 그곳은 병원이 아니라 거지 수용소였다. 병실이라는 천막에는 군용 나무침대도 없고, 약간 바닥을 판 자리에 가마니를 잘라서 한 장씩 깔아 놓은 자리에 환자를 눕히는 것이다. 간호장교가 “No way, No way, outrageous.”(아냐, 이게 아닌데, 말이 안 돼) 한다. 물자 보급이 열악한 한국군의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앰뷸런스」 타고 돌아오는 도중에는 아무도 말이 없었다. 다만 Mr.Smile은 다음날 후방 큰 병원으로 후송된다는 약속을 받고 다소 위안이 되었다.
8월 어느 날, 내과적 건강문제로 젊은 사람 한 분이 찾아왔다. 약 5km 정도 전방 대암산(1,304m) 근처의 미군 전투공병대대에 한국인 책임자로 근무하고 있으며, 좋은 후임자가 있으면 인계하고 학교에 복학할 계획이라고 한다. 미10군단 직속이어서 비교적 자유롭고 보급수준이 높다고 했다. K.S.C(한국노무부대：Korean Service Corp) 1개 대대(一個 大隊)가 배속되어 있고, 한국인 종업원(주로 취사요원, 모타풀, 각 부서 근무자)은 약 50여 명이 된다고 한다.
꽤 규모가 큰 부대이고, 전선이 고정된 후로는 위험도는 낮은 편이라고 했다. 다만 주저항선에 공병지원을 나가는 요원들은 가끔 사상자가 난다고 했다. 그리고 짚차도 S-2에 두 대가 배치되어 있는데, 하나는 전속으로 쓸 수 있다고 한다. 상당히 조건이 좋았다.
등 따시고 배 따신 병원생활은 잘못하면 「매너리즘」 에 빠지고 발전이 없을 것 같았다. 이즈음 해서 내 나이도 20이 되었으니 한 단위부대의 책임자가 되어보고 싶기도 했다. 용규 형과 상의했다. 형은 대뜸 “적당히 여기에 있다가 학교나 돌아가면 되지, 왜 새로운 곳으로 고생을 찾아 가냐”라며 반대의사를 표한다.
하룻밤 내내 이야기 끝에 그곳으로 옮겨 가기로 했다. 그동안 헤이스 원장과 내가 정신적으로 누나처럼 따르던 올드 미스 Tree 아주머니도 교대로 귀국했다. 새 사람들과의 교분도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떠나기에 모든 여건이 좋았다.
이동병원의 생활의 서술을 끝내면서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것은, 헤이스 원장에 관한 일이다. 6개월여 근무하면서「장교클럽」 술 파티에서 한 번도 원장님을 본 적이 없다. 쾌락을 멀리하고, 독실한 기독교인답게 생활이 반듯했다. 선교사의 후예답게 한국에서의 군(軍) 복무도 깔끔하게 마치고 떠났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겠지만, 그분을 존경해 마지 않는다.
116전투공병대대는 「아이다호 州」 주방위군(州防衛軍) 소속으로서 한국전쟁에 현역화(現役化)해 투입된 부대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 주 출신만이 근무하는 것은 아니고 개방되어 있고, 임무가 끝나면 조직 자체가 주에 돌아간다는 것 뿐이다. 미군 전력(戰力)의 상시(常時) 유지를 위해 평상시 주 어디에 숨어 있다가 유사시(有事時)에 튀어나와 정규화 되어 동원 된다. 물론 평화시대라 할지라도 주 비상시(천재지변, 사회적 혼란 발생)에도 동원은 수시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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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직장 - 미 116 전투공병대대 본부(양구 Punch Bow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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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국전쟁 때에 미군 장병의 구성을 보면 대단히 재미있다.
첫째는 R.A(Regular Army)라고 해서 지원병(Recruit) 그리고 사관학교 출신들의 현역 장교가 이에 속한다. 둘째 N.G(National Guard)는 주방위군 또는 주(州) 예비군이라는 것인데, 소정의 급여를 타면서 일정한 훈련에 동원되고 진급도 한다. 다만 자신의 생계는 별개로서, 직장인이 많다. 셋째는 주로 사병인 경우인데 Draftee라고 해서 징집된 군인이다.
어느 부대에 가더라도 이 3부류가 있어 저희들끼리 자주 농을 한다. 예를 들어 우직하고 열심히 일만 하는 친구가 있으면, “Hey, R.A. Don't work hard, boy!”(이봐, 지원병 멍텅구리야, 일 좀 작작해라) 등의 농담도 자주 한다. 반드시 직업군인에 한해 던져지는 농이 아니고, N.G 또는 징집병이라 하더라도 일 열심히하는 동료에게 던지는 일상의 농담이다. 그들은 서로 크게 반목하지 않고 조화롭게 생활한다.
장교는 원체 좋은 대학 출신의 유능한 자원이 많아 미국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출신에 못지않게 유능한 장교가 각 부대에서 근무한다.
그러나 사병에 관한 한 확실히 차이가 난다. 나라를 위해 복무하겠다는 정신으로 지원하는 경우는 유능하고 똑똑하지만, 대개 R.A는 좀 개인적으로 어려워서 일찌감치 군에나 들어가자, 우선 의 . 식 . 주가 해결되니까, 하는 부류이므로 교육도 부족하고 경험도 없어 좀 수동적인 사람이 많다.
N.G는 대부분 자기 직업을 가진 사람이 많아 유능한데, 몸을 던지는 면에 있어 부족함이 있지 않나 싶다. 영악한 편이다.
그리고 징병으로 입대한 사람은 천차만별이다. 대학 휴학 또는 고교 출신으로서 유능한 사람, 농사짓던 시골 출신 등으로 그 중에는 착하디 착한 병정도 있었다. 다만 미국 사회도 예외가 아닌데, 대체적으로 도시 출신이 영악하고 날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