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산(富士山) 답사_1 (132회)
  제17장 은혜와 봉사

나는 그동안 국내의 유명한 산인 2,744m의 고봉 백두산 천치를 비롯하여 금강산 비로봉, 설악의 대청, 지리산, 한라산 등은 거의 다 답사를 끝냈다. 또한 우리 역사의 설화들이 깃들어 있는 명산대천들을 모두 가 보았고, 이런 순례가 젊었을 때 나의 취미생활이었다. 

나에 못지않게 등산을 좋아했던 두 분이 우리 양지회 회원으로 있었으니 원용찬 회장과 성유경 사장이었다. 모두 의기투합해서 일본 명산으로 원정을 가기로 했다. 특히 일본 회원 중 命尾 씨 내외는 젊은 시절 우리 못지않은 등산가로서 명성이 있었다. 우리가 일본 어디로 가고 싶다고 하면 수개월 전부터 齊藤 사장이 숙박을 비롯해 모든 일정을 빈틈없이 준비해 놓았다. 몸만 가면 되게 되어 있었다. 그중 몇몇 인상적인 등반을 소개한다. 

도야마현 다데야마(富山縣 立山)

해발 2,700m일본은 옛날에 대륙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면서 태평양판과 부딪혀서 융기된 섬이다보니 고산지대가 많다. 3,000m 이상 되는 높은 산이 3,4개가 되고 2,000m 넘는 산은 수십 개가 있다. 

비교적 교통이 잘 발달되고 숙박시설이 잘 되어 있는 관광명소인 동해 쪽 도야마현에 있는 다데야마행을 齊藤 사장이 주선했고, 고교 교사직에 있는 둘째 아들을 「가이드」로 쾌히 추천해서 준비가 되었다. 그리고 命尾 사장은 학생시절 자주 산에 다녀본 처지라 적극적으로 권해 성사가 되었다. 그리고 등산 베테랑인 성(成) 사장 회사 직원 2명이 동행했다.

그리고 일본 쪽에서 회원과 「옵서버」 몇이 참여하는 것으로 했다. 도야마에서 대기하고 있던 일본 일행과 지방열차를 타고, 케이블카로 오르고 드디어 1,500m 지점에서 관광버스에 올라 숙소가 있는 해발 2,000m에 당도했다. 그날이 1998년 8월 3일이었다. 겨울이면 10m 이상의 눈이 쌓인다고 하는데 아직도 잔설이 군데군데 남아 있고, 음달 쪽에는 성급한 사람들이 여름철 스키를 즐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산장에서 바라보는 산봉우리 다섯 개가 연출하는 파노라마는 지금까지 등산 중에 본 일이 없는 장관이었다. 산장쪽 언덕바지에서 뚫린 구멍으로 콸콸 쏟아지는 산수(山水)는 시내를 이루며 산장을 휘감고 돌아내려갔다. 여기 나오는 물은 도꾸가와(德川) 막부보다 연령이 더 길다고 한다. 수천 년 쌓인 빙하가 녹아 산을 통해 빠져나오는 물이다. 400여년이 지나야 이 동굴을 통해 물이 땅 밖으로 나온다고 한다. 물도 온도가 적당하고 아주 맛이 좋았다.

도착한 다음날 새벽 4시에 기상하여 일본 원로들은 호텔에서 기다리고 원 회장, 성 사장 그리고 나, 여기에 대경 직원 2명, 가이드로 齊藤 차남(次男) 일행 6명이 편성되었다. 원 사장과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건각들이었다. 앞머리에 찬 불빛에 의지해 제 1차 관문인 중간 언덕 대피소에 당도했다. 

몇몇 젊은이들이 이미 도착하여 아침을 먹고 있었다. 우리도 호텔에서 준비해 준 도시락 중 조찬용으로 식사를 했다. 일본 별미라고 하는데 밥 위에 연어 편육을 살짝 덮은 도시락이었다. 차남(次男)은 맛이 있다고 먹는데 나에게는 느끼하니 별로였다. 배가 든든해야 산을 타는데 지장이 없으니, 꾸역꾸역 다 먹었다.

2차 언덕길은 정말로 가파르다 못해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형국이다. 참말로 숨 가쁘고 머리가 띵하게 아픈 순간순간을 참아냈다. 선도하는 차남이 잘 이끌어 가고 적당한 시간에 휴식할 수 있도록 배려를 했다. 역시 자상한 일본 교사답게 적절한 설명과 함께 우리를 아주 편하게 이끌어주었다.

정상 근처에서 우리들이 먼저 치고 올라가자 노익장을 과시하는 우리들이 무리하지는 않는지 걱정이 되어, 차남은 우리들을 조절하느라 애를 썼다. 정상에 소박한 신사(神社) 하나가 쪽바위 위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그리고 2,700m 고지에는 ‘메이지(明治) 15년 육군 31연대 순방(巡訪)’ 이라는 비석 하나가 서 있는 것을 보고 꽤 이름 있는 일본의 명산이구나 생각했다. 바람이 폭풍의 언덕처럼 불어대는데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시계(視界)가 좋아 주변의 산들을 내려다보는 경치는 경비행기로 서서히 유영하는 기분이었다.

이제부터 다섯 산봉우리를 따라 동남쪽으로 걷고 또 걷고 하는 장거리 도보행진이 계속된다. 놀라운 것은 눈이 많다. 하지만 봉우리 근처마다, 그것도 햇빛이 쨍쨍 비치는 정남쪽에 한량없이 높이 쌓인 눈들이 신기했다. 8월의 태양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금씩 밖에 녹지 않고 있다가, 가을이 되면서부터 쌓이고 또 쌓인다고 한다. 매년 쌓인 나이테가 역력했고, 기후 연구에 안성맞춤인 것 같았다.
 
▲ 등반을 즐기던 양지회원 (설악산)

산봉우리 다섯을 지나 드디어 급경사를 내려오는 하산 길에 돌입했다. 하산하는 길 양쪽에는 금줄이 쳐져 있는데 절대 숲이나 풀밭으로 등산객들이 들어가지 않는다. 사진을 찍을 때도 길에 서서 찍거나, 앉아서 촬영을 하지 우리나라 등산객처럼 잠간 실례, 하며 금줄 안으로 들어가는 법이 절대 없다. 자연보호에 철저했다. 토끼, 뇌조 등 많은 동물이 서식하는데 충격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대장 차남도 몇 번이고 주의를 주곤 했다.

장장 열 시간의 강행군 끝에 김이 무럭무럭 나는 화산 계곡에 당도했고, 뜨거운 온천수의 분출은 장관이었다. 지옥의 계곡을 벗어나니 멀찌감치 우리가 묵는 산장이 보였다. 중간 휴게소에서 齊藤, 命尾 사장 등이 마중을 나와 주었다. 산장에 도착하자 곧 짐을 함께 챙겨 역순으로 도야마시(富山市)에 당도했다. 그날 밤 양지회 임시총회와 함께 질펀한 주연(酒宴)이 마련되어 오래간만에 모두 회포를 풀었다. 

후지산(富士山) 3,776m

후지는 일본의 명산이라기보다는 조산(祖山)이라고 해야 맞다. 신성시하는 신앙의 목적물 같은 것이다. 아마도 일본의 기업, 상호, 학교 등 후지만큼 많이 사용되는 이름은 아마도 없으리라. 산의 밑둥은 시스오가현(靜岡縣), 야마나시현(山梨縣)을 비롯해 4개현에 걸쳐 뿌리가 뻗어 있어 후지를 애호하는 등산 「매니아」들은 6개 루트를 따라 정상을 정복하곤 한다.

거대한 산임에 틀림이 없고, 먼데서 보는 후지는 생김이 좋다. 언제나 구름 위에 떠 있는 모습이 신성하기까지 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가 확실하고, 아침과 저녁이 각각 다른 맛을 준다. 한번 등반해 보겠다는 생각은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일이다. 서울에서 동경으로 갈 때, 또는 동경에서 서울로 올 때 비행기에서 언제나 옆으로 쳐다볼 수 있는 우리 항로에 후지가 서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등반 삼총사는 齊藤 사장이 작성한 스케줄에 따라 2000년 8월 3일 드디어 등반길에 오른다. 동경에서 3시간을 버스로 달려 일행은 오전 10시경 후지산 등산로 입구인 5호목(號目:level #5)에 도착했다. 짐을 정리하고 간편한 등산차림으로 갖추고 전원 같이 점심을 했다. 

회원 중 한국 삼총사만 등반하는 것으로 했다. 모두 같이 가기를 원했으나 고령이고 일부 환자까지 있어 齊藤, 命尾, 安田 사장 그리고 石井 영감님은 밑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齊藤 사장은 학생 시절 2차에 긍해서 정상(頂上) 등반을 시도했으나 운이 따르지 않아 8호목에서 하산하고 만 사실을 공개하며 오늘도 따라가지 못하는 사정이 안타깝다고 했다. 命尾 사장은 딱 한번 정상에 다녀왔고, 다른 분들은 모두 시도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만큼 후지산은 만만치 않은 산이고 다소 준비가 필요한 등반이다.

石井 사장이 우리 세 사람의 등반이 못내 걱정이 되었는지 거금 42,000엔(우리 돈 약 400,000원)을 지불하고 산장 동양관(東洋館) 소속의 안내인을 하나 고용해 주며 무사 등반을 간절히 바랬다. 이름은 이시사와(石澤)로서 20대 중반 학생으로 여름 한 철 「셀파」로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후지산 등반은 일 년에 2개월, 즉 7월과 8월뿐이다. 6월까지는 눈이 녹지 않아 등반이 불가능하고 9월이 되면 눈보라가 시작되어 길을 찾을 수가 없으니 등반금지가 된다고 했다. 동해 쪽의 찬바람과 태평양 쪽의 온화한 바람이 바로 후지산에서 맞부딛쳐 엄청난 수증기가 눈으로 변해 땅에 내려앉기 때문에 언제나 대설 상태라고 한다.

이시사와 씨는 퍽 박식하고 조용한 학생이었다. 5호목으로부터 시작한 산타기는 비교적 밋밋한 길을 구불구불 갈지자로 올라가는 것인데 이미 2,000m를 지난 고산인지라 수림(樹林)은 사라졌고 나지막한 관목과 덤불의 연속이었다. 새소리가 요란하고, 그런대로 아래쪽 아스라한 지평선을 가끔 쳐다보며 걷는 길은 그리 단조롭지는 아니하였다.
 
이시사와는 적절한 장소에 쉬게 하면서 편하게 해 주었다. 조금 걷다 보니 머리가 띵한 증상이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고산병 증세로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세 사람 모두 마찬가지였다. 이시사와도 서서히 심해질 것이라 하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킨다. 자기 「백팩」에 비상 산소가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가다 쉬고 가다 쉬고 무리하지 않고 약 5시간 정도 걸었을까, 8호목이라고 했다. 이제는 관목도 없고 풀밭도 없는 검붉은 바위와 자갈투성이의 산길을 걸어올라 가더니 드디어 조그마한 취락이 있는 산등성이에 도달했다. 「일만 척(尺) 고산에 당도하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라는 크나큰 팻말이 동양관 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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