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도 대설산(大雪山), 그리고 조난_1 (134회)
  제17장 은혜와 봉사

70줄에 들어선 나와 원(元) 회장은 좀 무리일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마지막 일본 원정으로 알고 북해도 제 1봉 대설산(大雪山)을 선택했다. 齊藤 사장이 역시 모든 일정을 준비했다.

2002년 7월 11일, 태풍 6호가 일본 본주(本洲)에 상륙했다는 기상예보를 확인했으나 이에 개의치 않고 예정대로 북해도 「삽뽀로」를 향해 출발했다. 등산 매니아 우리 삼총사가 또 일조(一組)가 되었다. 16:40분 부드러운 비행 끝에 「삽뽀로 지도세」 공항에 도착했고, 하늘도 맑았다. 공항에 齊藤 사장 내외분과 命尾, 折橋 사장 그리고 水田 여사가 마중을 나와 주어 반갑게 맞이했다. 齊藤 사장은 수술, 입원해서 10일 만에 퇴원했는데 건강하게 보여 다행이다 싶었다.

이제는 열차 편으로 2시간을 달려 아사히가와(旭川市)에 도착, 다시 지방 버스에 몸을 싣고 북쪽 기다미(北見) 근처 「소운교 온천」에 도착했다. 첩첩산중으로 밤에 반딧불 구경을 오래간만에 할 수 있었다. 청정한 곳이라 많은 벌레가 사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모기나 해충은 그리 없는, 여름 휴양지로 안성맞춤이라 했다. 실내 온천, 야외 온천을 다 구비한 명승지였다. 아주 오지인데도 음식은 일류로 나왔다. 밤에 간단한 식사를 마쳤다. 

아침 6:30분까지 「케이블카」를 타야만 24km의 등반을 완성할 수 있다고 한다. 또 하나의 강행군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비교적 깊은 숙면을 취하고 예정대로 정한 시간에 기상했다. 밖은 의외로 구름이 잔뜩 끼어 있고, 산속 안개도 짙은 것을 확인하고 좀 걱정은 되었으나 태풍이 북태평양 쪽으로 빠진다고도 했으니 괜찮겠지 했다. 

케이블카 종점에는 이미 장비를 제대로 갖춘 수많은 등산객이 모여 있었다. 우리 한국팀 일행을 배웅하기 위해 「케이블카」가 올라가는 1,000m 고지역(驛)까지 동행했다. 일단 여기서 헤어져 대설산 정상을 정복하고 반대 방향으로 하산하면 그쪽 온천도시 「아사이다게(旭岳) 온천」에서 서로 만나기로 했다.

어디에서 휴식을 취하고, 어느 지점에서 점심을 하고, 등 자상한 Trail map을 齊藤 사장으로부터 인수 받고 그리고 사장의 「핸드폰」까지 넘겨받은 우리는 완전무장이 된 셈이었다. 헤어지는 지점에서 사진 몇 컷을 찍고 바이바이 손을 흔들며 장도에 올랐다. 아직도 기계의 힘을 빌려야 한다. 또 500m 더 1,500m 고지까지는 2인용 「리프트」의 신세를 져야 한다. 이 지점이 「구로다계」의 7합목(合目)에 해당한다. 주변은 완전히 안개로 뒤덮이고 빗방울도 제법 굵어졌다.

齊藤 사장이 나의 「백팩」에 구겨 넣어준 방수용 바지와 재킷을 꺼내 입었다. 이것이 나중에 엄청난 역할을 할 줄이야 그때는 몰랐다. 「구로다」 정상까지 무사히 오르며 일차 목표(1,984m)를 점령한 것이다. 그런데 그 아름답다고 하는 주변 경치를 전혀 볼 수가 없다. 서둘러 구로다석실(黑田石室) 산장으로 내려가면서 「사이도」 일행에게 구로다 정상을 무사히 통과하였다는 중간보고를 하고 내리막길을 뛰어 내려가면서 2,3개 팀을 추월해 나갔다. 북쪽 언덕바지인지라 북풍이 아주 강했고, 내리는 비는 이제 진눈개비로 변하여 우리를 괴롭혔다. 약 30분간의 뜀박질 끝에 석실에 도착했다.

3명 1조의 선착 팀이 옷을 갈아입으며 입김을 내뿜고 있었다. 벌써 영하의 기온인 것이다. 우리 팀도 젖은 옷을 갈아입고 나는 내의 여분을 가진 것이 없어 대충 짜서 입고, 물이 질퍽한 양말을 힘껏 짜서 다시 신고, 다음 출전을 준비했다. 석실에는 점점 사람이 많아지더니 나중에는 화장실 들어가기도 힘들어 졌다.

우리는 가야 할 방향을 대충 물어 출발했다. 방향 표시가 좀 엉성해서 혼란을 겪었지만 그런대로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음을 재촉했다. 비교적 평탄한 길을 한없이 걸어간다. 안개, 진눈개비로 앞을 가늠할 수가 없지만 무조건 길을 따라 간다. 가끔 길가에 들꽃, 고비 등의 멋진 분재거리들이 지천에 널려있는 것을 본다. 날씨만 좋았으면 이 자연의 창조물을 얼마나 즐겼을지 아쉽기 그지없다. 
 
▲ 일본 북해도 대설산

진눈개비로 길은 온통 웅덩이 투성이라 신발에 스며든 물은 부걱부걱 소리를 내면서 밖으로 뿜어낸다. 물로 가득 찬 실린더에 피스톤이 움직이는 기분이다. 약 한 시간 지루한 행군을 끝내고 빙벽에 도달했다. 다행히 발을 놓을 만큼 계단을 만들어 놓아서 올라가기 용이했다. 그러나 중간쯤에서부터 눈보라로 계단이 밋밋해진 언덕길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약 30도의 경사에 미끄럽기까지 한데 위험하기 짝이 없다. 

한 팀 정도가 앞선 것으로 아는데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내가 지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비게이터」 역할을 해야만 했다. 위험한 고비를 몇 번 넘기며 빙벽을 무사히 넘고 북진악(北鎭岳) 분산지점(分山支店)에 도착했다.

대설산 제 2고봉으로 높이가 2,244m인 북진(北鎭)은 우리 스케줄에 포함되어 있으나 제일 늦게 헐떡거리며 올라온 원(元) 회장은 북진(北鎭)은 포기하고, 곧장 목적지로 행군하자고 했다. 그런데 성(成) 사장은 아직 원기왕성한 상태라 이미 정상 쪽으로 사라져 갔다. 뒤쫓아가서 큰 소리로 불러 겨우 되돌린 다음 합류하고, 우리 중식이 예정된 마미아다게(間宮岳)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제는 능선을 따라 끝없는 행군이다. 그 무섭게 내리치는 북풍을 옆으로 맞으며, 무자비하게 내리는 진눈개비에 이제 손발이 거의 마비되다시피 굳어간다. 양말을 짜는 것은 이미 잊어버리고 물방울이 떨어질 정도로 젖은 면장갑은 가끔 힘주어 짜 가면서 전진한다.

12시경 마미아다게(間宮岳)이라는 푯말이 서 있는 곳에 당도했다. 구로다 산장에서 9시에 출발하여 3시간 만에 당도한 것이다. 예정보다 30분 정도 늦었으나 이런 악천후에서는 매우 선전한 셈이다. 그런데 어찌할 것이냐, 대피소는 물론 의지할 바위 하나 없는 살벌한 곳이었다. 주위가 화산재와 자갈밭인데 걸터앉을 곳도 없는 희한한 자리에 와서 점심을 해결하려니 될 일인가. 바람 때문에 쓰러질 것 같고 서 있기도 무서운, 사방이 탁 트인 능선인데 말이다.

셋이서 계속 행군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길을 재촉했다. 이제 서서히 배가 고파 오는데, 성 사장이 준비해 온 약과와 초콜릿바를 씹으며 허기를 달래면서, 계속 걸었다. 처음 경험한 것인데 보통 초콜릿을 입안에 넣으면 녹기 마련인데, 입에 한기가 도니 망울망울 입안에서 돌고 있어, 깨물어야 먹을 수 있었다.

얼마쯤 가다 우리 쪽으로 향해서 긴 장대를 흔들면서 눈 속을 휘젓고 다가오는 사람을 만났다. 얼마나 반가운지 아사히다게(旭岳) 최고봉을 답사하고, 구로다끼(黑岳)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눈 속에 매몰되어도 끄떡없을 정도로 완전군장을 한 50대 중년인데 우리의 행선지를 이야기 듣고 위아래를 훑어보더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여기가 딱 중간 지점인데 마지막 언덕인 아사히다게(旭岳)쪽이 걱정’이라고 했다. 

이런 악천후에는 입산을 금지하면서 온천도시로 내려가는 「케이블 엘리베이터」도 가동을 중단한다면서 또 걱정을 한다. 아사히다게(旭岳) 꼭대기만 올라가면 하산하는 중간지점에 대피산장이 있으니 괜찮을 것이라며 걱정을 덜어준다. 여하튼 고맙다는 말과 함께 헤어졌고, 각각 반대 방향으로 서로 계속 길을 재촉했다. 
 
완만한 능선으로 계속 오르락내리락하며 걸어가는데 분지(盆地)가 나타났다. 나지막한 돌담으로 둘러싸인 곳에 개인 천막이 몇 개 설치되어 있고, 사람 모습이 보였다.

이제 살았구나 하고 접근해 보니 7, 8명 정도의 여자들만의 산행조(山行組)였는데 우리들을 쳐다보더니 좀 경계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모습은 남루할 수밖에 없었고 물속에 빠졌다 건져진 생쥐 같은 몰골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다 바람 불어치고 눈보라로 앞을 가늠하기 힘든 상황에서 남자 셋이 불쑥 나타났으니 불안할 수밖에 없으리라.

 
  후지산(富士山) 답사_2 (13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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