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도 대설산(大雪山), 그리고 조난_2 (135회)
  제17장 은혜와 봉사

돌담 밑에라도 잠시 앉아서 휴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간절했으나 놀란 표정의 부녀자에게 다가 가기가 미안했다. 그들은 구로다(黑岳)으로 가는 도중에 악천후로 여기에서 발이 묶였다고 한다.

그들에게서 앞길만 확인한 다음 걸음을 재촉하며 아사히다게(旭岳) 정상으로 가는 마지막 언덕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눈비에 얼어버린 무릎이 거의 감각이 없고 가슴이 뛰는 것으로 겨우 살아 있음을 느끼는 지경에 이르렀다. 구조요청이 절실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산중에 헬리콥터라도 띄우려면 일기가 맞아야 하는데 사방이 농무(濃霧)와 눈보라로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우리를 구조할 수 있단 말인가. 군(軍)에서 헬리콥터에 관한 상식을 많이 주워들어 그런 점은 알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는 우리에게 접근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러한 사정을 알면서 사이도(齊藤) 일행에게 구조를 요청한다면 발만 동동 구를 것이고, 구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들은 꼭 얼어 죽을 것만 같았다. 기를 쓰다 죽는 것이 낫지 괜히 걱정을 끼치는 것이 폐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가지고 있던 펄펄 살아있는 핸드폰은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사실 마지막 언덕에서 두어 번 핸드폰이 울리는 것을 듣기는 했다. 받을 힘도 없으려니와 받아도 어찌한단 말인가?

정상까지는 약 300m인데 가파른 산의 300m는 대단히 높고 긴 거리인 것이다. 이미 무릎과 어깨는 얼어 있어, 다리를 쳐들 수가 없다. 만년설로 뒤덮인 북벽 쪽에 길이 나 있는데, 경사도 심하거니와 미끄럽기 한이 없다. 아이젠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다. 

군대의 행군 구령에 맞추어 ‘하나 둘 셋’, 멈추어 서서 ‘하나 둘 셋’, 삼보일휴(參步一休)로 한 계단 한 계단, 기를 쓰고 발을 내민다. 제일 기력이 좋고 장비도 비교적 잘 갖추어 있는 성(成) 사장이 앞장섰다. 연신 초콜릿과 약과를 까서 우리들 입에 넣어 주면서 ‘에너지 계속 보충하세요.’, ‘여기서 주저 앉으면 죽습니다. 걸어요, 걸어요. 발을 떼요, 발을!’ 하며 계속 독려를 했다. 

맨 뒤에 처진 원(元) 회장은 죽을 힘을 다해 따라 붙으려고 처참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 역력해 보였다. 성 사장은 기다렸다가 뒤에서 다시 격려하며 밀어 올리는 식으로 앞뒤를 다니며 우리를 밀고, 끌어 올렸다. 그런데 추위와 고산증으로 체력에 한계가 오면 자꾸만 눈이 감기는 현상이 생긴다. 이때 눈감고 주저 앉으면 끝장이다. 그때마다 ‘하나둘 셋’, ‘하나둘 셋’ 구령을 되뇌며 한발이라도 앞으로 내밀어 본다. 그리고 한참 만에 앞섰던 성 사장이 고함을 지른다. ‘정상이 보인다! 다 왔습니다.’, ‘살았습니다.’ 외치고 있었다.

드디어 정상에 기어올랐다. 정상에는 반대편에서 올라왔다고 하는 두서너 팀이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나 반가운지. 이제는 살았구나, 지옥문을 통과했구나. 멍청한 상태에서도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 우습기까지 했다. 춥고 떨리는데 더 이상 멈출 수가 없었다. 정상에서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야 하는데 그럴 겨를이 없었고, 사진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사방이 컴컴한 상태였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하산 길은 퍽 가파른 언덕길이었다. 다행히 눈과 얼음이 완전히 녹아 맨땅에 발을 대니 살 것만 같다. 다만 얼어 있는 무릎이 잘 펴지지 않으니 언덕바지를 거꾸로 걸어가 보기로 했다. 좀 충격이 덜하고 걸어갈 만했다. 앞으로 걷다 뒤로 걷다 몸을 녹이느라 애를 쓰며 하산을 했다.

이렇게 약 40, 50분쯤 가니 스가다미지(姿見池)라는 이름의 멋지게 지은 산장이 나타났다. 그리고 산장지기가 마침 근무 중이라 절뚝거리며 내려오는 우리 일행을 보더니 밖으로 나왔다. 재빨리 다가와 원 회장을 부축하여 안으로 들어가서는 담요를 꺼내 우리들에게 한 장씩 덮어 몸을 싸준다. 이제 진짜 살았구나. 그러나 사지가 녹으면서도 달달 떨리는 것이 멈추지 않는다. 원 회장이 더욱 심해서 이빨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산지기는 우리를 보더니 한국에서 왔느냐고 하면서 매우 반겼다. 자기 딸이 한국 청년과 결혼에 수원시에 농자재상을 하며 살고 있다 했다. 농사 연수를 온 한국 학생과 연애를 해서 결혼에 골인해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했다.
 
▲ 농무(濃霧)에 싸인 북해도 대설산

따끈한 녹차 덕으로 나와 성 사장의 떨림과 딸꾹질은 어느 정도 멈췄으나 원 회장의 떨림은 심각한 상태였다. 산장지기는 우리를 「케이블 엘리베이터」까지 안내해 주었다. 타고 내려가며 보이는, 눈앞에 전개되는 북해도의 수림(樹林)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지옥과 천당의 갈림길이 이렇게 간단하구나, 종이 한 장의 차이에 불과한 「찰나(刹那)의 세계」를 나는 체험했다.
 
역에 도착하니 모두 나와서 환영해 주었고, 심각했던 상황을 그제서야 알아차리고 급히 우리를 온천장으로 안내를 했다. 도착 예정시간에 맞추어 산장에까지 우리를 맞으러 命尾, 水田 씨들이 올라와 보기까지 했단다. 다행히 齊藤 사장의 사촌 형님 내외분이 그 온천 호텔에 투숙하고 있었는데 그 형님이 내과 의사인지라 원(元) 회장부터 혈압, 체온을 재더니 두서너 시간 온천탕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심장에 과부하가 걸릴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나와 성(成) 사장은 오케이가 나서 그 얼어 굳은 몸을 유황탕에 담갔다. 지글지글, 찌릿찌릿한 느낌을 체험하면서 다시 살아났다는 안도감을 마음껏 누렸다. 정상적이라면 6시간으로 주파하는 거리를 10시간의 사투를 벌인 것이다.

태풍 6호의 진로를 잘못 파악했고, 북방의 고산을 얕잡아 본 것이 우리의 크나큰 실책이었다. 「지상에서 영원으로」라는 어느 영화의 제목을 연상하게 하는, 나의 일생 중 가장 긴 하루였다. 끝까지 버티는 끈기 그리고 ‘그 무서운 6 .25 사변도 겪어냈는데...’라는 도발정신이 나를 살렸다고 생각한다. 원 회장과 나는 모두 참전용사들이다. 

그날 저녁의 주연(酒宴)은 잊을 수가 없다. 고난 중에 겪었던 일들, 그 무용담을 안주삼아 왁자지껄한 회식은 참말로 즐거웠고, 가끔씩 나의 무릎을 꼬집으며 혼잣말로 ‘Am I alive?’ 하며 확인을 되풀이하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조간 아사히(朝日)신문(2002년 7월 14일 일요일)과 요미우리(讀賣)신문에 「遭難(조난)의 2人 死亡確認(사망확인), 愛知(애지) 福岡(후쿠오카)의 두 등산 구릅」 「악천후 중 입산 비극, 福岡 여성 등 2명 사망」 특필로 나왔다. 그날 근방에서 사망자가 2명이나 나온 것이다. 모두 우리들에게 “축하합니다.”를 연발했다. 장례식장이 될 뻔한 자리가 축하인사의 꽃밭이 된 것이다. 

齊藤 사장 부인의 알뜰한 배려로 우리들 세 사람의 젖은 신발이 깔끔하고 고슬고슬하게 말려져 현관에 나와 있었다. 다음날 관광버스로 북해도 화훼단지에 내려와 그 드넓은 라벤더 꽃밭에서 저 멀리 눈 덮인 대설산(大雪山)을 올려다보며 한없는 상념에 사로잡혔다.

요산요수(樂山樂水)는 선비의 도(道)라고 하였다. 산을 즐기고 물가를 좋아하는 것은 단순히 산이 아름답고 물이 시원하다는 것만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역시 산과 자연을 경외(敬畏)하는 마음가짐을 배운다. 자기를 낮추고 무한한 어떤 존재를 느끼고 감사하는 정신이 중요하다. 고난 끝에 정상을 정복하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느낀다고 한다.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저 밑에 도시, 집들 속의 사람들, 한없이 왜소하게 느껴지는 것들을 나에게 투영해 보면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나는 산을 좋아했기 때문에 직장에서 언제나 산악회장을 맡아 명산을 찾아다녔다. 대부분 아랫사람들이라 대접만 받고 어른 의식에 항상 젖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정상에 올라 아래 세상을 한참 살피고 내려오면 동행했던 부하들이 갑자기 평등하게 보인다. 형제처럼 느껴지는 것을 종종 느끼곤 했다. 등산은 심신의 교육장이라 생각한다.

첫째 : 산에 오를 때에는 경건해야 한다. 한발 한발 착실하게 내딛고 급한 마음을 접어야 한다. 둘째 : 유비무환이다. 산은 산이다. 유원지가 아니므로 어떠한 기상변화에도 대처할 수 있는 준비가 있어야 한다. 셋째 : 좋은 일행과 동반해야 한다. 무력화(無力化)되면 돌볼 수 있는 사람이 일행 중에 있어야 하며, 마음을 열 수 있는 상대와 동행하는 것은 행복이다.

양지회원(陽智會員)을 통해 일본의 명산과 유명온천을 많이 안내 받았다. 특히 命尾 사장은 독서가 취미이고 대단히 박식한 분이다. 역사에 얽힌 일등 해설을 들으며,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어 교우(交友)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북해도 대설산(大雪山), 그리고 조난_1 (134회)
  양지회(陽智會)의 현재 (13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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