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韓日) 친선의 모임 양지회(陽智會)_2 (131회)
  제17장 은혜와 봉사

내가 언젠가 동경 「하네다」에 있는 사이도 본사를 방문했을 때 선대(先代)부터 골수직원으로 알려진 경리책임자 아주머니가 하는 말이 놀라웠다. ‘사장이 한국에서 돌아오면 명랑하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정말로 많은 변화가 있다’고 했다. 근엄하고 딱딱한 회사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고 실토를 했다. 남을 도와주는데 신바람이 난 것이다.

자주 한국에 드나들던 사이도, 메이오, 아스다 여러 사장들은 나의 주변 친구들과 어울리게 된다. 기술 전수의 베이스 역할을 했던 (주)대경기공의 성유경(成有慶) 사장, 나의 대학선배인 원용찬(元容贊) 국제편직 회장 그리고 화천기계(주) 최봉근(崔鳳根) 사장과도 교우를 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한일 간의 친선에 도움이 되고 우리 개개인의 교양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구상 중에 제대로 된 모임을 출범시켜 보자는 의견일치를 보게 되었다. 모두 찬성했다. 우리 모임에 찬동을 하나 공직에 있는 사람은 「옵서버」로 모시기로 하고 사업하는 민간인 위주로 조직하기로 했다.

회칙이 한ㆍ일어로 작성되고 드디어 1985년 12월 14일 나의 농장에서 역사적인 창립총회를 가졌다. 회칙이 비준되고 회의 명칭으로는 용인군 양지면 양지리 산 110번지에서 창립했기 때문에 ‘陽智會(양지회)’로 했다. ‘밝고 아름다운 지자(知者)들의 모임’ 이라는 뜻도 되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임원선출에 들어가 간사장은 가장 젊고 활동적인 대경의 성유경 사장이 맡고, 일본 측 고문에 사이도 사장 그리고 한국 측 고문은 원용찬 회장이 맡기로 했다. 그리고 초대 회장은 내가 선임되었는데 양지회가 해체되던 2004년까지 어언 14년간, 초대부터 끝까지 회장을 바꾸지 않고 내가 해왔다.

첫 총회에서 희망과 기대에 부문 우리 회원들은 서로 많은 제안을 했다. 채택된 첫 안은 회원 일인당 천만 원씩을 출자해 경기도 이천 온천 근방에 (주)해태가 추진하고 있는 레저타운 근처에 5,000여 평을 구입하고, 적당한 시기에 양지회의 회관을 건립하기로 했다. 그리고 제 2안으로 최소한 2년에 한 번씩 가족동반 역사탐방 관광을 하기로 결의를 보았다. 한국과 일본을 오고가면서 말이다. 끝으로 이 양지회는 가능하면 우리의 자식 대까지 지속되도록 노력한다는데 합의를 봤다. 참고로 여기에 회칙의 일부를 전재한다.
 
양지회 회칙

제 1 조 (명칭) 본회는 양지회라 칭한다.

제 2 조 (목적) 본회는 한국과 일본의 뜻있는 저명인사의 친목단체로서 국제간의 친선과 가족간의 우호를 증진시키며 경제적상호협력을 도모함으로서 국제사회적책무를 수행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 3 조 (사무소) 본회의 사무소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 두고 일본국 동경도에 연락소를 둔다.

제 4 조 (회원의 자격) 본회 회원은 학식이 깊고 덕망이 높고 사회적경제적 신의가 두터운 인사로서 구성한다.

제 5 조 (회원의 가입) 본회 회원을 정회원과 준회원으로 구분한다.
1) 정회원은 회원의 추천에 의하여 회장단의 심사를 거쳐 회원전원의 찬성으로서 정회원이 된다.
2) 준회원은 회장단의 추천으로 결정한다. 

회원명단

- 정회원 직장  婦人名 -
일본측 : 齊藤 眞 (齊藤遠心機(株) 社長) 齊藤 江
            命尾 晃利 ((株)德壽製作所 社長) 命尾 孝子
            安田 浩 ((株)安立實業 社長) 安田 君惠

한국측 : 원용찬 (국제편직(주) 사장) 안순옥
            최봉근 사장 남복녀
            성유경 (주)대경기공 사장 김윤자
            김진휴 FLOWER BANK 사장 문정숙

- 준회원 -
일본측 : 石井 勝己 (日本基礎工業(株) 社長)
             折橋 治郞 (日本 折橋製作所(株) 會長)
             水田 ヒサエ(伊藤 忠 企劃室長)

한국측 : 장명수 (전 전북대학교 총장)
             이관범 (당시 농림수산부 토지국장) 
 
▲ 安田(맨 좌측), 齊藤(좌측 세변째), 命尾(맨 우측) 사장

이듬해인 1986년 3월 28일 양지에서 제 1회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회관부지 구입을 위한 자금조달에 회원 일인당 일천만원씩을 출자했다. 그리고 이천온천 바로 큰길 건너 이천읍 진리에 6,000여 평의 밭을 부지용도로 구입하고 적당한 시기에 도시계획이 변경되어 온천지구로 고시되면 일본 온천장의 장(莊)같은 영업 겸용으로 건립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회(會)가 운영되던 16개년 동안 정규총회는 16회 개최하였고, 가족동반여행은 국내에서 경주 신라 탐방, 공주, 부여 백제사 탐방 그리고 설악산, 제주 한라산 등반 등 많은 지역을 방문했다. 교차 방문으로 일본 하고네(箱根), 후지산(富士山) 그리고 일본 북동부 아오모리, 북해도 그리고 동경 근방의 명소 일광(日光)등을 돌아봤다. 이렇게 가족 간의 교류도 돈독히 이어졌다. 국내에서 총회가 끝나면 인근의 복지시설을 방문하여 봉사하였고, 사업관계의 상담(商談) 등도 활발히 전개하였다.

인상적인 것은 가족 동반하여 설악에 갔을 때 마침 사이도 사장의 환갑이었기 때문에 회원 전원과 가족이 성대하게 회갑연을 철산리 한식점에서 챙겨주었고, 춤과 노래로 축하무드가 최고조에 달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또 한 번 1997년 12월 13일, 총회와 망년회(忘年會)를 겸한 전주(全州) 방문 때 전북대학교 장명수 총장의 주선으로 완벽한 한국식 교자상이 준비된 메이오 사장의 고희연(古稀宴)이 차려져 본인이 눈물겹도록 기뻐하던 그 자리를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내가 마련해 간 금단추 마고자 한복을 입혀 교자상 앞에 앉히니 어느 대가 댁 마님 같아 아주 멋이 있었다. 그때의 사진은 命尾 사장의 가족뿐 아니라 일본 친구 사이에 큰 화제꺼리가 되었다 한다.

총회 등 모임이 끝나면 반드시 이벤트가 있었다. 복지시설 방문도 빼놓지 않았고 역사 탐방과 문화시설, 특히 주변의 박물관, 미술관 등을 많이 다녔고, 가끔 골프 등 여가도 즐겼다. 

평소에 만나면 많은 대화를 통해 지성의 교류도 있었지만, 시대적 필요에 따라 간담회를 종종 소집해서 회원 각자에게 부여된 테마에 따라 연구발표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나를 예로 든다면 New Millenium을 맞이하는 「우리 지성(知性)의 한마디」라는 주제로 Seminar를 개최한 바 있다. 1999년 12월 8일의 일이다. 

발표자 및 제목

① 신세기의 일본 Hi-tech 산업방향 : 齊藤 眞
② 신세기의 한국 Hi-tech 산업방향 : 성유경
③ 고령화사회에 있어서의 노인문제 : 원용찬
④ New Millenium과 종교의 문제 : 최봉근
⑤ 한일·일한 관계의 전망 : 安田 浩
⑥ 한국(조선반도) 통일과 동북아의 역학 : 김진휴
⑦ 신세기의 가정관계와 성(性)문제 : 命尾 晃利 

모두들 활발하게 참여해 주었다. 그리고 우정은 형제간 같은 깊은 사랑으로 발전하였다.   

 
  한일(韓日) 친선의 모임 양지회(陽智會)_1 (130회)
  후지산(富士山) 답사_1 (13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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