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쓸 때
이 회고록은 제1부, 제2부, 제3부, 제4부, 제5부로 나누어져 있다.
나는 지난 50년간 한국사회사와 고대 한일관계사를 연구하였으나, 재1부에서는 지면관계로 한국사에서의 씨족의 출현시기와 한국 가족사에서의 17세기의 변화, 백제왕이 사람을 일본에 파견하여 그곳을 경영한 사실을 다룬 6세기 백제-일본 관계와 일본열도의 한국 고지명에 관한 논문을 전재하였다.
제2부에서는 기억에 남는 스승, 출판사 사장, 뛰어난 업적을 남긴 후배 교수, 학부와 대학원에서 내가 지도한 제자들, 누구보다도 종합적이고 뛰어난 시각을 가진 신문기자(논설위원), 소속은 다르지만 같은 목표를 향하여 매진하는 동지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했다. 학부와 대학원 시절 스승이었던 이상백 선생은 나에게 논문을 썼다고 곧 발표할 것이 아니라 적어도 1년 정도는 묵혀둔 뒤에 발표하는 것이 좋다고 가르쳐 주셨다. 출판사 일지사의 김성재 사장은 개인 출판사로는 처음으로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계간 학술지인 <한국학보>를 여려 해 동안 간행하였으며, IMF경제위기가 닥쳐와 이 잡지의 속간이 어려워질 때 나의 논문발표지가 없어질까 염려해주신 분이다. 참고로 나는 이 <한국학보>에 총 60편 정도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제3부에서는 나의 석사학위에 얽힌 이야기, 학술조사 차 일본과 제주도를 여러 번 방문한 이야기, 지금까지 세계에 퍼져 있는 고대 한일관계사를 바로잡고자 영국에서 책을 출간한 이야기 등을 소개하였다.
제4부에서는 한국말을 아는 스위스 출신의 영국의 한 대학교수가 나의 가족사 연구를 몽땅 표절하여 미국의 한 명문대학에서 책을 간행한 사실도 모르면서 오히려 나를 그 분야에서 무지하다고 헐뜯는 한국 학계의 이야기, 한국사를 일본사의 일부로 다루어서 일본에서 학위를 받은 사학자, 일본인들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학자, 국제학술회의에서 나의 연구발표를 헐뜯은 한 선배 교수의 이야기들을 소개하였다.
마지막으로 제5부에서는 지난 50년 동안 내가 겪은 역경과 고난에 대하여 예를 들어 이야기 하였다. 그동안 내가 겪은 심적 고통을 되돌아보면, 학문하는 사람 가운데 나만큼 그러한 고통을 겪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역경이나 고통에 대하여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심적 고통을 받을 당시나 그 후에 그러한 고통을 상기할 때마다 나는 더욱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고통이 없었더라면 그처럼 장기간의 지속적인 연구에 열중할 수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그 결과 나타난 연구 업적도 축적되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도 나에게는 외부로부터 고통을 받으면 압력을 받은 공처럼 일단 우그러지다가 다시 원상 복귀함과 동시에 크게 튀어 오르는 성질이 있는 것 같다.
이리하여 나는 1959년부터 시작하여 50년간 매년 평균 6편씩의 연구논문을 발표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나에게 고통을 점지해준 조물주에게 감사드린다.
결혼 후 오늘날까지 50여년 동안 가정생활을 팽개치고 ‘미쳐 돌아가는’ 나를 인내심을 갖고 용케도 참아준 안사람 이춘계 교수에게 이 자리를 빌려 처음으로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원고를 정리해 준 고려대 대학원 사회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이진희 양, 그리고 진명여고 교사인 지만수 군에게 고마움을 표하고자 한다. 본서의 끝에 나의 연구연보를 첨부해 두었다.
나는 이 글에서 진실을 남겨놓고 싶어서 내가 겪은 일들을 그대로 기록하고자 한다. 이 역경의 행운이 좀 더 나은 학문적 풍토 조성에 이바지할 수 있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겠다.
2011년 3월 최재석
개정할 때
2011년 3월에 간행한 초판본이 절판되었으므로 개정판을 간행하기로 했다. 개정판은 초판본과는 구성을 달리하여 한국사회학 연구 이야기, 고대 한일관계사 연구 이야기, 기억에 남는 사람들, 내가 겪은 학계의 부조리, 그리고 못 다한 이야기 등 6개의 장으로 구성했다.
내가 겪어온 적지 않은 시련이나 구한말의 비극을 상기할 때마다 나는 개인도 집단도 사회도 그리고 국가도 위기에 대처하는 힘을 평소부터 기를 때 비로소 거기에 대처하는 힘이 강해진다고 믿고 있다.
나는 그 비교결과를 지금으로서는 짐작할 수 없으나 발표된 연구논문의 질이나 수량에 있어서 이웃나라 학자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50여 년 간 노력해왔다. 그 결과 일본의 고대 역사서인 <일본서기(日本書紀)>의 내용 분석에 의하여 고대 일본은 백제왕이 파견한 각종 백제관리들의 통치를 받은 백제의 영토임을 확인하였으며 또한 한국사회사와 고대 한일관계사 연구에 몰두하여 도합 319편의 연구논문을 발표하였다. 독자 여러분의 편의를 위하여 내가 규명하며 찾아낸 종요한 몇 가지 사실을 머리말에서 제시하고자 한다.
A 한국사회사 분야
1. 신라왕실의 왕위계승자는 성(性)과는 무관하며 또 반드시 전 왕이 아니라 왕의 아들, 딸, 사위, 외손의 5종의 친족원이었다(영국 왕실의 왕위계승은 여기서 사위가 제외된다).
2. 그러나 일본 사학자들은 위의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전설 또는 조작이라고 주장해왔다.
3. 조선 중기까지 장기간의 서류부가혼(婿留婦家婚)으로 그 시기까지는 아들 딸(사위) 간의 차별이 없았다.
4. 다량의 분재기(分財記)에 따르면 한국은 대체로 17세기 중기까지 자녀균분상속(子女均分相續)을 하였다.
5. 문화 류씨 족보에 의하여 한국은 예상보다 늦게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전국적 규모로 동성동본의 조직체 씨족(氏族)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B. 고대 한일관계사 분야
1. 일본 고대 사서인 <일본서기>에 의하면 적어도 6세기에 일본(야마토왜)은 백제왕(무령황제)이 파견한 백제관리가 통치하는 백제의 식민지였다.
2. 그러나 일본 고대 사학자들 약 30명 거의 모두가 구대 한일관계사를 왜곡하고 반대로 고대 일본이 한국을 통치하였다고 왜곡 주장하였다.
3. 1971년 공주에서 발견된 무령왕릉 ‘지석’에 의하여 일본을 통치한 무령왕은 왕이 아니라 황제였음을 알 수 있다(왕의 죽음은 훙(薨)이고 황제의 죽음은 붕(崩)이다).
4. 일본의 쇼소인[正倉院]에 소장된 약 8,000점의 문화에는 대부분 신라의 것이다.
5. 일본은 메이지 시대(1868-1911) 이전부터 한국 침략의 야망을 품고 가야를 허위의 지명인 임나(任那)라고 하였다. ‘임나’라는 지명은 어느 역사서에도 없고 일본 정부가 만들어낸 허구의 지명이다.
6. 조선 항해 수준이 극도로 낮은(‘일본서기’에 이 사실이 기록되어 있음) 일본은 6세기에는 백제 직할 영토였고, 백제 멸망 후 727년 이전은 신라 한 나라에 복속되었으며 727년 이후부터 10세기까지는 신라와 발해 두 나라에 복속되었다.
7. 고대 한일관계사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하여 영문판 <Ancient Korea-Japan Relations and the Nihonshoki>를 2011년 영국 바드웰출판사에서 자비 출판하였다.
끝으로 개정판 출간을 주선해주신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의 이덕일 소장과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출판해주신 만권당 사장님께 감사 말씀 드린다.
2015년 3월 최재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