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사회사에 관한 논제(논문집)와 고대 한일관계사에 관한 논제(논문집)을 각각 12권, 11권씩 간행한 바 있다. 여기서는 지면관계도 있고 해, 전자에 속하는 논문인 <한국사에서의 씨족의 출현 시기에 대하여>와 <한국가족사에서의 17세기의 변화> 등 두 편의 논문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여기에 소개한 논문 2편은 한국사회사의 핵심 분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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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사회사에 관한 논제 중의 하나인 '한국사회사의 탐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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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회학자들을 위시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직도 근거의 제시도 없이 신라시대부터 씨족, 예를 들어 박씨족(朴氏族), 석씨족(石氏族), 김씨족(金氏族)으로 존재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신라의 왕위는 사위로 계승된 일이 8사례, 외손에게 계승된 일이 5사례, 딸에게 계승된 일이 3사례나 된다. 바꾸어 말하면 신라의 왕위는 아들ㆍ딸ㆍ친손ㆍ외손ㆍ사위의 5종의 친족원에게만 계승되었다.
신라의 왕위는 아들ㆍ딸ㆍ친손ㆍ외손ㆍ사위에게 계승
당시 동성동본 집단인 씨족이 존재했다면 왕위는 아들에게 계승되었을 것이고, 아들이 없었다면 입양하여 그 입양아에게 왕위가 계승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고 딸, 사위, 친손, 외손 등에게 계승되었다. 다시 말하면 신라시대에 씨족이 존재했다면 왕위가 박씨(1~3대) → 석씨(4대) → 박씨(5~8대) → 석씨(9~12대) → 김씨(13대) → 석씨(14~16대) → 김씨(17~52대) → 박씨(53~55대) → 김씨(56대)로 계승될 수 없다.
동성동본 집단인 씨족이 언제 출현했는지는 결혼형태, 재산상속, 입양 등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먼저 결혼 형태부터 살펴보자. 한국은 장기간의 서류부가(婿留婦家)전통이 계속되어 왔으므로 사위(외손)도 아들(친손)과 똑같은 대접을 받아왔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기에 사위(외손)는 제외하고 아들(친손)만의 집단이 구성될 수 없다. 조선중기에 이르러 서류부가 기간이 단축되고 딸과 외손에 대한 차별이 심화되었을 때 비로소 아들(친손)만의 집단이 생겨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족보에 수록된 자손 범위의 변화에도 나타난다. 지금까지 간행된 족보를 모두 보관하고 있는 문화류씨(文化柳氏)의 경우, 1562년 족보는 10권이었으나 다음에 찍은 1689년 족보는 5권으로 줄어들었다. 이것은 1562년 족보에는 외손도 친손과 똑같이 수록하였으므로 10권이었으나 1689년 족보에서는 외손이 모두 제외되었으므로 5권으로 줄어든 것이다.
다시 말하면 1562년에서 127년이 지났음에도 1689년의 족보가 오히려 10권에서 5권으로 줄어들었는데, 이것은 127년 동안에 증가한 친손보다 제외한 외손이 월등하게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현상은 1562년과 1689년 사이의 어느 시기에 처음으로 외손이 차별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중기 이전에는 재산이 아들과 딸 사이에 균분상속
또 동성동본 집단인 씨족이 존재하려면 경제적 뒷받침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조선중기 이전에는 재산이 아들과 딸 사이에 균분상속되었으므로 씨족 존립을 뒷받침 해주는 경제적 기반이 없다고 하겠다. 조선중기 이후 딸에게는 재산을 상속하지 않거나 상속하더라도 극히 적은 재산을 상속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아들만의 집단인 씨족의 경제적 토대를 가질 수 있었으므로 이 시기에 비로소 아들만의 집단인 씨족이 생겨날 수 있다.
또 씨족이 존속하려면 무엇보다 충원(充員)이 이루어져야 한다. 입대가 없는 부대가 존속할 수 없듯이 동성동본 자의 입양(入養)이 없는 곳에 동성동본 집단이 형성ㆍ존립될 수 없다. <국조방목(國朝榜目)>에 따르면 15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입양 현상이 처음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다가 1600년대 중엽에 일반화 된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점에서도 한국 동성동본의 씨족은 1600년대 중기에 출현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것이다. 중언하거니와 동성동본 자의 입양이 없는 시기에는 동성동본 집단이 생겨날 수 없다. 그리고 한국 역사상 이러한 입양은 17세기 중엽에 이르러서야 일반화 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