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대학원 학위제도에는 구제(舊制)와 신제가 있었다. 구제는 과정을 밟지 않는 제도로, 주로 학위 없는 교수에게 학위를 수여하는 제도였으며, 신제는 입학시험을 치르고 입학한 후 과정을 밟는 제도였다. 신제에는 석ㆍ박사 두 제도가 있었는데, 석사과정은 대학원이 설치된 해부터 개설되었지만 박사과정은 1963년부터 개설되었는데, 입학도 학위취득도 제1호는 중앙대 명예교수인 김영모 씨로 알고 있다.
당시 서울대 도서관은 한국전쟁 후 얼마 지나지 않은 탓인지는 모르나 신간 외국도서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사회학 관계 도서는 대학의 중앙도서관에 빌려다 조교가 상주하는 학과 연구실에 비치하고 있었다. 1930년대까지의 도서가 대부분이었고, 그 이후의 도서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석사학위를 하는 학생 대부분은 이론연구가 유행이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당시의 이론연구는 서양의 사회학자를 소개하는 것이 전부였다. 때 마침 나는 한국인으로 도쿄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명륜전문대(지금의 성균관대)에서 사회학 강의를 한 신진균 씨의 장서인 퇴니스(Tönnies)의 <공동사회와 이익사회(Gemeinschaft und Gesellschaft)>를 우연히도 당시 내가 자주 찾던 청계천의 한 고서점에서 비싼 값을 내고 산 바가 있으므로 퇴니스의 <공동사회와 이익사회>에 대하여 연구할까, 생각을 잠시 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나 일본에서의 사회학 이론연구는 결국 서구 사회학자의 논저를 소개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한국사회에 대한 현지조사를 통해 미숙하나마 거기서 어떤 결론을 도출하는 작업을 해보고자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계룡산 신도안(新都內) 조사연구
마침 지도교수였던 이상배 선생님이 충남 계룡산의 ‘원시종교’를 조사연구해 보면 어떻겠냐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당시 계룡산의 ‘신도안(新都內)’의 종교를 한국의 ‘원시종교’로 의식하고 계셨던 것 같다.
결국 나는 계룡산 남쪽 기슭에 있는 신도안의 신앙이나 종교를 조사하게 되었는데, 이 조사는 해방 후 사회학을 공부하는 학도가 논문작성을 위하여 조사한 최초의 현지조사이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때까지 한국의 사회학 분야에서 현지조사를 통한 논문이나 저서가 간행된 일이 한 번도 없었으니 조사를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그 계획을 어떻게 짜야 하며 실제 조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시해야 하며 그리고 조사결과는 어떻게 논문으로 끌고 갈 것인지 막막하였다. 그러나 나는 마침내 1955년 8월과 같은 해 9-10월에 2차에 걸쳐 조사하고 그 결과를 논문으로 만들었다.
정감록(鄭鑑錄)>의 예언을 믿고 이주한 한촌(寒村)
거기에는 종교집단의 분류, 신앙대상과 의례, 신양내용과 유형, 집단관계, 신앙 쇠퇴에 영향을 주는 요인 등이 포함되어 있지만 여기서는 그러한 학문적인 내용보다 재미있는 몇 가지 양상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신도내의 대다수 주민은 새로운 수도가 ‘신도내(신도안)에 이루어진다는 <정감록(鄭鑑錄)>의 예언을 믿고 이주하였을 뿐, 이주 후의 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대책도 없이 신도내로 이주하였으므로 이주 후의 그들의 생활은 일반 농촌의 농민에 비하여도 매우 빈곤하였으며, 전국 각지에서 인구가 유입하기 전의 신도내는 한촌(寒村)에 지나지 않았으나, 1955년 현재 그곳의 인구는 14개 마을에 걸쳐 1,100가구 가까이 되었다.
1914-1915년, 1934-1957년, 1939-1940년, 1942-1952년 시기, 즉 정치적ㆍ사회적 격동기에 인구 이입의 파고(波高)가 높았는데, 이는 정치적ㆍ사회적 변동기에 <정감록>이 강하게 기능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또 신도내에는 상제교(上帝敎)를 위시하여 6개의 종교가 존재하지만 상제교를 제외한 5개의 종교는 각각 10가구 미만의 영세한 것이었다.
신도내 이주자 중 충남, 황해, 전남, 경북 출신이 제일 많았는데 이는 이러한 도(道)의 주민이 다른 도 주민보다 정감록 신앙과 같은 민간 신앙에 더 강한 관심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끝으로 본인 이후에 본인처럼 현지 조사에 따라 학위논문을 발표한 사례가 있었는지는 날 수 없으나 이전에는 그러한 예는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