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CA한국본부장을 맡아 지난 13년간 지구상의 아름다운 나라 53개국을 돌아보았다. 타고 나길 한 곳에 얽매여 있으면 답답하고 울화증이 생기는 타입이라 좋아하는 영화 일을 하면서 세상구경을 할 수 있었던 그 시간들은 내게 아름다운 상을 받은 것과 같은 날들이었다.
UNICA세계영화제가 다른 영화제들과 다른 점 하나는 개최국의 유명 관광지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며 영화제와 연계된 문화상품으로 홍보한다는 점이다. 나는 문화와 관광산업의 성장은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UNICA세계영화제가 그렇게 오랜 시간 영화제를 통해 관광자원 홍보라는 실리를 추구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문화가 관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문화관광은 국제 관광에 있어서 가장 비중이 크고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다. 특히 문화는 한 나라의 국가적 이미지를 창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국가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원천이기도 하다. 관광은 그 나라의 자연과 문화의 차이에 의해 가능하며 그 차이를 느끼고 체험하기 위하여 여행객들은 그곳을 찾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매혹적이고 깊이가 있는 여행지가 되려면 특유의 문화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문화가 있어야 관광이 가능한 것이다.
UNICA세계영화제는 세계적인 관광지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유럽지역에서 열리는데다 UNICA회원국의 각 대표들이 대부분 자국의 경제와 문화예술 방면과 연관된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각국 대표들은 세계영화제를 자국의 관광자원으로 최대한 홍보하는 통로로 이용하려는 노력이 돋보였으며 정부에서도 자국의 인적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UNICA 각국 회장단들은 대부분 자국의 대중문화와 감성적 정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영상예술인들이기에 이들을 통해 각국 대표들을 잘 대접하는 것이 그 나라의 관광 자원들을 가장 실용적이고 확실하게 홍보할 수 있는 기회라 판단한 것이다. 각국 대표들 역시 이런 부분에 있어 분명한 철학과 자부심을 가지고 자국의 문화와 관광 자원을 열정적으로 알려 나가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나 역시 우리나라 대구와 경주에서 세계영화제가 열렸을 때 한국의 문화유산이나 관광자원들을 널리 알려 장기적으로 경제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하지만 정부 측의 도움도 부족하고 혼자 준비하기에는 컨텐츠가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 끝에 사비를 털어 가장 한국적인 문양이 담긴 작은 실용품들을 선물했는데 그것을 받은 각국 대표들은 깊은 감동을 받고 내게 수차례 감사인사를 전해 왔다. 아마 그런 작은 정성이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듯하다.
지금까지 참석한 UNICA세계영화제들은 폴란드 바르샤바, 독일 뷔르츠부르크, 벨기에 블랑켄베르그, 슬로바키아 미쿨라스, 튀니지 함마메트, 폴란드 그다니스크, 스위스 아인지델른, 룩셈부르크, 불가리아 룻세 등이다. 사실 관광객으로 이 지역들을 찾았다면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식으로 대충 둘러보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UNICA 한국 대표로서 다닌 관광은 최고의 대접 속에서 최상의 것들을 구경할 수 있던 기회였다.
각국 대표 혹은 그 나라 정부 측 고위층이 직접 영접을 나와 가이드까지 맡아주며 일반 관람객들은 구경할 수 없는 비공개 문화유산이나 관광지 등을 구경시켜 주었다. 13년의 오랜 시간동안 유럽 전역의 많은 나라들을 다녔는데 그 중 깊은 인상을 남긴 몇 나라만 소개하고자 한다.
독일 뷔르츠부르크는 2004년 UNICA세계영화제 개최국이었다. 한국 대표단 10명이 참석해 두 편이 동상, 또 다른 두 편이 입선의 영광을 안았다. 뷔르츠부르크는 ‘풀잎’이라는 뷔르츠(Wurz)와 언덕이라는 부르크(Burg)라는 두 단어의 합성으로 이루어진 지명으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독일의 유명 관광지로서 로맨틱 가도‘의 북족 끝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176cm 높이의 작은 요새 도시로 아름다운 길은 뷔르츠부르크에서 시작되어 26개의 작은 마을을 연결해 퓌센에서 끝이 난다.
독일의 저명한 소설가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헤르만 헤세는 “내가 고향을 선택할 수 있다면 단연 뷔르츠부르크다”라고 선언해 손꼽을 정도로 이 도시에 매혹되어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내가 본 뷔르츠뷔르크는 유네스코에서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로 선정했을 만큼 소박한 아름다움과 기품이 느껴지는 도시다. 특히 레지던츠 궁전의 정원은 유럽의 여러 관광지 중에서도 정원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실용주의자들의 나라 독일답게 관광정책도 아주 현실적이고 체계적이었다.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보다 그들의 일상 속에 있던 것을 보존하고 다듬어 그 지역관광 상품으로 개발하는 것이 독일 관광산업의 특징이었다.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윤을 추구하려는 독일의 실용적 관광전략은 전시행정에 치중하는 우리나라 관광정책 사업과 여러 면에서 비교되어 아쉬움이 남았다.
2007년 슬로바키아 미쿨라스에서 열린 세계영화제때는 이전의 다른 영화제때보다 많은 23명의 한국대표단이 참석했다. 이 대회에서 나는 한국의 대구와 경주에서 열린 68회 UNICA 세계영화제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것에 대한 공로로 UNICA창설 이래 최초로 UNICA훈장을 받았다.
우리나라가 UNICA에 가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열린 세계영화제였음에도 그 어떤 영화제보다 안정되고 체계적으로 운영된 것이 높은 평가를 받았던 듯 했다. 특히 정치 경제적으로 여러 악조건이 있었음에도 혼자 발로 뛰며 완벽한 대회 개최 준비를 해낸 내게 UNICA회장단 모두 큰 감동을 받았던 모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