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이후 한국 영화는 영화 시장 개방의 위기 속에서도 1990년대 말부터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유례없는 성장을 보여 주었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 영화는 외화에 밀려 큰 흥행을 거두기 힘들었다. 당시 한국 영화는 서울 관객 10만명만 넘어도 흥행작으로 분류되던 시절이니 얼마나 경쟁력이 약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한국 영화의 비약적인 발전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소재의 다양성과 우수한 인재들이 영화계로 유입되면서 상영관에서 한국영화 점유율이 50% 수준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상업 영화가 이렇게 더딘 성장을 해야 했으니 비상업 영화는 해법을 찾아내기가 더욱 힘든 실정이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유럽이나 북미에 비해 예술영화나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같은 비상업 영화인들은 재능을 펼치고 성장해 나갈 여건이나 기회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제 아무리 재능 있는 인재들이 차고 넘친들 창작물을 선보일 공간과 관객들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재기발랄하고 개성 넘치는 젊은 영화인들의 재능이 사장되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어 UNICA 한국 회장의 자격으로 국내 비상업 영화의 활성화를 위한 다각적인 방법들을 찾아 나섰다.
먼저 UNICA세계영화제부터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그때만 해도 국내 독립영화인들은 UNICA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 그런 그들을 상대로 UNICA세계 영화제 출품이야 말로 한국의 우수한 작품이 ‘세계무대로 진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사실을 강하게 어필했다. 동시에 UNICA세계 영화제 출품작 선정을 위한 ‘UNICA KOREA 영상 페스티벌’도 개최했다.
또 협회 차원에서 우수한 국내 비상업영화의 활성화와 유능한 젊은 영화인들의 작품 제작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영화를 만들고 싶은 마음은 간절해도 해외 진출의 통로를 찾지 못했거나 제작할 여건이 안돼 포기했던 젊고 재능 있는 영화인들은 협회의 지원에 관심을 보이며 점점 UNICA세계영화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한국영상페스티벌 참가자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창의적인 젊은 인재를 발굴, 육성시키기 위한 계획은 청소년 영화인들에게까지 확대되었다. 청소년 부문 수상자 2명에 대해서는 UNICA에서 운영하는 워크숍에 참가할 수 있도록 추천해 어린 꿈나무 영화인들이 단편영화 제작에 더욱 관심과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를 위해 청소년 지원자들의 작품에 대해서는 형식의 제한을 두지 않았으며 참가 연령도 이십육세까지 확대시켰다.
체계적인 지원 덕분인지 젊은 영화인들 뿐 아니라 협회 회원들의 작품 수준도 일취월장 높아져 갔다. 자신이 가진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되다보니 2002년 가입이후 매년 영화제에서 수상의 영광을 차지하는 회원들의 수도 점점 늘어갔다. 그 중에서도 세계 영화인들의 주목을 받은 수작들 몇 작품만 소개하고자 한다.
2004년 9월 경북 외국어테크노대 육정학 교수의 비디오 댄스 작품 <장승>이 독일 뷔르츠부르크에서 열린 제 66회 UNICA 세계영화제에서 동상을 수상했다. 27개의 참가국에서 158개의 작품들이 출품되어 본선에서 치열한 경합을 벌린 끝에 울린 낭보였다. 동양적인 감성이 진하게 느껴지는 이 작품은 인간의 기원과 염원을 하늘에 연결해주는 사제자와 마을 입구나 길거리에서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는 장승의 의미를 재고찰하여 만든 빼어난 수작이었다.
2005년도에 제67회 벨기에 세계영화제에서는 박석재 회원의 작품<동행>이 청소년 부문에서 최고상인 금상 수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당시 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박 군은 나이답지 않은 원숙한 시선으로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고독과 상실감을 깊이 있고 따뜻하게 그려내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았다.
2007년에는 배재대 공연영상학부 최은종 군의 작품 <자유>가 청소년 부문의 은상을 차지했다. 러닝타임 14분짜리의 짧은 영화지만 직장인의 일탈을 현실적이고 진지하게 담아낸 이 영화는 수상 이후 ‘영국 릴리 필름 페스티벌’과 모스크바에서 열린 ‘백야 국제영화제’ 등 세계적인 명성의 단편영화제에 초청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2010년 8월 스위스 아인지델른에서 개최된 제72차 UNICA총회와 제72회 UNICA세계영화제에서 장은연 씨의 작품 <내 마음도 몰라주고>가 프랑스 작품과 함께 최고영예인 대상을 수상했다. 서울예술대학 출신인 장은연 감독은 독립영화제작워크숍을 수료한 재원으로 일찍부터 남다른 연출능력으로 단편영화계의 기대를 모아왔다.
<내 마음도 몰라주고>는 폭력을 통해 한 지적장애인 소년의 삶과 영혼이 세상의 편견에 의해 망가져가는 상황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특히 여성 감독 특유의 섬세하고 깊이 있는 시선으로 정상인과 장애인간의 소통 부재를 밀도 있게 그려낸 수작으로 타인의 고통이나 상처에 무감각한 현대인들의 메마른 정서가 오히려 더 큰 장애일 수 있다는 주제의식을 담아 심사위원들의 큰 호평을 받았다.
특히 수상의 영광을 안은 <내 마음도 몰라주고>는 이 대회 뿐 아니라 2011년도 세계독립영화 챔피언상, 영국IACA국제 영화제 대상, 제 39회 에벤세국제영화제(39th Festival of Nations 2011)에서 황금곰상인 대상과 최고배우상이라는 영광을 차지하며 장편 상업영화 수준이상이라는 극찬과 함께 우리나라 단편영화 사상 가장 많은 영화제에서 최다 수상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