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각종 정부 위원회 참여 (10...

국회 제도운영개혁 위원회 위원

퇴임 후 나에게 세 가지 일이 주어졌다. 국회제도운영위원회와 제2 건국추진위원회 그리고 중앙인사위원회에서 일하게 되었다. 국회제도운영위원회 일은 나의 전공이고 평소에 많은 관심을 가져온 분야인 만큼 기다려지는 모임이었다. 김광웅 서울대 교수가 위원장이고 그밖에 국회의원, 외교관, 학자, 언론인들로 구성되었다.

몇 달간 거듭된 검토 끝에 훌륭한 제안을 내놓았으나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서인지 국무위원들의 인사청문회제도는 슬그머니 없어지고 말았다.

얼마 전에 또 제도개혁위원회가 국회 내에 구성되었다는 뉴스를 신문에서 읽었다. 우리국회는 실제로 개선은 하지 않고 위원회만 만들다가 볼일 못 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본회의 발언시간 제한, 본회의 일문일답식 대정부 질의방식 등은 과거보다는 진일보한 새로운 운영방식이다. 본회의 시간을 지키지 않는 현상은 여전한지 언젠가 민주당의 손봉숙 의원이 본회의장 앞에서 ‘시간을 지키자’는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한 정당의 의원총회가 늦어진다는 이유로 예정된 본회의가 지연되어서 쓸데없이 기다리느라고 시간 낭비하는 폐단은 1970년대 9대 국회에서나 17대 국회에서나 여전하니 정치적 후진성은 아직도 면하지 못한 모양이다.

제2 건국추진위원회 상임위원회 위원

제2 건국추진위원회의 상임위원회는 이미 구성되어 언론에 발표가 난 후인데 나에게 연락이 왔다. 청와대에서 내 이름을 포함시키라는 통보를 뒤늦게 받아서 명단에 올렸다는 것이다. 누가 내 이름을 주었는지는 모르나 하여간 첫 회동에 참석해 보니 모두 그 모임의 성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제2 건국추진위원회의 성격과 앞으로 할 과업에 대한 난상토론이 있었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우선 경제, 정치, 안보, 문화 분야별 소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이 기구와 관련해서 정권연장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등 의심의 눈으로 보는 사람이 많았다.

시인인 김후란 여성정치연맹 부총재가 󰡐차라리 신문화 창조운동󰡑이라고 호칭을 했다면 오해나 부작용이 없었을 것이라고 한 말에 나도 동감했다. 결국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정부로 교체되면서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더니 지금은 해체되고 말았다.

여성특별위 위원장직 추천

3월 13일 청와대 김중권 실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윤후정 위원장 후임으로 적격자라고 생각하는데 의향이 있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즉시 “내가 앞서면 남편이 가려져서 싫다” “박대통령 때도 내가 유정회 의원직을 수락하면 남편에게 도움이 된다고 하는 홍성철 수석의 충고를 액면 그대로 믿고 의원이 되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우리부부는 외교 분야에 가장 자신이 있었는데 도중 하차하게 되어 너무 아쉽고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등 무례 했는지는 몰라도 내 속내를 그대로 말했다.

김 실장은 “김 대통령은 그런 분이 아니다”라며 권유를 했으나 다른 분을 추천해드렸다. 그 후 그 자리는 여학교 후배인 강기원 변호사가 맡게 되어서 적격자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전화를 끊고 생각하니 그 자리를 사양한 것이 잘한 일이었다. 지역구 의원보다는 시간적 여유가 있는 전국구 의원인 남편을 혼자 집에 두고 나 혼자 새벽부터 출근하고 남편보다 늦게 귀가해야 하는데 억울한 일을 당한 남편을 노후에 외롭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 중앙인사위원회 현판식 / 우측에서부터 김한길 수석, 김중권 비서실장, 김광웅 위원장, 필자, 신용상 교수

중앙 인사위원회 위원 위촉

5월 26일 청와대의 박주선 법무비서관이 중앙인사위원회 비상임 위원으로 위촉하고 싶다는 전화를 했다. 그리고 며칠 후 김광웅 인사위원회 신임 위원장이 전화로 최종 연락을 해주어서 이 자리는 수락했다.

인사위원회는 위원장 (김광웅 서울대 교수), 상임 위원 (최석충 사무처장), 그리고 세 명의 비상임 위원 (송재구 전 광주 부시장, 신용상 인하대학교 행정학 교수, 그리고 나), 이렇게 5명으로 구성되어 매월 셋째 주에 모여서 1. 2. 3급 공무원 채용과 승진을 다루었다.

첫 회의를 마치고 보니 개인 신상에 대한 자료를 사전에 신중히 검토할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다는 점 때문에 자칫하다가는 이 위원회가 고무도장(rubber stamp)으로 전락될 소지가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처음의 그런 우려와는 달리 모두 객관적인 평가를 하려는 노력으로 극복이 되었다.

6월 10일 청와대에서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했다. 비빔밥을 먹으면서 김 대통령은 “인사위원회는 선거공약이었고 결코 양보할 수 없다고 고집한 기구”라고 강조했다. 장차관까지는 대통령이 챙기지만 그 나머지 고위직은 학연, 지연 등 억울한 일이 없도록 각별히 신경 써 달라는 부탁도 있었다.

인사위원회는 지역안배 (호남, 영남 서울)와 여성의 대표성을 고려해서 구성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3급에도 여성후보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더니 계약제를 통해서 해결방법을 모색하라는 대통령의 말씀이 있었다. 김한길 정책기획수석은 “비상임 상근으로 알고 일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때가 언론이 옷 로비사건으로 뒤덮여 있을 때였다. 대통령께서는 “라스포사는 중가 의상실인데 진실을 말해도 믿지 않는 이 사건이야말로 마녀사냥이 아니고 무엇이냐. KBS의 한 기자가 작은 일을 언론이 너무 크게 확대시킨다는 말을 못해 양심에 찔린다는 내용의 양심선언을 사내 게시판에 붙였다”는 이야기도 해주셨다.

나도 한․러 정보원추방사건 당시 수행기자가 사실기사를 보내도 본사 데스크에서 쓴 기사에 수행기자 이름을 사용했다고 호소를 했더니 대통령께서 "러시아 언론은 자기대표를 옹호하는데 한국에서는 그쪽을 비판해야 하는데도 우리대표만 나쁘게 써댔으니…"라고 거들었다. 나는 대통령의 그 말씀이 나의 남편이 억울하게 당한 사실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뜻으로 해석을 했다.

2000년 청와대에서 중앙인사위원회의 보고가 끝나자 대통령께서는 인사위원회 설치를 주장했을 때 야당에서는 ‘대통령이 공무원 인사까지 좌지우지 하려고 한다’는 오해를 했으나 지금은 공정하게 관리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운동을 주창했을 때도 야당은 장기집권을 위한 의도라고 극구 경계를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