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정치학 박사 1호 탄생 (17회)
  제3장 부부 정치학박사 1호

1965년 6월 우리가 나란히 서서 영예의 최고 학위를 받던 날, 우리에게는 그 이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아메리칸 대학 교정은 박사, 석사, 학사학위 수여자들과 축하객으로 꽉 메워져 있었다. 김현철 주미대사 내외분을 비롯하여 많은 교포들께서도 나와 주셨다. 우리와 함께 고생을 감수하며 자란 천진난만한 성우(5세)와 성연(2세)이도 이모의 손을 잡고 참석했다.

이날 친정어머니가 제일 생각이 났다. 박사가 되기 전에는 귀국하지 말라고 하신 어머니, 조혼으로 막내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쩌나 노심초사하시던 어머니, 그렇게도 우리가 박사가 되기를 소원하신 어머니가 그날을 못 보고 가신 것이 두고두고 가슴이 아프다. 반면에 살아 계신 시부모님께는 떳떳한 생각이 들었다. 결혼하고 두 아이를 갖고도 우리 부부가 해냈다는 자부심 때문이었다.

앤더슨 총장과 반 배거넌 대학원장의 축하를 받으면서 남편은 행정학 박사학위, 나는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물론 둘 다 정치학분야이다. 특히 졸업식에서 특별연사로 연설을 하고 명예 박사학위를 받은 고 험프리 부통령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우리들을 특별히 축하해 주었다. 그 후 험프리 부통령과의 친교는 그 분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계속되었다.

귀국하기 직전에 상원의원 회관으로 인사차 방문했을 때 박 대통령께 우리 부부에 관한 서한을 보내겠다고 했다. 특별히 그러한 서한을 필요로 한 것은 아니지만 그저 감사하다는 말만 남기고 떠났다. 험프리 부통령은 한국을 많이 도와주신 분으로 그에 대한 고마움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귀국 후  험프리 부통령은 두 번이나 한국을 방문했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를 찾아주었다.

우리 부부 이야기는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하여 각 신문에 기사화되었고 큰 화제가 되었다. 한국에서 유학 온 젊은 부부가 같은 대학에서, 같은 분야에, 같은 날, 같은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큰 뉴스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졸업식이 끝나고 저녁에 홍성철 공사 (전 보사부, 내무부 장관)가 많은 분들을 워싱턴에서 유명한 중국식당인 옌칭 레스토랑에 초대하여 축하만찬을 베풀어 주었다.
 
▲ 1965년 6월 같은 날 박사학위를 받고

이렇게 해서 10대의 젊은 연인들이 약속한 10년 계획에 2년의 차질은 있었지만, 12년 동안에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남편은 특히 전공이 각기 다른 학위를 취득했다. 학사는 외교학, 석사는 경제학, 그리고 박사는 행정학이다.

한 가지 해프닝은 졸업식 때 알파벳 순서대로 서기 때문에 내가 남편 앞에서 학위를 받았다고 부인의 성적이 더 우수해서 학위를 먼저 받았다는 소문이 돌아서 한바탕 웃었던 일이다.

졸업을 하자마자 남편은 귀국하는 것을 기정 사실화하고 짐을 챙기려고 했다. 남편과는 달리 나는 그동안 고생만 했으니 미국대학에서 교편생활을 하면서 조금 쉬다가 귀국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귀국 의지를 꺾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남편이 원하는 대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모두들 남들은 미국에 못 와서 야단이고, 편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는데 왜 귀국하겠느냐며 우리가 귀국한다는 말을 믿지 않으려 했다.  그 당시 고국의 정치 현실이 좋지 않아서 그렇게들 생각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이는 처음부터 고향에서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어려서부터의 꿈이 있었기 때문에 12년 동안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취득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비록 귀국하더라도 미국에 있는 동안은 영주권이나 시민권이 있으면 그만큼 취업하기도 쉬웠을 것이고 혜택도 많았을 것이지만 전혀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는 유학 후 6년이 되는 1959년, 친정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비보를 받고 한번 귀국한 적이 있었으나 남편은 12년 동안 한번도 한국에 온 적이 없었다. 방학만 되면 태평양 넘어 수시로 드나드는 요즘에는 이런 말을 하면 아마도 이해가 안 갈 것이다. 

드디어 1965년 9월 하순 우리는 교포 여러분과 유학생들의 환송을 받으며 20대 청춘을 바친 미국 땅을 뒤에 두고 두 아이들과 함께 설레는 가슴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나는 1952년, 남편은 1953년, 부산항구에서 처녀 총각으로 조국을 떠난 지 13년 만에 학위 3개(학사, 석사, 박사)와 소중한 아들(5세)과 딸(2세)을 얻어서 귀국하게 된 것이다. 고생은 했어도 얻은 것이 많은 우리의 20대였다.

 
  딸의 출생과 박사학위 논문 (16회)
  귀국 (1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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