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에서 당신은 정신을 잃기 전까지 뉴스를 보며 나라 걱정을 했었지요. 당신 친구의 동생인 조순형 의원이 바른 말을 할 때마다 “저런 정치인이 더도 말고 다섯 명만 되어도 세상은 달라질 텐데...”라고 안타까워했던 일도 기억하고 있어요. 그런데 3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경제난, 노조파업, 정쟁, 북핵문제, 국가이념의 혼란 등 여전하답니다.
당신이 공들여 설립해 놓은 새천년 포럼의 존속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장례식까지 챙기던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대한 의견을 남기지 않았는지 모르겠어요. 근 7개월간의 고민 끝에 김영재 교수, 박현숙 사장, 정민자 보좌관의 권유로 내가 당신의 유지를 이어가기로 했어요.
당신이 간 후 첫 행사에는 당신의 후배인 정세현 통일부장관을 연사로 초빙해서 ‘남북관계 현황과 대북정책의 방향’에 대한 간담회를, 중대 박경서 부총장의 사회로 성황리에 마쳤습니다만 당신 생각에 자꾸만 나오려는 눈물을 참느라고 힘이 든 행사였답니다. 그 날 김정례 장관이 “박 장관은 가고 없어도 아직 그 생명이 살아 숨쉬는 듯한 분위기여서 무척 감동을 받았다”고 칭찬을 해주시더군요.
당신의 사진들, 신문기사들, 신문잡지에 기고한 글들을 정리하는 데 1년이 걸렸어요. 너무 양이 많아서 취사선택이 힘들었지만 내가 당신을 만나러 간 후 아이들이 정리하는데 힘들지 않을 만큼만 남겨두었어요. 매달 초 당신한테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찾아가서 잡초도 뽑고 오는 즐거움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당신한테 갈 때마다 부모님 산소에도 들리니 “매년 한번 밖에 오지 않던 며느리가 웬일로 자주 찾아 올까”라고 어머님이 의아해 하시겠죠?
우리 아파트 경비원들이 당신의 부재를 아쉬워하고 있다고 아줌마로부터 들었어요. 오며 가며 그들에게 적은 액수라도 흰 봉투에 넣어서 정중하게 전달하던 당신이 참으로 보기 좋았는데…. 오늘도 KBS의 ‘사랑의 리케스트’ 시간에 불우이웃을 위해 전화 다이얼을 돌리면서 당신 생각을 했어요. 그 시간만 되면 힘없는 손가락으로 묵묵히 전화 다이얼을 돌리던 당신의 모습은 눈물겨웠거든요.
그렇게 남에 대한 배려심도 많고, 착하게 살아왔는데 왜 그런 몹쓸 병을 하나님께서 주셨는지 너무나 원망스러워요. 조금이라도 여유만 생기면 박성연 장학기금에 기탁해서 불우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줄 수 있게 한 당신이 대단하다는 것을 지금 더 절실히 느낍니다. 젊은 학생들에게 적은 액수지만 장학금 수여식 때는 당신이 내 곁에 있는 기분이 들어요.
얼마 전에 당신의 간병인 아주머니가 전화를 했어요. “장관님이 너무 훌륭해서 아직도 눈에 밟힌다”며 당신이 밤이면 자기를 깨우지 않으려고 배려했다는 등 많은 이야기를 울먹이며 말 했어요. 당신 임종 때 내가 정신을 못 차리는 바람에 당신이 눈을 크게 떴을 때를 놓쳤다고 하는 말을 듣고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몰라요.
기력이 떨어져가도 내가 힘들다며 혼자 목욕을 하겠다고 고집 피우던 당신, 성우나 주영이가 병실에 들어가기 무섭게 직장으로 가라고 재촉을 하고, 나에게는 간병인이 있으니 집에 가서 쉬라고 성화를 하던 당신을 생각할 때면 자꾸만 가슴이 저며 온답니다. 속으로는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을까요? 남들은 떠나면서 정을 떼고 간다고들 하는데 당신은 나에게 더 정들게 하는 몸짓만 남겨놓고 가버렸으니 내가 감당하기가 더 힘이 드나봐요.
여름이면 골프장에서 맥주와 사이다를 섞은 시원한 맥사이다를 내가 좋아한다고 먼저 식당에 가서 맥사이다를 타놓고 기다리던 당신이 보고 싶어요. 자동차를 타면 의례히 의자 가운데 우리의 두 손을 포개 놓았던 그때가 그리워요. 식사 후면 꼭 이쑤시개를 가늘게 부러뜨려주던 당신이 필요해요.
내 삶의 많은 긍정적인 변화는 당신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당신과의 만남이 나를 더 좋은 여자가 되게 만들어 주었어요. 고마워요. 이러한 내 진심을 당신 생전에 말 못한 것을 한없이 후회하고 있다는 것 당신은 모를 거에요. 젊은 날 당신의 늦은 귀가 때문에 기다림에 지쳤다고 불평했는데 이제야 그것이 행복한 투정임을 알게 되었답니다. 아마 내가 지금 벌을 받고 있나 봐요.
당신의 영정이 걸려있는 응접실 불을 끄고 침실로 들어갈 때면 당신이 싫어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당신은 늘 집안이 환한 것을 좋아해서 방마다 불을 켰고 나는 전기 값 든다고 끄고 다녔으니…….
당신이 미칠 듯이 보고 싶을 때면 눈을 감고 꿈을 꾸려고 애를 쓰지만 베게잇만 젖어요. 이 외로운 목숨이 끊어졌으면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에요. 당신이 내 곁으로 다시 돌아와 줄 수만 있다면 더 좋은 아내가 될 자신이 있는데…….
여보, 지금쯤은 당신이 그토록 사랑한 우리 성연이와 함께 있겠지요? 당신이 다시 태어나도 나와 결혼하겠다고 편지에 쓴대로 나도 꼭 같은 생각으로 나의 “the first, only, and last man"인 당신 곁으로 곧 갈 테니 기다려주세요. 나도 당신과 같이 눈물로 쓴 이 편지를 보냅니다.
서울대 국문학과 오세영 교수의 시를 통해서 내 마음을 당신에게 전하고 싶어서 여기에 씁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집으로 오르는 계단을 하나 둘 밟는데
문득 당신이 보고 싶어집니다.
아니 문득은 아니에요
어느 때고 당신을 생각하지 않은 순간은 없었으니까요
언제나 당신이 보고 싶으니까요
오늘은 유난히 당신이 그립습니다.....
이 계단을 다 올라가면
당신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어요
얼른 뛰어 올라 갔죠
빈.... 하늘만 있네요.
당신 너무 멀리 있어요.
왜 당신만 생각하면 눈앞에 물결이 일렁이는 지요
두 눈에 마음의 물이 고여서 세상이 찰랑거려요.
그래서 얼른 다시 빈 하늘을 올려다보니
당신은 거기 난 여기 이렇게 떨어져 있네요.
나 당신을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어요
햇살 가득한 눈부신 날에도
검은 구름 가득한 비 오는 날에도
사람들 속에 섞여서 웃고 있을 때에도
당신은 늘 그 안에 있었어요
차를 타면 당신은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구요
신호를 기다리면 당신은 건너편 저쪽에서
어서 오라고 나에게 손짓을 했구요
계절이 바뀌면 당신의 표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나 알고 있어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당신은 내 마음 속에서 지울 수 없으니까요
당신 알고 있나요
당신의 사소한 습관 하나에도
당신이 내게 남겨준 작은 기억 하나에도
내가 얼마나 큰 의미를 두고 있는지....
당신은 내 안에 집을 짓고 살아요....
난 기꺼이 당신에게 내 마음을 내드렸구요
보고 싶은 사람
지금 이 순간
당신을 단 한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오늘도 나는
당신이 이토록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